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북한에 “휴전선 포부대 철수하라” 압박
  • 南文熙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8.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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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한미군 강화·군사 연습 통해 압박…실질적 긴장 완화 조처 강력히 요구
4월23∼29일 한미연합사의 정례 군사 연습이 시작된다. ‘한미연합사 지휘소 연습’이라고 명명된 이 군사 연습은 94년에 시작되어 해마다 이맘때쯤 열렸다. 이렇게 보면 이번 연습은 별로 특이할 것이 없어 보인다. 매년 해 오던 것이고, 그 개념도 팀스피리트나 독수리 훈련 같은 실제 전투 훈련이 아니라 그 전 단계인 ‘연습’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만 치부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우선 군사적 측면이다. 지난 3월13일을 기해 주한미군은 대대적인 체제 개편을 단행했다. 8군의 전력을 정규 야전군 수준으로 높이고, 본토 미군의 편제 개편과 더불어 지상 구성군 사령부 형태로 지휘부를 개편한 것이다.

주한미군 관계자들은 새로운 지휘부 시스템을 ‘밤부 시스템 (Bamboo System)’이라고 말한다. 대나무(밤부)를 툭툭 잘라서 땅에 꽂으면 저절로 번식하듯 평시에 지휘부만 확대해 놓았다가 유사시에 병력만 보강하면 군사력 증강이 가능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지휘소 연습은 바로 지난 3월에 도입한 밤부 시스템이 유사시에 작동 가능한지를 처음 시험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 연습을 위해 미국 본토와 태평양사령부에서 1개 연대 병력(약 7천명)이 긴급 수송되어 한·미 연합 군대와 합류하게 된다. 군사 용어로는 ‘RSOI(Reception, Staging, Onward movement & Integration: 수용·대기·전방 이동 및 통합 연습)’라고 하는데, 이번 경우에는 72시간 후 제2 방어선에 투입할 미군 병력의 수송 및 투입 연습이 이루어진다.

남북한 ‘병력 삭감’은 비현실적 군축안

이런 군사적 의미 외에 주목할 것은 훈련 배경에 깔린 정치적 측면이다. 사실 지난 3월13일 단행된 주한미군 확대 개편 조처는 해외 주둔 미군을 감축한다는 최근의 추세와 역행하는 것으로서 다목적 의도를 밑에 깐 것이었다. 당시 미국측 관계자들은 그 배경을 몇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다. 우선은 이라크 사태로 미국 항공모함이 걸프 지역으로 이동한 데 따른 공백을 메우기 위한 조처라는 설명이었고, 두 번째는 IMF 사태 이후 한국 국방비가 10% 정도 삭감된 것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안보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한국에 투자하고자 하는 외국 투자가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군사력 증강과 미·북한간 막후 협상이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최근 미국 정계에는 한반도의 긴장 상태를 더 방치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에 대해 군축 이니셔티브를 취하라고 막후에서 종용하고, 북한에 대해서도 긴장 완화를 위한 실질적 조처를 하라고 요구해 왔다. 북한 역시 최근까지 일본·유럽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남북한 동시 병력 삭감을 군축 방안으로 제시해 온 적이 있으나, 미국은 감시·감독이 어려운 병력 삭감보다는 쉽게 감시할 수 있는 포부대 후방 배치야말로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보고 있다. 미군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군사력을 축소하라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재투입이 가능한 포부대의 후방 이동조차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긴장 완화를 얘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지난 3월13일 단행된 8군 강화 조처에 이은 이번 군사 연습 역시 북한에 압력을 가하는 수단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지난 3월 초 미국이 북한에 제의한 장성급 접촉에 대해 북한측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음에 따른 미국의 대응 조처라는 성격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현재 북한 군부로 하여금 미국의 요구에 부응해 대화에 응하든지 아니면 미군을 상대로 군비 경쟁을 하든지 양단간 결단을 내리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의 소식통은 “미국은 다양한 카드를 가지고 있다. 대화에 응할지 말지 북한 군부가 현명하다면 잘 판단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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