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3수생’ 시라크 엘리제궁 코앞에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5.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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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통령 선거전 막판 인기몰이…발라뒤르·조스팽 앞질러
프랑스는 지금 대통령 선거 열기로 뜨겁다. 14년간 장기 집권한 미테랑 대통령의 후임을 선출하는 이번 선거에 나선 후보자는 모두 9명이다. 이 가운데 당선권 에 드는 사람은 자크 시라크 파리 시장 (63)과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65), 리오넬 조스팽 전 교육장관(58)이다. 이들은 오는 4월23일 1차 선거를 치르고,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 2위가 5월7일 2차 선거를 치른다.

대학 동문끼리 3파전

시라크와 발라뒤르는 둘 다 프랑스 최대 우파 정당인 공화국연합 소속이고, 조스팽은 사회당 소속이다. 이들은 모두 프랑스의 엘리트 양성 코스인 파리 정치대학과 국립행정학교를 졸업했다. 동문끼리 대통령 자리를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11일 전문 여론조사 기관인 IFOP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시라크는 27%의 지지율을 획득하여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고, 조스팽(21%)과 발라뒤르(19%)가 2위 자리를 놓고 혼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아직 결심을 하지 않은 부동층도 33% 정도나 된다.

따라서 세 후보는 부동층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막판 공세를 펼치기에 여념이 없다. 이들 부동층이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판세는 다소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시라크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같은 상황은 두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 당시 발라뒤르의 엘리제궁 입성은 따놓은 당상처럼 보였다. 신문의 풍자 만화는 꽃가마를 타고 있는 발라뒤르와 울고 있는 시라크를 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난 지금 상황은 판이해 발라뒤르의 인기는 곤두박질친 반면, 시라크의 인기는 계속해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는 발라뒤르의 개인적인 취약점과 여러 사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발라뒤르는 시라크와 달리 당 조직 기반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대중 정치 경험도 없다. 완벽한 행정가라는 찬사를 듣고 있지만, 유권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데는 미숙했다. 귀족적이고 차분한 이미지만 가지고 선거를 이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변 상황도 발라뒤르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지난 2월 초 발라뒤르 내각은 오랜 연구작업 끝에 야심적인 교육개혁안을 발표했는데, 학생과 교수 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이 개혁안의 골자는 대학에 학생 선발권 같은 자율권을 더 많이 주는 대신, 학사관리를 엄격히 하고 재정 자립도를 높이며 직업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문제가 된 것은 한국의 전문 대학에 해당하는 직업 기술 대학 졸업생들이 일반 대학에 진학하거나 편입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고 대학 등록금을 인상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밖에도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철도와 항공사 노조 등의 파업이 계속해서 발생했고, 발라뒤르가 불법적으로 재산을 증식했다는 폭로가 뒤따랐다. 그리고 85∼86년에 미테랑 정부가 정치인·언론인·변호사·작가 등의 통화를 도청한 사실이 밝혀졌는데, 이 사건을 지시한 사람은 바로 발라뒤르였다. 이런 일련의 상황에서 발라뒤르의 인기가 추락하는 것은 당연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그는 지금 시라크 대신 조스팽을 공격 상대로 삼고 2위 자리를 다투고 있다.

반면 작년 11월에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하고 표밭을 다져온 시라크의 인기는 꾸준히 올라갔다. 81년과 88년에도 대선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그는 이번 선거를 치밀하게 준비했다. 드골주의를 승계한 골수 우파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좌파까지 포용하는 폭넓은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실업 문제가 최대 쟁점

시라크가 강조하는 것은 변화다. 그는 이번 선거를 변화 대 현상 유지의 싸움으로 단순화하면서, 미테랑 사회당 정부와 발라뒤르 총리를 겨냥하고 있다.

조스팽은 대학 교수를 역임한 사회당의 이론가답게 논리가 정연하다. 부패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이미지 때문에 지식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고, 근로자들로부터도 좋은 평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대중 정치가로서 광범한 지지는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1차 선거에서 당선되더라도 2차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파업이 확산하는 이유를 조스팽의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것과 관련지어 파악하고 있다. 이번 파업의 뒤에는 근로자들의 이익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사회당 조스팽의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자, 선거 전에 다른 후보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회당은 지금 1차 선거를 통과하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고 있다. 2차 선거에서 우파끼리 경쟁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사회당은 미테랑의 퇴진과 함께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위기 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1차 투표를 며칠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서 프랑스 선거의 최대 쟁점은 어떻게 하면 높은 실업률을 낮출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최근 프랑스 정부는 경제 상황이 개선되고 실업률이 낮아졌다고 발표했지만, 실업률은 아직도 12%에 이른다. 원칙적으로 임금 인상은 실업률과 길항 관계에 있기 때문에 각 후보가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는 유권자들의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시라크는“임금 인상이 고용 증대의 적이 아니다”라고 밝혀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를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발라뒤르는 “경제 성장의 과실은 임금 인상보다 실업 감소를 위해 쓰여야 한다”고 계속해서 피력해 오다 최근에는 부분적으로 임금 인상을 수용한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조스팽은 임금은 인상하되, 실업률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서 해결한다는 입장이다.

경제 전문가들이 세 후보의 정책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가장 경제적인 것은 조스팽의 안이다. 예산을 적게 들이고도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 시라크의 정책은 1백80억 프랑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들이고도 효과가 적고, 발라뒤르의 정책은 98년까지 9만∼14만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시라크·발라뒤르, 30년 친구에서 정적으로

한편 미테랑 대통령이 중단시킨 핵실험을 재개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시라크는 재개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조스팽은 중단하겠다는 입장이다. 발라뒤르는 아직 이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밖에도 젊은이와 여성 유권자들을 겨냥한 다양한 정책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선거 막판에 들어선 지금 이들 정책이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할지는 명확치 않다. 전문가들은 다만 발라뒤르와 조스팽이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 선거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시라크와 발라뒤르와의 관계다. 이들은 생일이면 부부 동반으로 만나 축하해주는 30년 친구다. 두 사람은 76년 시라크가 창당한 공화국연합에 함께 속해 있다. 시라크가 발라뒤르보다 두 살 아래지만, 정치적 경륜으로 보면 한 수 위다.

86년 총선때 시라크 당수는 정치적 경험이 없는 발라뒤르를 파리의 한 지역구 후보로 나세게 해 당선시켰고, 또 그가 총리로서 좌우파 동거 내각을 이끌 때는 발라뒤르를 재무장관에 기용했다. 93년 총선 때는 파리 시장으로서 발라뒤르를 적극 지지해 2차 좌우 동거내각의 총리직에 앉혔다.

그해 3월 시라크는 발라뒤르와 만나 중요한 합의를 했다. 앞으로 시라크는 엘리제궁(대통령궁)을 맡고, 발라뒤르는 마티뇽(총리 집무실)을 맡는다는 일종의 역할 분담이었다. 작년 가을 우파의 후보 단일화 문제가 논의됐을 때 시라크가 발라뒤르에게 정치적 신의를 거론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발라뒤르는 자기가 대통령에 출마하면 당선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양보하지 않았다. 발라뒤르는 선거보다 중요한 것이 국정 운영이라고 강조하면서 자신의 출마 선언을 95년 1월로 미루었다. 시라크는 발라뒤르의 이같은 태도를 ‘정치적 배신’ 행위로 규정지었다.

5월20일 정권 이양을 앞두고 있는 미테랑 대통령은 최근 “하루라도 빨리 정권을 넘겨 주고 싶다”고 말했다. 14년 장기 집권에 지쳐 있는 것은 프랑스 국민만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같은 ‘미테랑 증후군’과의 단절, 변화를 강조하는 시라크는 지금 멀찌감치 앞서 대선 레이스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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