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크의 숙제는 '국민의 지나친 기대'
  • 파리·윤휘경(뉴스네트 소속 기고가) ()
  • 승인 1995.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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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자크 시라크 대통령 당선자 앞에 놓인 과제는 한둘이 아니다. 시라크는 조각을 마치는 대로 12%를 웃도는 높은 실업률을 끌어내리는 일을 국내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이 확실하다.

시라크가 당선됨으로써 프랑스 우파는 명실상부하게 행정·입법부를 완전히 장악해 내정에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시라크 당선의 의미는 사회당 정부의 경제 실패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경제 지표만을 살펴볼 때 현재 프랑스 경제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경기는 지난해 이후 회복기에 접어들어 올해 경제 성장률이 3%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무역 수지는 사상 최대의 흑자를 내고 있다. 연간 인플레율도 2 %가 채 안될 정도로 물가는 안정돼 있는 편이다. 문제는 실업자 수이다. 미테랑 대통령이 취임한 81년 1백70만명이던 실업자는 현재 3백30만명으로 두배나 늘어났다. 특히 젊은이들은 4명중 1명꼴로 실업자다.

실업 문제 해결 쉽지 않을 듯

시라크 당선자는 프랑스 최대 정치 현안인 실업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보장 비용의 일부를 정부가 떠안고, 기업의 법인세를 인하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고용 유도 계약(CIE)’을 통해 장기 실업자를 고용하는 기업에 2년 동안 1인당 월 2천프랑(약 32만원)씩 보조함으로써 실업을 줄이겠다는 획기적인 안을 이미 발표했다. 그러나 프랑스 경제 전문가들은, 우파가 정부와 입법부를 완전히 장악했음에도 시라크의 이같은 정책이 성공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시각은, 시라크가 산적한 문제들을 단기간에 해결하기에는 사회당 장기 집권의 그림자가 너무나 짙게 남아 있기 때문에 나온다. 미테랑 대통령이 이끈 지난 14년 동안 프랑스 경제 정책의 특징은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공공 지출 확대와,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무력함으로 요약된다.

외교 정책에서도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시라크는 이번 선거 기간에 국제 무대에서 프랑스의 명예 회복을 주장해 왔다. 이같은 주장은 ‘드골주의’의 부활을 뜻한다. 시라크의 외교 정책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나라는 미국이다. 시라크는 유고 내전 지역에 배치한 프랑스군 철수, 유럽연합내 간부들에 대한 엄격한 규율 적용, 프랑스 농민 적극 보호를 강력하게 주장해 왔다. 모두가 미국의 처지에서 볼 때 탐탁지 않은 것들이다.

6월 지방선거가 첫 시험대

특히 시라크의 핵실험 재개 공약은 미국의 심기를 더욱 건드릴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의 단일 통화 문제에 대해서도 시라크는 다소 유보적이다. 그가 대통령선거 유세 때 99년까지 유럽연합의 단일 통화를 이룩하되 이를 국민 투표에 부치겠다고 말한 것이 이를 반증한다. 물론 단일 통화 쪽이 대세인 만큼 그도 현실적으로 이 흐름을 막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시라크는 적어도 정부를 장악하는 면에서는 과거 어느 대통령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이같은 행운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알 수 없다. 이미 노조는 수주 내에 파업을 단행하겠다고 위협하기 시작했고, 실업자들은 일자리를 달라고 아우성이다. 또 선거 승리에 따른 논공행상 역시 만만치 않다. 특히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발라뒤르 총리를 따라갔던 어제의 동료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도 쉬운 문제가 아니다. 외면하자니 내분 소지만을 제공하는 결과를 낳게 되고, 감싸안으려니 속이 쓰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문제는 수년을 참아온 프랑스 국민들이 새로운 우파 대통령의 탄생에 잔뜩 기대감을 갖는 것에 비하면 작은 문제라 할 수 있다.

눈에 띄는 성과가 빠른 시간 내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머지않아 외면할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6월에 지방 선거가 있을 예정이다. 어쩌면 시라크에게는 언론과 밀월 기간을 가질 기회조차 없을지 모른다. 그가 공약한 대로 단시일 안에 큰 성과를 보여주기는 무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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