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권력 승계 왜 늦어지나
  • AP연합 (sisa@sisapress.com)
  • 승인 1995.10.2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미 협상 난항으로 ‘10월10일’ 넘겨… 국내외 현안 쌓여 ‘96년 초 승계’ 불투명
노동당 창건일인 10월10일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됐던 김정일의 권력 승계가 무산된 것은 연락사무소 개설을 위한 미국과의 협상이 차질을 빚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북한 협상에 정통한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최근 “9월 중순 이전까지만 해도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 고위 관계자들은 10월10일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할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9월 17,18일께부터 점차 승계가 어려울지 모른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연락사무소 개설과 관련해 미국이 북한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미국측의 무리한 요구란 바로 연락사무소가 개설되기 전에 김정일의 권력 승계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측의 요구는 전혀 새로운 것으로, ‘선 연락사무소 개설, 후 권력 승계’라는 북한의 권력 승계 구도를 완전히 뒤집는 것이다.

이전까지 미·북한 간에는 연락사무소 개설을 위한 전제 조건이 모두 해소된 상태였다는 것이 정설에 가깝다. 전문가들 사이에는 올해 초부터 수 차례 열린 비밀 접촉 결과 사무소 부지 문제를 비롯해 거의 모든 실무 문제들이 해결되었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9월 말 평양에 들어간 미국 연락사무소 조사단이 북한과 영사보호협정을 체결했다는 점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일반적으로 외교 관계가 없는 국가 간에 영사보호협정이 체결됐다는 것은 곧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 위한 실무 절차가 모두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북한에 끌려다닐 수 없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10월10일까지 연락사무소가 평양에 서지 않을 경우 실질적인 개설은 내년 초쯤으로 하되 적어도 10월에는 사무소 개설과 관련한 공동 코뮤니케 정도는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최소한 코뮤니케 형식의 담보만 있어도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할 명분은 확보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같은 상황를 놓고도 미국측이 최근 김정일의 등장을 사무소 개설의 전제 조건으로 새롭게 추가한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는 대략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미국 국내 정치의 역학 관계에서 대북 협상을 담당하는 국무부의 입지가 최근 들어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미국 의회나 언론 등 여론 주도층은 클린턴 행정부의 북한 정책을 놓고 그 방향에 대해서는 대체로 찬성했으나 구체적인 협상 과정에 대해서는 북한에 끌려다닌다는 인상을 가져왔다.

그러던 중 지난 8,9월부터 국무부의 대북 협상 내용들이 언론에 흘러나오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북한에 끌려가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강하게 일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논점이 바로 “수장이 없는 국가와 어떻게 협상이 가능한가”라는 주장이었다.

이에 따라 국무부 내에서는 권력 승계와 관계없이 북한과 협의했던 사안들을 계속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과, 김정일이 먼저 권력의 전면에 등장해야 여타 문제를 협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강경 주장이 팽팽히 맞서게 되었는데, 최근에는 여론의 뒷받침에 힘입어 후자가 강하게 힘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밖에 미국 정부 스스로가 이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미국으로서는 미·북한 접근을 쳐다보는 한국이나 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의 의혹을 덜기 위해서라도 김정일이 먼저 권력의 전면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사정이 여의치 못할 경우 미국이 연락사무소라는 카드를 활용하여 김정일을 권력 전면에 끌어낼 수 있다면, 그 자체가 미국 외교의 성과로 치부될 만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에 비해 카리스마가 훨씬 떨어지는 김정일로서는 북한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현시점에서 김정일에게 필요한 명분이란 북한이 당면한 국내외 현안에 대한 타개책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일과의 관계 개선이 승계 큰 영향

우선 국내적으로는 만성적인 식량난과 경제난을 극복할 방안을 제시해야 하고, 대외적으로는 북한이 역점을 두고 있는 미국·일본과의 관계 개선에서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야 한다. 김정일이 김일성 주석 사망 후 곧바로 권력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1년이라는 기간을 상중 통치 기간으로 설정했던 것도 명분 있는 승계를 위한 정지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승계를 위한 명분 확보 차원에서 볼 때 미국과의 관계 개선, 그리고 그 구체적인 사례로서 연락사무소를 상호 개설하는 것은 북한이 현재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미국과 관계가 개선될 경우 곧바로 일본, 유럽 국가들과 관계 개선이 뒤를 이을 것이므로 일단 대외 문제는 해결되게 된다. 경제 문제 또한 적어도 해결할 실마리는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즉, 연락사무소가 개설되면 재미 동포나 재일 동포의 북한 방문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이고, 사무소 개설 시점까지 북한 투자를 미루고 있는 미국 기업이나 유럽 기업들의 진출이 적극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 지난해 연말까지 북한 지도부가 설정한 권력 승계 시점은 96년 2월께였다. 이 ‘96년 2월 권력승계설’은 국내의 북한 전문가가 간접적인 방법을 써서 북한 고위층으로부터 확인한 사실이다.

당시 이 북한 고위층은 “주석 사망 후 1년상은 기본이다. 1년상을 치른 뒤에도 준비 기간으로 약 6,7개월이 필요하기 때문에 빨라야 96년 초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이 시점은 대미 관계 일정과도 사실상 연동돼 있었는데, 지난해 연말까지 북한 고위층이 미국과 경수로 협상을 타결짓는 시점으로 내정했던 것이 95년 9월이었다고 한다. 즉, 95년 9월 대미 협상을 타결 짓고 몇달간 준비 기간을 거쳐 96년 초에 승계한다는 것이 원래의 시나리오였던 셈이다.

그런데 금년 3월을 지나면서 이런 시나리오가 앞당겨질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3월에 베를린에서 열린 경수로 회담이었다. 베를린 회담은 경수로형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미국과 북한 간에 이견이 조정되지 못해 결렬되고 말았지만, 북한은 미국의 적극적인 태도에 상당히 고무되었다고 한다. 즉, 당시 미국과 북한 간에 상당한 의견 조율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경수로 문제뿐 아니라 연락사무소 개설을 둘러싼 미·북한 협상 또한 북한을 고무하기에 충분했다. 연락사무소 개설은 지난해 10월 제네바에서 체결된 미·북한 기본합의서에 따른 것으로, 쌍방의 전문가급 회담을 거쳐 경수로 문제가 타결되는 시기에 개설하기로 합의했던 것이다. 경수로 회담 시한이 기본합의서 체결 이후 6개월 이내라고 돼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연락사무소 개설 시기 역시 올해 4월께로 예상됐고, 이에 따라 지난 1월 말에는 상호 조사단이 평양과 워싱턴에 파견되기도 했었다.

이 무렵 북한 지도부는 애초에 느슨하게 잡았던 대내외 정치 일정을 재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체로 이같은 사실은 북한 정부가 해외 공관에 보내는 각종 전문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밝혀지고 있는데, 국내의 한 전문가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5월 말에 김정일이 노동당 비밀회의를 주재해 대내외 정치 일정을 대대적으로 변경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9월로 예상했던 미국과의 경수로 회담 타결 시점을 6월의 콸라룸푸르 회담으로 앞당겼다는 데서도 당시 북한 내에서 중요한 정치 일정에 수정이 가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외 주재 북한 고위 외교관이나 북한내 고위 관계자들 사이에 김정일이 당 총비서나 국가 주석 중 적어도 하나를 올해 10월10일 노동당 창건 기념일에 가질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도 바로 3~5월이었다. 또한 6월의 콸라룸푸르 회담을 통해 경수로 문제를 해결한 북한이 10월 이전에 연락사무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측에 거듭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북한이 10월10일 권력 승계에 초점을 맞춰 모든 대외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점을 읽게 한다.

9월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이 연락사무소의 평양 진출을 위해 내세웠던 조건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경수로 협상 타결이고, 또 하나는 남북대화의 진전이다. 미·북한간 연락사무소 협상이 전개된 시점을 살펴보면, 대체로 그 전 시기에 이 두 가지 조건 중 하나와 관련한 중대한 진전이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6월의 콸라룸푸르 회담 타결은 경수로 문제 타결이라는 전제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과 북한은 지난 7월13일 뉴욕에서 국무부 한국과 관계자들과 유엔주재 북한대사관 관계자들이 비밀 회동해 사무소 부지와 상주 인원 등 실무 문제들을 협의했다.
‘친위 군부’로 권력 공백 메워

경수로 문제 해결 이후 남북대화가 전제 조건으로 부각된 6월 이후 시점에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엿볼 수 있다. 6월 이후 쌀회담이라는 형태로 북한이 그동안 완강히 거부한 남북대화를 수용하기 시작한 배경은 연락사무소 개설을 담보로 한 미국측의 압력을 북한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남북 간의 쌀회담이 인공기 문제·삼선비너스호 억류 문제 등으로 난항을 거듭하면서 3차 회담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미국측은 또다시 북한에 대해 남북회담을 계속할 것과, 한국 기업에 대해서도 북한 지역을 개방할 것 등 두 가지를 요구했다고 하는데, 북한은 이에 대해서도 역시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남북대화 재개에 대해서는 3차 회담을 북한이 먼저 제의하는 방식으로, 한국 기업에 대한 북한 개방 요구는 나진·선봉 지대에 대한 입국사증 없는 출입 허용 등으로 화답한 것이다.

뒤이어 미국이 지난 9월 말 연락사무소 조사단 15명을 평양에 파견함으로써 사실상 미·북한간 연락사무소 문제는 종결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기존 조건들 외에 ‘선 권력 승계, 후 사무소 개설’이라는 새로운 조건을 내놓음으로써 사무소 개설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영사보호협정을 체결하는 데 그치게 된 것이다.

미국의 새로운 요구 사항에 대해 북한은 현재 화전 양면의 대응 태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지난 8,9월부터 북한 고위 관계자들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한 3년상 얘기를 들 수 있다. 원래 이 3년상 얘기는 김주석 사망 직후에도 나왔었으나 이번에 다시 등장한 것은 대체로 대미 협상용이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물론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승계를 3년 정도 미룰 수도 있으나 우선은 미국의 새로운 압력에 대한 버티기용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북한은 당 창건일 하루 전인 10월9일 군부 인사를 단행함으로써 미국측의 요구를 간접적인 형태로 수용할 수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 날 군인사에서 최 광 인민군 총참모장이 인민무력부장에 승진되고, 이을설 호위총국장이 차수에서 원수로 진급했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포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은 권력 승계를 뒤로 미룸으로써 초래된 권력의 공백 상태를 군부를 동원하여 메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현재 원수 지위에 있는 김정일이 대원수로 진급할 발판을 마련함으로써 권력의 전면에 나서기를 요구하는 미국에 대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화답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주목할 사실은, 김정일의 권력 승계가 당초 예상했던 10월10일을 넘기기는 했지만 연락사무소 개설을 위한 미국과의 협상은 이로 인해 중단된 것이 아니라 11월 타결을 목표로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북한의 당·외교부 관계자들은 “11월은 미국과의 협상 때문에 절대 자리를 뜰 수 없다”고 한다. 북한 당국이 내심 설정해 놓은 협상 시한은 10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유엔 총회 시점에서부터 11월 말까지로 돼 있다. 이를 위해 10월16일 대미 관계에 깊숙이 관여하는 북한 고위 인사 3인이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고, 또한 11월에는 미·북한 간에 상당히 중요한 비밀 회담이 예정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간에 북한은 연락사무소 문제 타결뿐 아니라 내면적으로는 평화협정에 대해서도 미국측의 언질을 받아두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평화협정에 대해서는 당장 시행하자는 것보다는 앞으로 언제 시행할 것인지 약속을 받아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 문제는 김정일 시대의 새로운 대내외 정책 슬로건과 긴밀히 관련돼 있어 앞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파장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권력 승계를 중심으로 한 북한의 행로는 11월의 대미 협상 결과가 드러나면 더 뚜렷해질 것이며, 대미 협상이 만족스럽게 진행될 경우 내년 2월께 또다시 권력 승계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쭦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