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배짱’ 갈수록 태산
  • 卞昌燮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5.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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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개발 연구원 실직 수당까지 요구…고위 정치회담에서 ‘담판’ 주장
지난 10월16일부터 뉴욕에서 보름 이상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경수로공급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을 벌여온 북한은 이번에도 과거처럼 핵을 담보로 반대 급부를 얻어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협상이 막바지 고비에 들어선 4일 현재 관련 소식통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이번 협상에서는 경수로공급협정에 담을 원칙적인 총론만을 타결짓고 세부 사항은 별도 협상을 통해 부속 합의서 형식으로 매듭짓는 쪽으로 정리될 듯하다.

당초 우리측은 이번 협상에서 반드시 특별 핵사찰 시기를 공급협정문에 명기하고, 북한이 요구하는 경수로 부대 시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문구를 넣어 나중에 북한이 딴말을 못하도록 쐐기를 박을 방침이었다. 그런데 북한이 이에 크게 반발하고 있는 데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집행이사국인 미국과 일본이 협정 조기 체결을 요구하여 우리측의 전략에 차질이 생겼다. 이번 회담의 주 의제는 △공급 범위 △대금 상환 조건 △공사 중단 등 안전 사고에 따른 배상 조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와 북한 간의 의무 사항 △핵시설 안전 사항 등인데 그 중 최대 쟁점은 공급 범위와 상환 조건에 모아졌다.

북한은 공급 범위와 관련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측이 공급하기로 한 경수로 2기말고도 송·배전 시설과 시험운전시설(시뮬레이터), 나아가 도로 및 항만 등 하부구조 시설비 10억달러를 추가로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우리측의 한 정통한 소식통은 “북한은 심지어 핵 관련 연구 시설 폐기와 그에 따른 연구원들의 실직에 대해서까지 보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금 상환도 국제 관례 무시한 억지 조건

문제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가 10억달러의 추가 요구를 들어줄 형편이 안된다는 점이다. 집행이사국인 한국은 이미 40억달러에 이르는 경수로 건설 부담을 떠맡았기 때문에 추가 비용을 부담하기는 불가능하다. 또 20여 회원국 중 한국말고는 북한에 돈을 지원할 형편도 안되거니와 그럴 의사를 가진 나라도 없다.

또 다른 쟁점이 되고 있는 대금 상환 조건과 관련해서도 북한은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측은 40억달러에 이르는 경수로 건설 대금을 북한이 경수로 준공 후 무이자로 15년에 걸쳐 분할 상환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나, 북한은 무이자 10년 거치에 30년 상환을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조건은 국제 관례상 선례가 없는 것이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측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10억달러 추가 지원 요구를 철회할 경우 대금 상환 부분에 관해서는 북한측 요구대로 따라갈 가능성이 있다. 한국이 남북관계 개선과 같은 정치적 반대 급부를 얻을 수 있다면 대금 상환 조건에 신축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같은 쟁점 사항과 관련해 북한의 허 종 순회대사는 최근 한 한국 언론과의 회견에서 “경수로 제공에 따른 문제들을 국제적인 상업 관례에 따라 해결하려 해서는 안되며 정치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상이 지금처럼 난항을 겪을 경우 대사급 차원의 고위 정치회담을 열어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북한이 반대 급부를 얻어낸 곳이 으레 미국측 로버트 갈루치 국무부 차관보가 참석한 고위급 회담이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초 경수로공급협정은 지난해 10월21일 제네바에서 미국과 북한이 핵 관련 합의문에 서명한 6개월 뒤인 지난 4월21일까지 체결하도록 예정됐었다. 물론 이 시한이 최종 마감 시한은 아니라 하더라도, 벌써 6개월씩 체결 협정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최대한의 반대 급부를 노리는 북한의 무리한 요구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북한 핵 문제를 추적해 오고 있는 한 전문가가 “공교롭게도 예나 지금이나 경수로 공급 문제는 한반에너지개발기구가 경수로를 공급해 주면서도 정작 성패의 열쇠는 북한이 쥐고 있다”라고 말한 것은 일리 있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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