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장성급회담, 무엇을 남겼나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4.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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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맹 50년 한·미, ‘방어형 동맹’ 구축 등 새 관계 정립해야
‘어떤 동맹보다 민족이 우선한다’는 선언이 있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의 이 민족우선주의는 결국 한완상 통일부장관을 읍참마속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세상이 뒷받침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 사회 내부의 자기 인식보다 바깥이 더욱 소란스럽다.

정치적 기반이 든든하지 않았던 노무현 후보가 대권을 잡을 때만 해도 미국은 반신반의했던 것 같다. 더군다나 ‘반미 촛불시위’라는 거센 도전에도 불구하고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여전히 미국의 아성이었다. 그러나 2004년 4·15 총선은 충격이었다. 탄핵으로 다 죽어가던 노대통령을 살려낸 민심의 위력 앞에 미국도 할말을 잃었다.

좌파 세력의 득세니 탈레반(근본주의자)이니 하는 표현을 쏟아냈을 법한 미국 주류 언론들도 잠잠했다. <타임> 하나만 소신을 지켰을 뿐 다른 언론들은 ‘리버럴’ 또는 ‘프로그레시브’라는 순화된 표현을 썼다. 비공식 자리에서 ‘노무현과 한국의 탈레반들’을 대놓고 비난하던 미국 정치인들이나 외교관들의 빈정거림도 많이 줄었다는 평이다. 4·15 총선 결과를 보면서 한국 사회의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난 50년간 남한 정부를 ‘미제의 앞잡이’라고 부르며 무시했던 것이 바로 북한이다. 그들이 보기에는 감개무량한 변화일는지 모른다. 지난해 10월 기자가 정주영체육관 준공식을 취재하기 위해 방북했을 때 북한 안내원들은 남한에서 ‘미선이 효순이 사건’을 계기로 반미 시위가 크게 일어났다는 점에 한껏 고무된 표정이었다. 북한 사람들은 이를 계기로 남한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남한의 민심을 새삼 확인한 것이다.

장성급회담 ‘절반 이상의 성공’

북한의 변화는 지난 5월 초 평양에서 열린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애를 먹이기는 했지만, 남한이 요구한 장성급회담을 받아들인 것이다. 군사 문제는 미국과의 문제라는 것이 북한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한창 관계가 좋을 때인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국방장관 회담이라는 ‘접대용 회동’이 한 차례 있었을 뿐이다. 장성급은 분명 그보다 격은 낮지만 실무적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훨씬 부담스럽다.

아니나 다를까. 5월26일 금강산에서 열린 장성급회담에서 남측은 서해상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서해 함대사령부간 직통전화 설치 운영 △경비함간 공용 주파수 설정 운용 △경비함간 시각 신호 제정 활용 △불법 어로 단속과 관련한 정보 교환 등 네 가지 대책을 제안했다. 북한은 ‘전선 지역에서 상대방을 자극하는 선전 활동 금지’ 등 요구 사항을 내놓았다.

분단 이후 처음 열린 장성급회담을 남녀의 첫 만남에 비유하는 시각도 있다. 남녀가 처음 만났을 때 초미의 관심은 이른바 ‘애프터’가 성사되는지 여부다. 즉 다시 만날 약속이 이루어지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남북 장성들이 오는 6월3일, 이번에는 남한 지역인 설악산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으니 그런 면에서 50% 이상의 성공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장성급회담에 앞서 속마음의 일단을 드러냈다.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한성렬 차석대사가 5월13일자 미국 USA 투데이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다. 그는 북한 핵문제 해법으로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는 모든 나라’가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주장했다.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는 모든 나라’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남한·북한·미국이다.

그동안 북한은 그 ‘모든 나라’ 중에서 유독 한 나라는 빼자는 입장이었다. 평화협정은 북한과 미국 양자가 체결해야 하는데, ‘남한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고, 또한 군 통수권조차 없는 미국의 식민지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모든 나라’라는 특이한 표현을 동원한 까닭은 50년간 유지해온 주장을 갑자기 바꾸기가 겸연쩍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북한 역시 4·15 총선 이후 남한 사회를 새로운 눈과 마음으로 대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 시민 사회의 ‘균형 감각’을 훨씬 뛰어넘는 논의까지 들린다. 일부 해외 전문가들은 ‘김정일 위원장 처지에서는 최근의 한국 사회 변화를 연방제 통일과 미군 철수라는 자신의 오랜 꿈을 실현할 호기로 볼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으로서는 난감하게 되었다. 한국이 지난 50년 간의 동맹 관계를 깨고 ‘민족’을 찾겠다는 것 아닌가. 게다가 부시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한국 정부에 대해서 뭔가 불안해 하는 것 같다. 부시는 지금 대통령 선거라는 내부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런데 바깥 전쟁(이라크)의 후폭풍 때문에 내부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부시 정부로서는 또 다른 바깥(한반도)만이라도 조용하기를 바란다. 북한이 6자 회담의 판을 깨는 것도 재앙이지만, 남북이 미국과 상의 없이 급격하게 나가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요즘 남북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느끼는 것 같다.

최근 워싱턴 정가에서는 부시 행정부의 해결사인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이 팔을 걷고 나섰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무·국방을 아우르며 ‘한국 두들기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이라크 차출 통보에 이어 ‘북한의 육불화우라늄(UF6) 리비아 공급 의혹’(뉴욕 타임스 5월22일자), ‘3차 6자 회담에서 핵문제에 진전이 없으면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겠다’는 미국 정부 고위 관리의 ‘3진 아웃 발언’(5월25일), 한·미 연합군이 동북아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찰스 켐벨 미8군 사령관의 폭탄 발언(5월25일), 북한이 이란에서 미사일 실험 자료를 입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미국 정부 고위 관리의 발언(5월27일) 등. 최근 미국은 한반도 상공에서 ‘연일’ 폭탄을 투하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미 양국은 이쯤에서 서로 이성을 찾아야 한다. 베트남에서 뿐 아니라 이라크에서 다시 확인된 사실은 미국이 ‘역사가 오랜 국가와 민족’을 다루는 데 매우 미숙하다는 점이다.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2002년 핵문제 이후, 한반도에서 미국은 역사의 수레바퀴가 구르는 것을 애써 무시해온 것 같다.

미국은 남과 북이 하나의 ‘역사와 민족’으로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 토대 위에서 남북한과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남과 북 역시 마찬가지다. 남북이 통일된다 해도 중국과 일본이라는 힘겨운 상대가 늘 버티고 있다. 이같은 주변 환경이 한반도의 숙명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2000년 6·15 정상회담에서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 주둔이 바람직하다고 서로 합의한 진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에 맞서는 ‘공격형 한·미 동맹’이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는 ‘방어형 한·미 동맹’은 지속될 필요가 있다.

‘동맹’의 역사가 50년이라면 장년의 나이이다. 다 큰 어른들이 서로 불편한 것이 있으면 대화로 풀어야지 주먹부터 오가는 것은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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