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은 프랑스 국민이 부럽다?
  • 파리·김제완 (자유 기고가) ()
  • 승인 1998.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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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추문에 국민 정서 ‘관대’… 뇌물에는 엄격, 성 관계는 ‘인지상정’
94년 11월 프랑스 주간지 <파리 마치>는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 부인 다니엘 여사말고 다른 여성과의 사이에 스무 살 난 딸을 두고 있다는 충격적인 폭로 기사를 실었다. 이 잡지는 1면에 미테랑 대통령이 파리의 한 레스토랑에서 마자린이라는 검은 머리 여대생의 어깨에 손을 얹고 정답게 대화하는 사진을 함께 실었다.

이같은 보도가 나가자 대다수 프랑스 언론은 ‘숨겨 놓은 딸이 있다는 사실이 미테랑 대통령의 임무 수행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일제히 이 주간지의 선정주의적인 보도 자세를 비난했다. 특히 <르 몽드>는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테랑이 84년에 이미 “나에게는 혼외로 얻은 딸이 있다.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라고 말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정치인 사생활도 존중받아야 한다”

프랑스인들은 자신의 사생활이 보호받아야 하는 것처럼 정치인의 사생활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지도자이므로 자신들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차별이며 불평등이라고 보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은 그렇지 않으면서 남에게 그래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같은 태도는 르윈스키 성 추문 초기인 지난 2월 여성 주간지 <엘르>에 실린 여론조사에도 잘 드러난다. 이 조사에는 프랑스인 86%가 정치인이 사생활 문제로 인해 공직을 떠나는 것에 반대했다. 클린턴으로서는 프랑스인들의 솔직한 태도가 한없이 부러울 법하다.

프랑스 정치의 틀은 지금도 교과서적인 좌우 대립 구도로 짜여 있다. 이런 체제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면 그 의식에 정의와 자유라는 가치관이 동시에 배어 있게 마련이다. 이런 프랑스인들의 눈에는 ‘자유의 나라’ 미국이 늘 불균형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같은 불균형이 이번 추문의 배경이 되고 있으며, 그 모순은 이 사건 등장 인물들의 행위에서도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우선 클린턴은 이미 여섯 차례에 걸쳐 성 관계가 없었다고 완강하게 부인했다가 곤경에 처하자 기술적으로 번복했다. 부부 간의 신의를 배반한 남편을 변호하기 위해 열성을 다해 뛰고 있는 힐러리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르윈스키를 비롯한 ‘클린턴 걸’ 중의 일부는 이번 사건을 통해 유명해지고 싶은 허영심, 또는 유명세가 보장하는 금전적인 이득을 겨냥했을 것이다.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는 어떠한가. 그는 과연 미국 사회에 정의를 세우기 위한 일념에서 이처럼 집요하게 매달렸던 것일까. 공화당 골수 지지자이며 극우 보수 성향이라고 알려진 그의 집념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법이 행사되는 양식도 사뭇 다르다. 클린턴 추문의 뜨거운 논점은 외도 그 자체보다도 위증 또는 위증 교사에 맞추어지고 있다. 외도했다고 해서 법적으로 처벌할 수는 없지만 위증은 형법상 처벌 대상을 넘어 탄핵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는 법과 규정을 집행하면서 위 아래 10%의 오차를 인정하는 관습이 있다. 최일선에서 법을 집행하는 관청의 창구 직원이 이 부분만큼 재량권을 행사한다. 인간의 숨결과 체취가 배어 있는 판단이 그 오차 부분을 차지한다. 그들이라면 간통을 하고 나서 이를 감추려는 ‘인지상정’에 대해 치명적인 처벌을 가해야 한다고 보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에도 정치인들의 추문이 심심치 않게 드러난다. 추문은 거의 대부분이 공금 유용이나 뇌물 등 금전 문제다. 93년 총선 직후 베레고브아 당시 총리가 권총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선택을 했던 것도 겨우 백만 프랑(당시 환율로 1억5천만원)을 친구에게 무이자로 빌린 데 대한 언론의 질타 때문이었다. 불의에 대해 매우 엄격하면서도 개인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언뜻 보기에 이중적인 것 같은 태도는 정의와 자유를 동시에 구현하는 프랑스식 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식 방법의 혼돈을 극복하기 위해 프랑스식을 눈여겨 보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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