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공산당 부활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5.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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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총선서 의석 25~30% 획득 ‘제1당’ 될 듯
12월17일로 예정된 러시아 총선을 바라보는 세계의 눈길이 불안하다. 총선거를 앞두고 몇달째 시행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러시아 공산당’의 약진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최근 대선에서 바웬사를 밀어내고 공산당의 후신인 민주좌파동맹(SDL)의 크바스니예프스키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폴란드의 뒤를 따를 것인가.

러시아에는 현재 2백59개나 되는 정당이 난립해 있다. 10년 전 공산당이 유일 독재 권력을 휘두르던 것을 감안하면 ‘정치 대폭발’ 상황이다. 이 가운데 이번 총선에 참여하는 정당은 43개다. 5% 이상 지지를 얻어 비례대표 방식으로 전국구 후보를 배정 받을 수 있는 정당은 많아야 9개 정도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 러시아 하원(두마)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한 정당은 개혁파인 러시아의 선택당(54석)이고, 공산당(50석)과 농민당(47석)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옐친 지지율 6~8%로 추락

이번 총선의 최대 관심은 공산당이 어느 정도 약진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이다. 지난 몇달 동안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공산당이 20%를 넘는 지지율로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고, 야블로코당·우리집 러시아당·여성당·러시아 공동체회의가 지지율을 10~8%씩 기록하면서 각축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는 공산당이 최대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공산당이 다시 득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옐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추락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 3년 전 70%에 육박하던 옐친의 지지도는 최근 6~8%로 뚝 떨어졌다. 이와 반대로 공산당 지지도는 급상승하고 있다. 옐친의 개혁 정책에 따른 후유증이 공산당이 약진하는 발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말 현재 러시아의 실업률은 7.8%이다. 여기에다 불완전고용 상태이거나 기준치 이하 임금을 받으며 시간제로 일하거나, 강제 휴직 상태인 근로자가 4백만명에 이른다. 따라서 전체 실업률은 약12%에 이르고, 지역에 따라서는 경제 활동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실업 상태인 경우도 있다. 이같은 실업률은 오랫동안 사회주의 체제에서 모든 것을 보장 받던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생소할 뿐더러 충격적인 일이다.

게다가 시장 개혁을 한 결과 사회 계층이 양극화하고, 빈곤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난 7월 현재 러시아의 빈민(최저 생계비 이하의 소득원을 가진 인구) 수는 3천9백2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6%나 된다.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연금 수령자·중년층이다. 이들은 이번 총선에서 개혁주의자들에게 등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또한 체첸 내전으로 옐친 대통령은 대다수 지식인들의 지지표까지 잃고 말았다.

그렇지만 12월 총선에서 공산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소규모 정당들이 난립한 상황에서 표가 분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성 페테르스부르그 프레스>(11월21~27일자)이 예상한 바에 따르면, 공산당은 하원 의석의 25% 정도를 확보해 최대 정당이 될 것이다. 여기에 노선이 비슷한 농민당이 가세하면 31% 정도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여기에 민족주의 세력인 러시아 공동체회의가 가세하는 경우다. 이 정당은 판이한 성격을 가진 두 정치가 유리 스코코프와 알렉산드로 레비지가 이끌고 있다. 스코코프는 과거 옐친의 절친한 전우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러시아 국가안보위원회 서기를 맡기도 했다. 그는 93년 초반 부통령 루츠코이 진영에 동조한 것을 계기로 옐친과 결별했다. 그는 인기나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하지만 방위산업체 종업원의 지지를 받는 정치가다.
공산당 약진하면 대선서는 옐친 유리

최근 러시아 정치판에 혜성처럼 떠오른 사람이 얼마전 몰다비아 14군 사령관에서 퇴직한 정치 초년병 알렉산더 레비지이다. 그는 옐친 못지 않은 뛰어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으며, 군부를 비롯한 여러 계층으로부터 인기가 높다. 또한 레비지는 정부의 부당한 박해로 고통 받는 민중의 대변자라는 이미지를 지닌 것이 강점이다. 반면 그는 정치·경제·사회 분야에 관한 지식이 전무하다. 몰다비아내 러시아인들과 몰다비아인들 간의 전쟁을 종식시켜 각광 받은 그는, ‘인접 국가에 있는 2천5백만 러시아인을 지키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그리고 옐친의 개혁 정책이 낳은 폐단을 비판하면서 ‘강대한 러시아’ 부활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공산당과 농민당·러시아 공동체회의가 연대한다고 해도 과반수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리고 설사 과반수를 차지한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하원 재적 의원 3분의 2를 넘지 못한다면, 현재 러시아의 개혁 정책을 뒤로 돌리지는 못한다. 옐친 대통령이 93년 12월 헌법을 개정하면서 프랑스의 드골 헌법을 본따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력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은 소규모 정당이 난립해 이전투구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어떤 세력도 단독으로 압도적인 권력을 확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분열은 옐친 대통령과 정부측이 국정을 좌우할 가능성을 높여준다. <이코노미스트> 최근호는 공산당을 포함한 좌익계의 약진이 내년 6월 대선을 앞둔 옐친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공산당·농민당 등 좌익 세력이 약진하면, 일반 국민 사이에서는 공산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팽배할 것이고, 이것이 옐친의 대선 전략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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