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21세기 청사진 그리기 한창
  • 북경·홍순도 (언론인) ()
  • 승인 1997.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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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 15차 전국대표대회 준비 박차… 강택민 체제 강화될 듯
올해 초 중국 공산당은 홍콩 주권의 성공적 인수와 15차 전국대표대회(15全大) 개최를 금년도 최대 사업으로 내세웠다. 따라서 홍콩 인수가 예상 밖으로 무난히 마무리된 지금 15전대 개최 준비는 중국 각급 당·정 기관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현안으로 떠올랐다.

현 상황에서 15전대 개최는 큰 의미를 가진다. 중국 미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시기인 앞으로 5년 간의 진로를 결정하는 금세기 마지막 당 회의인 데다 등소평 사망 이후 처음 열리는 가장 중요한 회의이기 때문이다. 경제 대국을 거쳐 정치 대국으로 나아가려는 중국의 앞날을 전망하고 분석하는 바로미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당·정 지도부가 지난 3월 초 8기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국회에 해당) 마지막 회의인 5차 회의를 통해 15전대에서 토의가 예상되는 안건들에 대해 준비 작업을 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또 7월 하순부터 진행 중인 최고 당·정 지도자 비밀 회의인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가 15전대에 관한 지도부의 각종 의견을 수렴해 내부 조율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부패 투쟁’ 주요 안건으로 떠올라

현재까지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흘러나온 비공개 정보들을 종합해 보면, 15전대에서 토의될 안건은 10여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예상되는 것이 고급 간부를 대상으로 하는 반부패 투쟁 강화다. 이는 등소평 이후 최고 지도자로 떠오른 강택민(江澤民) 국가 주석 겸 총서기가 금년 들어 기회 있을 때마다 부패 추방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보면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더구나 강총서기가 부패를 추방하지 않고는 자신을 중심으로 구축하려고 노력하는 이른바 ‘江核心(강핵심)의 중앙 권위 확립’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므로 더욱 그렇다.

지난 6월20일 중국공산당 창당 76주년 기념 좌담회에서 행한 호금도(胡錦濤) 정치국 상무위원의 연설도 마찬가지. 그는 이 날 연설에서 ‘일단의 고급 간부가 정도 차이는 있으나 관료주의와 형식주의에 빠져 불량한 작풍(作風)을 고취하고 있다’면서, 반부패 투쟁이 15전대의 주요 안건이 될 것임을 내비쳤다.

강총서기를 중심으로 하는 혁명 3세대를 이을 4세대 지도부 육성 방침도 15전대 중요 안건으로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 이른바 ‘노·장·청(老壯靑) 3결합’의 한 축이 되는 청년층을 육성해 체제를 공고히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밖에 △더욱 강력한 개혁·개방 추진 △투철한 국가관 확립과, 민족 자존심 배양과 통하는 정신 문명 건설 강화 △법치주의 강화 △독립 자주의 평화 외교 노선 견지 △국방 현대화 △일국 양제 통일 정책 심화 등도 15전대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평화 외교 노선 견지와 관련해서는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 영원히 역내 안정과 세계 평화 유지에 노력한다. 영원히 세계인의 믿음직한 친구가 된다’는 강총서기의 구체적인 선언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이같은 안건들은 현재 중국의 대표적 두뇌 집단인 사회과학원 소장파 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강총서기의 측근들이 정치 보고서로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15전대의 최대 논란거리는 아무래도 인사 문제일 수밖에 없다. 원래 전대를 앞둔 당·정 인사는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다루며,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대강 윤곽을 그려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선 홍콩 주권을 성공적으로 돌려받아 위상이 급작스레 강화된 강총서기는 돌발 사태가 없는 한 국가 주석과 총서기, 당과 정부의 중앙위원회 주석 자리를 그대로 유지할 것 같다. 일부에서는 총서기 자리를 호금도 상무위원에게 물려주고 부활되는 당 주석 자리로 옮겨갈 것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으나, 현상을 유지할 가능성이 더 크다. 적어도 다음 2002년 16전대까지는 강력한 지도자로서 중국을 희망의 21세기에 무난히 진입시키는 조타수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권력 서열 3위와 4위에 해당하는 교석(喬石)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이서환(李瑞環) 정치협상위 주석도 크게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두 사람 모두 상무위원 직과 현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당 주석 자리를 겸임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일부 외신 보도처럼 교석 위원장이 상무위원만 유지한 채 위원장 자리를 이붕(李鵬) 총리에게 물려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교위원장과 강총서기의 권력투쟁설, 나아가 그에 대한 숙청설로까지 비화하는 이른바 강-이 체제 구축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같은 가능성은 상당히 작다.

우선 교석 위원장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강총서기보다 중앙 무대에서 오래 활동했고 2년 연상인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공안·정보·사법 계의 대부. 따라서 곳곳에 그의 인맥이 자리잡고 있다. 결코 호락호락하게 당할 위치에 있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현재의 중국 정국이 대립보다는 화합을 더 추구하는 상황이고 등소평의 유지(遺志)도 집단지도체제 강화에 있었던 만큼 그의 실각설이나 지도부내 권력투쟁설은 신빙성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

문제는 외신들에 의해 늘 하마평에 오르던 권력 서열 2위의 이붕 총리다. 두 차례에 걸쳐 임기 10년을 꽉 채운데다 건강에도 문제가 있어 일단 정부 총책임자 자리에서는 물러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동안의 기여와 당·정 온건 세력을 대변한다는 상징성이 고려되어 권력 일선 활동은 여전할 전망이다. 상무위원 직을 유지한 채 당 부주석으로 전임할 것이 유력해 보인다. 이 경우 총리는 이남청(李嵐淸), 추가화(鄒家華) 부총리 등과 막판 경합해 우세를 점할 것이 거의 확실한 주용기(朱鎔基) 상무부총리 차지가 될 공산이 크다.

경제 전문가 주용기, 차기 총리로 점쳐져

주부총리는 강총서기의 승진 전 보직들인 상하이(上海) 시장과 당 서기 등을 역임한 전형적 테크너크랫으로서, 과열 경기 진정과 안정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 경제를 쾌속 항진케 만든 공로를 크게 인정받고 있다. 여기에 강총서기의 적극적 후원이 무엇보다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 10년 동안 경제 우선 정책을 펼 것으로 보이는 중국 정부를 이끌 전망이다.

당 최고 의사 결정 기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개편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현재 위원이 7명인데 9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며, ‘小出多進’(적게 탈락시키고 많이 진입시킨다) 원칙이 적용될 것 같다. 상무위 진입이 유력한 인물로는 호금도 상무위원과 중국의 21세기를 이끌 ‘미래의 총리’로 일컬어지는 오방국(吳邦國) 부총리와 장진(張震)·지호전(遲浩田) 중앙군사위 부주석, 강춘운(姜春雲)·위건행(尉健行)·정관근(丁關根) 중앙서기처 서기 등이 꼽히고 있다.

이밖에 취임 10년째에 접어든 전기침(錢其琛) 외교부장과 오의(吳儀) 대외무역경제합작부장을 비롯한 각급 당·정 책임자도 15전대에서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또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망명 사건을 원만히 처리해 능력을 인정받은 당가선(唐家璇) 외교부 부장, 소화택(邵華澤) <인민일보> 사장의 승진도 점쳐지고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여러 안건을 종합해 볼때 21세기를 눈앞에 둔 중국의 국가 운영 청사진은 이제 구체적 현실로 나타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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