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근교에 뿌리 내린 ‘한국 대학교’
  • 워싱턴·金在日 특파원 ()
  • 승인 1995.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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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교포가 설립, 벤저민 프랭클린 대학 내년 개교… “한국 재수생에 기회 제공할 터”
한국 대입 재수생들을 위한 학교가 워싱턴 근교에 선다. 내년 9월 문을 열게 될 이 학교는 한인 교포가 운영하는 것으로는 미국 최초의 일반 대학이다. 학교 이름은 벤저민 프랭클린 대학교. 한인대학추진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버지니아 주정부의 최종 인가를 받는 등 대학 설립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끝낸 상태다.

워싱턴 D.C.에서 서쪽으로 뻗어 있는 66번 고속도로를 타고 자동차로 2시간 남짓 가면 경관이 빼어나기로 유명한 셰난도 계곡이 나온다. 이곳 웨인스보로 지역 페어팩스 홀은 강의실 24개, 2백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 체육관 시설과 넓은 주차장을 갖추고 있다. 총 2만9천평인 이 부지가 신입생 특별 교육 훈련센터로 활용될 이 대학의 지방 캠퍼스다. 도시 캠퍼스로는 워싱턴 D.C.에서 50㎞ 떨어진 매너서스 지역의 공립 학교를 사용하게 된다. 이 역시 2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 50개와 대강당·체육관·실험실 시설을 갖추고 있다.

첫해 3백명 뽑고 해마다 백명씩 늘려

신입생은 우선 1년 동안 지방 캠퍼스에서 영어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으면서 기숙사 생활을 통한 단체 협동 훈련과 함께 바른 학문 자세와 습성을 익히게 된다. 1년간 미국 교육제도에 적응하는 훈련을 마친 학생들은 교육 자원이 풍부한 도시 캠퍼스로 옮겨 나머지 교육을 받는다.

설립 초기에는 전공 과목이 마케팅·무역·경영·회계학·컴퓨터 등 대학 졸업과 동시에 안정된 직장을 잡을 수 있도록 직업 교육 분야에 국한된다.

대학 설립위원장인 박관빈 박사는 “특히 공익 정신과 사회인으로서의 책임을 키울 뿐 아니라 인격 훈련과 지도력 양성에 중점을 두고 가르치겠다”고 말한다. 설령 문제가 있는 학생이라 할지라도 개인 상담과 특수 지도를 통해 꿈을 키우고 폭넓은 세계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능동적인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주력한다는 것이다.

박위원장의 계획에 따르면, 첫해인 내년에는 신입생 3백명을 뽑고, 해마다 백명씩 입학정원을 늘려 장기적으로 전교생이 3천명이 되게 할 예정이다. 첫해에 채용할 교수진은 20명쯤을 잡고 있다.

한국대사관측도 한인 대학 설립 계획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박건우 주미대사는 추진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좋은 기틀을 마련해 한국과 미국을 위해 훌륭하게 일할 수 있는 일꾼들을 배출하는 데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또 대사관측은 언어 문제로 불편을 겪는 유학생들을 도울 별도의 서비스가 제공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박씨가 대학 설립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93년 11월. 그는 불합리한 교육 제도와 사회 현실 때문에 한국 내에 백만명이나 되는 재수생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현재 한국에는 1백50여 대학이 있지만, 정부는 입학 지원자 수에 맞추어 대학 신설을 허용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재수생이 해마다 양산되고 있을 뿐 아니라 사립 대학은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른 나라 출신에게도 문호 개방

그는 대학 입시에 실패한 젊은이들을 일부나마 새로운 배움의 길로 이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고등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교육의 질이 높은 미국에 배움터를 마련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한국의 재수생들이 미국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길 자체를 몰라서 그 기회를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유학을 미끼로 한 협잡꾼들로 인해 수천 명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한다.

박씨는 그후 곧 한인 교포 12명으로 대학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전문가에게 1년 동안 교과 과정을 개발하게 했다. 지난 9월 버지니아 주 고등교육위원회로부터 대학 설립에 관한 1차 허가가 나왔고, 이제 수업을 해도 좋다는 최종 허가를 받은 것이다.

학교 이름을 18세기의 대정치가이자 외교가·저술가·과학자인 벤저민 프랭클린의 이름을 딴 것은, 그가 영국 이민 2세로 자수성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독립에 크게 공헌했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과 시립 병원을 설립했다. 그밖에도 보험회사와 소방서 건립 등 공익 사업에 큰 업적을 남겼다. 박씨는 강한 애국심과 공익 정신을 지녔던 프랭클린처럼 다방면에서 활동할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자는 뜻에서 그의 이름을 땄다고 했다.

이 대학 설립이 한국 재수생 문제에 착안했다고는 하나 다른 나라 학생들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인종·성별에 관계없이 배우려는 모든 학생에게 문호를 열겠다고 말한다. 국제 대학으로서 미국뿐 아니라 특히 동남아·아프리카 등지의 개발도상국에서 온 인재들을 양성하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씨의 경력을 살펴보면, 그가 대학을 설립하려는 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서 신학과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57년 미국에 유학와 다시 신학·사회학·사회사업학을 공부했다. 그는 지금 목회학·종교교육학·인문학 등 세 분야의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학문과 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보인 것이다. 심한 편두통으로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하기도 했다는 그는 70년 커먼웰스 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사업학 석사를 받고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사회사업에 뛰어들었다.
한인이 세운 최초의 정식 일반 대학

그는 한 정신병원의 사회사업과장으로 근무하면서 미국 사정을 몰라서 혜택을 못 받는 한국 교포를 돕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생활이 어려운 가정에 생활비와 의료카드 타 주기, 영주권 없는 사람 입원시키기, 이민자 재정 보증과 이민국에 데려가 통역해 주기, 돈없는 학생들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알선하기, 대학 입학 지망자에게 추천장 써주기 등 교포들을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그러기를 5년 정도 하자 처음 이민온 교포가 4개월 정도 지나면 ‘박관빈’이라는 이름을 다 알게 될 정도로 교민 사회에서 유명해졌다. 그후에도 그는 18년을 사회사업 분야에서 일하고 대학에서 사회사업학을 강의했다. 그래서 그는 목사이면서도 사회사업가·교육가로 불리기를 좋아한다.

그는 몸을 던져 남의 일을 도우면서 문제 해결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에서 한국인이 정식 인가를 받아 운영하는 일반 대학은 하나도 없다. 벤저민 프랭클린 대학이 일반 대학으로서는 처음이라는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지역에는 30개에 가까운 신학교가 있으나 대부분 자체 건물 없이 교회 내에서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출석만 하면 전부 학점을 주고, 통역을 통해서 강의하는 등 교육 내용이 매우 부실하다고 추진위측은 설명했다.

추진위측은 이 대학이 복수 학위제를 채택한다고 말했다. 복수 학위제란 한 대학에서 2년을 공부하고 그 대학과 제휴한 대학에서 2년을 공부하면 양쪽에서 학위를 딸 수 있는 제도다. 현재 고려대학교와 미국의 아메리칸 대학교가 제휴해 복수 학위제를 실시하고 있다. 박목사는 이미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11개 대학으로부터 복수 학위제 제휴 제의를 받아 놓고 있다고 말했다.

주립 대학교 등록금의 경우 주외 거주자는 주내 거주자가 내는 것의 3배를 내는 관례를 준용해 미국내 거주 학생은 한 학기에 2천달러, 한국인 유학생은 5천달러 정도를 내게 된다. 박씨는 이 대학이 공부 자체보다도 유능한 사회인으로 키우는 데 중점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미국내 사립 중·고등학교 교육처럼 학생들로 하여금 규칙적인 학교 생활을 하게 할 계획이다. 상담 전문 선생을 여러 명 두고 한 선생당 10명 미만의 학생을 담당케 해 학습과 학교 생활을 지도·감독하게 하고, 학력이 달리는 학생은 과외 학습으로 보충하게 한다는 것이다.

대학추진위측은 지방 캠퍼스는 사들이고, 도시 캠퍼스는 우선 빌려서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98년부터 워싱턴 근교에 땅을 24만평 사서 캠퍼스를 신축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내(캘리포니아, 웨스트버지니아·앨라배마·루이지애나 주)는 물론 한국·브라질·아르헨티나·아프리카·중국과 그밖의 나라들에도 분교를 설립하려는 장기 계획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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