중국 체류 탈북자 실상 및 성금 계좌 안내
  • 朴晟濬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7.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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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체류자만 7천명 이상… 신변 위협 속 끝없는 도피 생활”

최근 수년간 많은 국내 선교사들이 선교 목적으로 중국에 들어갔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탈북자 돕기라는 또 다른 ‘사명’에 몰두하고 있다. 그만큼 국외 탈북자 사정은 이를 목격한 사람이라면 동족으로서 외면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이르렀다. 기사에 적시한 일부 사실에 대해서는 현지에서 활동하는 관련자들의 신변 안전을 위해 시간·날짜·장소·인적 사항을 생략한다.〈편집자〉

최근 일가족을 데리고 인천항을 통해 입국한 김원택씨는 지난 5월22일 기자 회견을 통해 극한 상황에 도달한 북한 식량난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이들의 증언 가운데에는 잡히면 공개 처형당하는 사실을 알면서도 북한 주민들 사이에 전화선이나 전화용 구리선을 훔쳐 밀수꾼에 넘기다 적발되는 일이 끊임없이 발생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굶어 죽으나 붙잡혀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의 가장 극단적인 표출은 북한을 이탈하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중국의 한 한국인 선교 단체에 찾아든 주민 한 사람도 그런 경우다. 우여곡절 끝에 선교 단체와 연결된 이 주민은 함경남도 함흥시 출신으로 개마고원을 타고 두만강을 건너 북한을 탈출한 사람이었다. 그는 선교사에게‘굶어 죽지 않기 위해 탈출을 결심했다. 비상 식량으로 옥수수 2㎏을 준비한 뒤 함흥을 출발했다’고 밝혔다.

대도시 함흥에서까지 탈북자 발생

그의 북한 탈출은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첫째, 북한은 대도시 함흥에서조차 탈북자가 발생할 정도로 금세기 최악의 식량난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함흥은 북한 내륙에 비해 식량 사정이 나을 것으로 추측되던 곳이다. 게다가 이 지역은 개마고원에 가로막혀 있어 해상이 아닌 육로로는 국경 지역 접근이 어려우므로, 어지간한 각오나 절박감 없이는 함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곳이다.

둘째, 최근에 급증하고 있는 북한 탈출은 대부분 굶주림이 직접 동기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북한 이탈 주민의 탈북 동기는 주로 불륜·범죄 따위와 관련된 사례가 적지 않았다. 북한 당국으로부터 받을 가혹한 처벌이 두려워 북한을 탈출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넘어가는 사람들 가운데 열의 아홉은‘굶어 죽지 않으려고’탈북을 감행하고 있다. 현재의 탈북자는 말하자면 ‘식량 난민’인 셈이다.

“요즘 탈북자들은 예외 없이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으로 인해 발생하는 갖가지 참상에 대해 증언한다. 어떤 이는, 북한의 한 산모가 아기를 낳고서도 젖이 나오지 않아 아기가 굶어 죽는 것을 두눈 뜨고 지켜보다가 미쳐버린 일에 대해 말했다. 또 어떤 이는 북한의 한 40대 공산당원이 지난해 12월을 마지막으로 식량 배급이 끊겨 굶어 죽었다고 전했다. 우리 정부가 현재 분산 보호 중인 한 탈북자 일가족은 아버지가 자식들에게‘남뿌리(나물) 캐러 가니 따라 나서라’고 한 뒤 그 길로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들어왔다. 굶주림을 참다 못한 아버지가 일가족 모두가 안전하게 국경을 넘을 수 있는 탈북로를 찾아낸 뒤 탈출을 결행한 것이다.” 중국 현지에서 탈북자들을 돕고 있는 한 선교사는 이렇게 증언했다.

최근 목선을 타고 해상을 통해 입국한 김원형·안선국 씨 탈출 사건 등 일가족이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들어오는 일이 잦아지면서 국내에서 탈북자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지만, 정작 눈길을 돌릴 데는 제3국이다. 95년까지만 해도 정부가 공식 확인한 탈북자 수는 중국·러시아를 합쳐 3천명 안팎이었다. 그 가운데 중국 방면 탈북자 수는 천명 정도였다.
그러나 얼마 전 민간 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탈북자 수는 중국에만 7천명 이상인 것이 확실하다. 최근 2년 새 중국에서만 북한 이탈 주민 수가 7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물론 이는 중국에 남기로 작심한 탈북자들만 따진 숫자이다. 다시 돌아가는 사람까지 합치면 줄잡아 2만~3만 명 정도의 탈북자가 중국에 있는 것으로 한기총은 추측하고 있다. 반면 한국으로 온 탈북자 수는 모두 합쳐 7백명을 넘지 않는다. 이들 제3국에 체류하는 북한 이탈 주민을 빼놓고는 탈북자 논의가 성립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더욱이 중국과 러시아 쪽에 체류하는 탈북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굶주림과 해당 국가 공안 당국의 추적, 현지 교민들의 냉대 등으로 사면초가가 되어 있다. 특히 중국쪽 사정은 비참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내 북한 이탈자들은 일단 조선족을 찾아가면 밥을 얻어 먹고 공짜 잠을 잘 수 있어서 그런 대로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중국 당국이 밀입국자를 돕는 사람에게 최고 ‘5년 이하’ 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관련 법규를 신설하고, 벌금액도 대폭 올리는 등 단속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을 재워 주었다가 중국 공안에 발각되면 중국돈으로 벌금 2천위안(우리 돈 20만원)을 물어야 한다. 중국 근로자들이 받는 한달 노임은 중국돈으로 평균 4백~5백위안. 한번 걸리면 최소 넉달치 노임을 벌금으로 내야 하므로 자연히 조선족 사이에서는 북한 이탈자를 아예 상종조차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중국내 탈북자들이 겪는 또 다른 어려움은, 중국 공안(경찰에 해당)·북한 특무(체포조)·조교(朝僑·중국내 친북한 교민) 등 제각기 성격이 다른 부류에 의해 이중삼중의 추적을 받는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공안은 탈북자에게 대단히 위협적인 존재다. 동북 3성(길림성·흑룡강성·요령성)의 일부 공안들은 최근 강화된 단속 권한을 이용해 탈북자 색출 작업을 아예 돈벌이로 악용한다는 얘기도 나돈다. “탈북자 한 사람당 벌금이 수천 위안인데다가 어떤 때에는 현상금까지 걸려 있어, 탈북자들은 중국 공안의 좋은 먹이감이 되고 있다”라고 한 선교사는 말한다.

북한 특무와 조교의 은밀한 활동도 탈북자들의 안전한 정착을 위협한다. 지난해까지도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는 ‘코 꿰어 간다’는 말이 유행했다. 중국으로 파견된 북한 특무나 체포조가 탈북자를 찾아내 말 그대로 코를 꿴 뒤 북한으로 압송하는 일이 잦았다는 것이다. 이같은 일은 ‘남의 나라에서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느냐’는 중국측의 강력한 항의가 있은 뒤 없어졌지만, 최근에도 국경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간 뒤에는 다시 되풀이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삼중 추적… 쓰레기통 뒤져 배 채우기 일쑤

감시와 추적이 이처럼 심하니 북한 탈출 주민들의 중국내 생활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탈북자의 중국내 도피·정착 사업에 간여하는 선교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탈북자들은 대개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 생활을 한다. 중국 공안의 추적에 쫓기느라 능력이 있어도 변변한 직업을 가질 수 없고, 대부분은 중국인과 말도 통하지 않아 쓰레기통을 뒤져 연명하기 일쑤다. 어쩌다가 중국 사람이 말을 걸어오면 벙어리 시늉을 하는 사람도 있다. 신변 위협에서 오는 불안감도 대단하다. 한 선교사는 이에 대해 “우리가 돌보는 한 탈북자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탈출할 때 지니고 온 김일성 배지와 공산당원증을 주었다 뺏었다 하는 일을 되풀이했다. 그는 탈출한 지 두 달 만에 처음으로 외출할 수 있었는데, 사람을 하도 믿지 못해 그 뒤 아예 인적이 드문 외딴 곳으로 이동시켰다”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현재 중국내 탈북자들은 일부 선교단체들의 목숨을 건 지원 활동(38쪽 상자 기사 참조)을 제외하면, 당국의 무관심 속에 거의 방치되어 있다. 물론 상황이 비관적인 것만은 결코 아니다. 정부는 지금까지 탈북자에 대해 일관해온‘선별 수용 정책’을 취소하고 인도적 차원에서 탈북자를 전원 수용한다는 원칙을 천명함으로써 일단은 한 걸음 나아가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민간 차원의 국내외 탈북자 지원 프로그램은 이에 비해 좀더 실질적이다. 귀순 탈북자에 대해서는 주로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교회와의 결연 사업이 추진되는가 하면, 지난 5월 초에는 탈북자 정착을 돕기 위한‘고향 마을’ 건립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다. 제3국 체류 탈북자에 대한 지원 사업도 활기를 띨 전망이다. 한기총은 지난 1월부터 체제비와 도피 자금 마련, 은신처 운영 등 세부 계획을 세워 국외 탈북자 지원 사업에 나서면서 산하 교회로부터 지원금을 거두고 있다.

이처럼 곳곳에서 지원 손길이 뻗치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탈북자, 특히 한국이 아닌 곳으로 탈북한 사람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도와야 할 탈북자는 많은데 일손과 자금이 달린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주는 것도 아니다. 공안의 감시와 처벌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탈북 동포를 돕는 유일한 통로였던 선교사들마저 떨어져나갈 기미를 보인다. 탈북자를 돕다가 무조건 벌금을 물게 되는 일만이라도 우선 막아주는 게 급하다”라고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 선교사는 호소한다.

95년 정부는 대량 탈북 사태가 발생할‘유사시의 상황’을 전제로 비상 대책을 세워놓았다. 그러나 국외 탈북자 수가 갈수록 불어나는 이즈음, 실질적인 탈북자 대책을 집행하는 일은 유사시의 문제가 아니라‘현실 문제’로 다가서고 있다. 그것은 통일을 위한 시작인 동시에, 굶주림과 공포에 떠는 동포를 감싸안으려는 최소한의 준비 작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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