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새 민주당, 자민당에 선전 포고
  •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
  • 승인 1998.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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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새 민주당 창당…7월 참의원 선거 승리 ‘장담’
참의원 선거 뒤 또 한번 정계 재편

새 민주당 간사장으로 내정된 하타 전 총리는 96년 10월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비례대표구에서 1천8백만표를 획득한 반면 당시의 신진당이 1천6백만표, 민주당이 9백만표를 얻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야당 세력이 또다시 자민당을 압도할 수 있다고 자신감에 넘쳐 있다. 일본의 극심한 불경기가 참의원 선거 때까지 지속된다면 하타 전 총리의 주장이 결코 허풍으로 끝나지는 않을 듯하다.

만약 자민당이 경제 정책 실패 때문에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한다면 내년 9월까지 자민당 총재 임기가 보장된 하시모토 총리도 도중 하차할 수밖에 없다. 그 경우 자민당은 현재 집행부를 장악하고 있는 ‘3당 연립파’가 후퇴하고 ‘보보 연합파’가 득세하게 된다.

자민당의 보보 연합파는 본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가 이끄는 옛 신진당과의 제휴를 중시해 왔다. 따라서 보보 연합파는 당권을 쥐면 현재의 연립 정권 파트너인 사회민주당과 사키가케보다는 오자와의 자유당과 연립을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 옛 공명당 세력도 새로운 연립 파트너 후보 가운데 하나이다.

새 민주당도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오자와의 자유당과 옛 공명당 세력을 공략해 야당 세력 대통일을 꾀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정계 재편은 아직도 미완성 교향곡이다. 그러나 참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 정계 재편의 또 다른 막이 오를 것은 분명하다.
지난해 말 여섯 조각으로 동강났던 일본 야당 세력이 ‘민주당’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이달 말 새롭게 출범한다. 4월27일에 열릴 새 민주당 창당식에는 현재의 민주당 세력(중의원 의원 52명, 참의원 의원 17명)에 민정당(28명, 9명) 신당우애(14명, 9명) 민주개혁연합(2명, 3명) 무소속(참의원 3명)이 참가한다. 새 민주당은 비록 중의원에서 단독 과반수를 획득한 자민당 세력(2백60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중의원 의원 96명과 참의원 의원 41명을 포함하는 제 1야당으로 떠오르게 된다.

새 민주당 당수로는 칸 나오토(菅直人·51) 의원이 내정되었다. 칸 당수 내정자는 도쿄 공업대학을 졸업한 뒤 변리사를 하다가 도쿄 18구에서 중의원 의원에 입후보해 여섯 차례 연속 당선한 중견이다. 사키가케 부대표·후생성 장관·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그는 후생성 장관 시절 관료들의 저항을 뿌리치고 에이즈 약해(藥害) 문제를 파헤쳐 일약 유명해졌다. 그가 하타 쓰토무(羽田孜)·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같은 총리 경험자를 제치고 새 민주당 당수로 내정된 것은 이같은 국민적 인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 민주당 간사장(사무총장)으로 내정된 하타 전 총리는 최근 한 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국민적 인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당 대표로 내정한 것은 아니다. 그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젊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하타 전 총리는 영국 블레어 총리 등을 예로 들며 젊은 세대가 정치 전면에 나서야 일본이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좌파·중도·우파 동거로 결속력 약해

새 민주당의 당 컬러는 이른바 ‘민주 중도’이다. 새 민주당에는 자민당 출신 보수계 의원에서 사회민주당 출신 좌파 의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력이 혼재해 있다. 이 때문에 신당의 이념으로 ‘민주 중도’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냈는데, 이것은 집행부가 각 세력의 노선 대립이 표면화하지 않도록 고심 끝에 짜낸 아이디어다.

새 민주당은 도시 주변 봉급 생활자를 중심으로 한 무당파(無黨派) 층에 당의 기반을 둘 계획이다. 그래서 관료주도형 정치나 공중살포식 공공사업을 축으로 한 경제 정책을 부정하고, 지방 분권과 규제 완화 등 시장 원리를 중시하는 정책을 내걸었다. 새 민주당은 또 ‘납세자 변호 제도’ 도입을 당 정책에 명기하고 있다. 이것은 당의 기반인 도시 주변 봉급생활자층이 세금 사용 용도와 과다한 징세에 대해 갖고 있는 불만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자민당 출신에서 사회민주당 출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력을 안고 있는 새 민주당의 고민은 한둘이 아니다. 우선 새 민주당은 당의 중추 세력인 민주당이 이전부터 내걸어 왔던 ‘시민이 주역’이라는 슬로건을 당 이념에서 삭제했다. 보수계 의원들의 반발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외교 정책에서는 자민당 출신이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반면, 민주당 세력은 아시아를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복잡한 당내 사정으로 새 민주당이 창당 후 당내 결속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우리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새 민주당의 주적(主敵)은 물론 자민당과 하시모토 총리이다. 칸 당수 내정자는 지난 4월13일 열린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총리에게 맹공격을 퍼부었다. 그는 하시모토 총리를 ‘벌거벗은 임금님’에 비유하면서 “대장성 등에 재정구조개혁법이란 양복을 입혀 놓고 이것이 좋은 옷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으나 실은 벌거벗은 몸뚱이에 불과했다”라며 경제 실정을 집요하게 추궁했다. 그는 또 하시모토 총리가 뒤늦게 4조엔 감세 정책을 발표한 것을 물고늘어지면서, 정책을 전환하는 시기를 놓친 책임을 지고 즉각 퇴진하라고 요구했다.

하시모토 총리와 칸 당수 내정자는 몇 년 전만 해도 같은 배에 타고 있던 공동 운명체였다. 한 사람은 3당 연립 정권의 총리로서, 또 한 사람은 후생성 장관으로서. 그래서 하시모토 총리는 “같은 내각에서 일했던 사람의 질문을 복잡한 심경으로 경청했다”라고 받아넘긴 뒤에도 분을 삭이지 못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대결도 멀지 않았다. 7월 참의원 선거가 바로 그것이다. 자민당은 96년 10월 총선거 이후 신진당 등에서 탈당한 사람들을 받아들여 중의원에서 과반수를 확보했다. 그러나 참의원에서는 과반수에서 7석이 부족한 1백19석에 그쳤다. 자민당은 21석인 사회민주당과 3석인 사키가케의 힘을 빌려 가까스로 과반수를 유지하고 있다.

자민당 집행부는 7월에 치를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수를 탈환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여기에 최대 걸림돌은 하시모토 총리의 경제 실패에 따른 인기 하락이다. 하시모토 총리는 출범 당시 70%에 가까운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현재 그에 대한 지지율은 30%대로 뚝 떨어지고, 각계 각층에서 퇴진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자민당 내부의 이른바 ‘보보(保保) 연합파’는 하시모토 총리가 재정 구조 개혁에 치우친 나머지 경기 부양에 소극적이었다는 점을 추궁하면서, 경제 정책 전환에 실패한 책임을 지고 퇴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언론들도 하시모토 총리 끌어내리기에 적극 가담하고 있다. <주간 문춘> 최근호는 ‘전후 최악의 실정 내각, 당신은 정말 방귀와 같은 (존재)’이라는 대담한 제목을 내걸고, ‘관료 정치가’ 하시모토 총리를 사정없이 질타했다.

그러나 일본의 정치 평론가들은 참의원 선거 이전에 하시모토 총리가 퇴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내다본다. 그를 대체할 인물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우선 하시모토 이후에 내세울 만한 경제통이 없다. 대중적인 인기 면에서도 그를 능가할 후보가 없다. 그래서 자민당은 하시모토 총리를 또다시 간판으로 내걸고 참의원 선거에 임하는 방도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 정치 평론가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여기에 맞서 새 민주당은 에이즈 약해 문제를 추적해 스타로 떠오른 칸 나오토 당수 내정자를 앞세워 하시모토의 자민당과 참의원 선거에서 격돌할 계획이다. 색깔이 각각 다른 네 야당이 합당을 서두른 것도 참의원 선거를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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