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마리 짐승, 미·일 동맹 물어뜯다
  •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
  • 승인 1995.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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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교생 겁탈한 미군 3명 구속 못해 ‘더욱 분노’… 조약·협정 개폐 여론 거세
‘스리 애니멀스(세 마리 야수들)’. 월터 먼데일 주일 미국대사의 표현처럼 야수와 같은 미군 해병 3명이 저지른 흉악 범죄가 미·일 동맹관계를 뿌리째 흔들어 놓고 있다.

9월4일 오후 8시께 한 문방구점에서 노트를 사 집으로 돌아가던 오키나와 나하 시의 한 국민학교 소녀가 괴한들에게 납치됐다. 괴한들은 소녀의 얼굴과 손발을 접착 테이프로 동여매고 차에 태워 나하 시 근방 미군 전용 해안으로 끌고 갔다.

괴한들에게 차례로 겁탈 당한 소녀는 반 실신 상태에서 인근 민가를 찾아 구원을 청했다. 신고를 받은 오키나와 현 경찰은 즉각 긴급 수배망을 펼쳐 소녀를 성폭행한 괴한들이 미군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리고, 미군 수사기관에 협조를 요청했다.

두 기관이 합동 수사한 결과 사건 이튿날 괴한들의 정체가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 해병 3사단 소속 해병 3명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사건 당일 기지내 렌트카 회사에서 차를 빌려 소녀를 납치한 지점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있었음이 동료 해병의 증언으로 드러났다.

‘미군기지 속의 오키나와’라는 말처럼 오키나와는 재일 미군기지의 75%가 있는 기지촌이다. 현재 미국 해병 3사단 외에도 제1 해병항공단, 가데나 공군기지 등에 미군 약 3만명이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미군 범죄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미군 기관지 <성조>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군과 그 가족을 합해 오키나와 현에 거주하는 미군 관계자는 오키나와 현 인구의 4.2%에 불과하나, 과거 6년간 일어난 살인·강도·방화·강간 등 흉악 사건 체포자의 11.5%를 차지하고 있다.

오키나와 현 집계에서도 오키나와 섬이 72년 일본에 반환된 이후 미군에 의한 강도·상해·절도 사건은 총 4천5백건에 이르고 있다. 또 지난 5월에는 3사단 해병대원이 오키나와 현에 거주하는 20대 여성을 망치로 스무 차례나 내리쳐 살해한 끔찍한 사건도 일어났다. 오키나와 현 집계에 따르면,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된 72년 이후 이같은 살인 사건은 모두 12건에 달한다.

물론 이같은 범죄 건수는 72년 이전에 비하면 그리 많은 것이 아니다. 오키나와 현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점령 직후 오키나와는 미군들의 무법 천지였다. 길가는 행인을 아무 이유 없이 후려패는 것은 예사였고, 여자를 겁탈해도 미군 병사가 처벌된 예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패전 직후 일본인들은 미군들이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어 먹는 것을 보고 가장 부러워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오키나와의 스테이크 레스토랑을 점령한 것은 미군이 아니라 일본인들이다. 최근 급격한 엔고로 미군의 주머니가 텅 비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병사들의 스트레스가 상당하다고 한다. 쥐꼬리만한 달러 월급으로는 좀처럼 기지 밖으로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국민학생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자 매우 분개했다. 어떤 이유로 어린 소녀를 그렇게 무참히 성폭행했느냐는 것이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미군 해병 3명은 처음부터 누구든 지나가는 여자가 있으면 납치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문제의 소녀는 국민학교 6학년생답지 않게 숙성한 몸매를 갖고 있어 불행하게도 그들의 표적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오키나와 현 주민들은 이 사건이 발생한 직후 ‘야수와 같은 미군은 본국으로 돌아가라’ ‘귀축미군(鬼畜美軍)’과 같은 구호를 외치며 연일 가두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키나와 현은 현재 일본에서 가장 소득이 낮은 현으로 꼽힌다. 소득이 낮은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미군 시설이다. 미군 시설이 현 면적의 5분의 1을 차지해 발전이 어렵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미군 기지 반환을 요청하는 소리가 날로 높아가고 있다. 오타 오키나와 지사는 이 사건으로 주민의 항의 시위가 격렬해지자 지난달 말 미군기지 강제 사용 절차의 대리 집행을 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가 72년 일본에 반환된 이후 미군 기지를 존속시키기 위해 토지 제공을 거부하는 지주들의 토지에 대해서는 강제 사용 절차를 밟아 오고 있다. 이 강제 사용 절차를 오키나와 현 지사가 대행해 오고 있었으나, 오타 지사가 이 사건에 대한 대항 조처로 대리 집행을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이 과연 독립국인가”

현재 지주 35명이 소유한 약 3만5천㎡가 이에 해당하는 토지다. 만약 오타 지사가 내년 봄까지 대리 집행을 완료치 않을 경우 미군기지 일부의 사용이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군이 저지른 성폭행 사건에 분개하는 것은 오키나와 주민들만이 아니다. 오키나와 경찰은 범인 3명의 신원이 확인되자 미군 수사기관에 즉각 그들을 넘겨주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미군 당국은 미·일 주둔군 지위협정 제17조 5항 C의 규정을 내세워 인계를 거부했다. 이 협정에 따르면 ‘미군 범죄자의 구금은 정식으로 기소될 때까지 미군이 담당한다’고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오키나와 경찰은 범인 3명에 대한 구속을 포기하고 출장 형태로 그들을 심문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 국내에서는 ‘미군에게 유리하게 체결된 지위협정을 개정하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다케무라 대장성 장관은 “일본이 과연 독립국가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뿐 아니다. 미군에 의한 성폭행 사건은 이런 문제를 일으키는 밑뿌리인 미·일 안보조약의 존폐 문제로 비화했다. 미·일 양국 정부는 그렇지 않아도 오는 11월 클린턴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미·일 안보조약의 의의를 재평가할 예정이었다. 옛 소련의 남하 방지와 일본 방어를 목적으로 체결된 미·일 안보조약의 의의가 소련의 붕괴로 많이 퇴색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뉴욕에서 열린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에서도 이 문제가 깊숙이 논의되었다. 냉전 뒤 미·일 안보조약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서 양국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는 연결 고리’라는 새로운 해석을 11월 발표할 미·일 공동성명에 삽입할 예정이다.

그러나 양국 정부는 미·일 안보조약이나 미·일 지위협정의 조문을 변경하는 데는 소극적이다. 만약 지위협정·안보조약에 손을 댈 경우 안보조약 폐지론에 불을 댕길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국은 지위협정의 운영을 맡고 있는 미·일 합동위원회에 전문가 회의를 설치하고, 미군의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문제가 되고 있는 17조 5항 C의 운영 개선을 협의하고 있다.

현재 가장 유력한 방안은 미국이 59년 서독과 맺었던 ‘본 협정’과 같은 내용의 범인 인도에 관한 각서를 일본측에 제시한다는 것이다. 즉 독일 주둔 미군의 지위 협정을 보완하는 형태로 미·독 양국은 본 협정을 맺고 ‘미군 범죄자의 구금을 언제라도 독일 당국에 이전할 수 있도록’규정했다. 이 경우와 같이 재일 미군 범죄자에 대해서도 일본측이 기소하기 이전에 체포·구속할 수 있도록 운영을 개선한다는 것이다.

만약 미·일 지위협정의 운영이 이같이 개선된다면, 미군 범죄자의 신병 인도 요청이 있을 경우 이를 ‘호의적으로 고려’하게 되어 있는 한·미 행정협정은 가장 불평등하게 운영되는 지위협정으로 남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미·일 지위협정 운영 개선은 한·미 행정협정 개선 요구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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