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재선 가도 곳곳에 복병
  • 워싱턴·金在日 특파원 ()
  • 승인 1996.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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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상승 불구, 돌·포브스 추격 맹렬…보스니아 파병·화이트워터 사건 등 걸림돌 산재
96년 2월 아이오와 주 코커스(당 간부회의)와 뉴햄프셔 주 예비 선거를 앞두고 미국 대권 주자들은 선거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금부터 분위기가 서서히 달아올라 2월이 되면 미국 전역은 대통령 선거 열기에 휩싸일 것이다.

현재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사람은 9명. 봅 돌 상원 원내총무, 필 그램 상원의원,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 알렌 스펙터 상원의원, 로버트 도난 하원의원, 라마 알렉산더 전 테네시 주지사, 방송 해설가 팻 부캐넌, 앨런 케이스 전 국무부 차관보, 출판업자 말콤 스티브 포브스 등이다. 이들은 표밭갈이를 위해 예비 선거가 치러질 주를 맹렬하게 누빌 뿐 아니라 매스컴 광고를 통해 이미지 심기와 정책을 홍보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들 중 빠르게 떠오르고 있는 사람은 돈으로 무장한 스티브 포브스 후보이다. 격주간 경제지 <포브스> 회장으로 균등 소득세를 정책 공약으로 내걸고 있는 그는, 수백만 달러를 텔레비전과 라디오 광고에 쏟아부으면서 인상적인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에 힘입어 처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유권자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그에게로 눈을 돌리고 있다.

73세 고령 돌 후보, 전국 누비는 강행군

후보가 난립한 공화당과 달리 민주당에서는 이렇다 할 후보가 눈에 띄지 않는다. 예비 선거 과정을 통해 경제학자 린든 라로시 등 50 여 군소 후보가 명함을 내밀 것으로 예상되나, 클린턴 대통령의 적수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제시 잭슨 목사의 출마 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으나, 그 역시 후보 지명 경쟁에 뛰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유력하다.

대다수 정치 관측통들은 결국 돌 총무가 공화당 후보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그가 예비 선거에서 이기면 오는 8월10일부터 16일까지 샌디에이고에서 열리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켜 민주당의 클린턴 후보와 한판 승부를 벌일 것이다.

두 사람이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현재 인기도로 보면 클린턴이 돌을 앞선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돌에 대한 지지도가 40% 안팎인 데 비해 클린턴은 50%를 다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클린턴에 대한 지지도는 최근 18개월 사이 가장 높은 수치다. 클린턴의 인기 상승은 예산안을 둘러싼 의회와의 갈등에 힘입은 바 크다. 특히 클린턴은 깅리치 하원의장의 악성 이미지 때문에 득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인들 사이에 경제 여건이 호전되고 있는 것을 클린턴의 치적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클린턴의 외교 역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얼마 전 외교 전문 잡지인 <포린 폴리시 매거진>은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 노력에 대해 부문 별로 등급을 매겨 흥미를 끌었다. 이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클린턴 외교팀의 북한 핵 동결 노력과 전반적인 핵 비확산 프로그램, 그리고 중동 지역 평화 정착 노력에 대해 각각 A 등급을 매겼다. 중국 관계에 대해서는 C 플러스, 서유럽 관계는 B 마이너스, 시리아와의 관계에는 C 등급을 매겼다. 전체 평점은 B 등급. 이는 탈냉전 시대 외교의 어려움을 감안할 때 나쁘지 않은 점수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클린턴은 선거 자금으로 이미 2천6백만달러를 모금해 목표액을 초과 달성했다. 이는 대통령 선거 사상 목표액을 가장 빨리 모은 기록이다. 4년 전 이 시점에 부시 대통령은 천만 달러도 모으지 못했다. 클린턴은 모금액에 상응하는 매칭 펀드 1천4백만달러를 더 지원받게 된다. 매칭 펀드란 76년 선거 때부터 시작된 제도로, 후원자 1명으로부터 2백50달러 이하의 헌금을 받는 경우 정부가 2백50달러와의 차액을 지급하는 선거보조금이다.

정치 관측통들은 일단 상승세를 타고 있는 클린턴의 승리를 점친다. 그가 4년 전에 치렀던 것보다는 쉬운 싸움이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의회 경력 35년과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돌 후보가 결코 만만한 상대일 수 없다. 또 모든 여론조사에서 돌이 클린턴에 뒤지는 것도 아니다. 최근 <뉴스 위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돌이 49 대 45로 클린턴을 이길 것으로 나타났다. 4년 전 이맘 때 부시 대통령은 그의 인기가 거의 90%에 육박하리만큼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는 재선에 실패했다. 이는 현재의 고정 관념을 가지고 10여 개월 후의 미국 정치 판세를 예측한다는 것이 무리임을 말해 준다.
보스니아 파병 성과 따라 명암 엇갈려

돌은 지금까지 선거 자금으로 클린턴에 다소 못미치는 2천3백만달러를 모금했다. 그는 현재 전국 공화당 주지사 31명 중 17명의 지지를 확보해 놓고 있다. 그 17명 중에는 첫 예비 선거를 치르는 뉴햄프셔 주의 스티븐 메릴 지사도 포함돼 있다. 돌 선거 참모들은 88년 존 수누누 뉴햄프셔 주지사가 부시 진영에 합류해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던 역사가 이번에도 되풀이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돌이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73세의 고령으로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다. 아직까지 그의 나이는 쟁점이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선거전에 본격 돌입하게 되면 민주당의 공격 목표가 될 것이 틀림없다. 이를 의식해서일까. 그는 주중에 노련한 솜씨를 발휘해 의회를 운영할 뿐 아니라 주말에는 선거운동을 위해 전국을 누비는 등 혹독하리만큼 강행군하면서 젊은이 못지 않은 정력을 과시하고 있다.

돌은 자신을 ‘2차대전의 영웅’으로 부각시킬 목적으로 비디오 테이프를 대량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독일군 총탄에 맞은 후 병상에 누워 있던 2년 동안 아홉 차례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일어나 운명을 개척해 온 그는, 자신의 애국심·책임감·경륜을 덕목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곧 병역을 기피한 클린턴의 약점을 파고드는 전략이기도 하다. 여론은 ‘복지론’‘큰 정부론’ 등 60년대의 사회적 가치를 외면하고 있고, 경제 문제보다도 더 큰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이는 사회적 가치 문제와 관련해 돌이 더 높은 점수를 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몇 가지 변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대개 경제는 미국 대선의 가장 큰 쟁점이었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이번에는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취임 당시 최악의 상태였던 미국 경제는 그후 점차 호전돼 94년에는 호황을 누렸다. 95년 경제성장률도 3%에 가까운 것으로 집계된다. 내년까지는 그런대로 순탄할 것으로 볼 때 경제가 큰 쟁점으로 부각되지는 않으리라는 전망이다.

미국 대선에서 첫 번째 변수는 보스니아에 파견된 미군의 안전 문제다. 미군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클린턴의 재선 가도에 명암이 갈리게 된다. 보스니아에서 미군 사상자가 생길 경우 클린턴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특히 그들의 시체가 텔레비전을 통해 시청자의 눈에 비치기 시작하면 그의 인기는 급락할 것이 틀림없다.

다음으로 중요한 변수는, 현재 특별 검사의 수사와 함께 의회에서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화이트워터 사건이다. 그동안 눈길을 받지 못했던 상원 화이트워터 조사위원회의 활동은 최근 들어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사위는 클린턴 대통령이 80년대 아칸소 주지사일 때 자신이 주주로 참여했던 화이트워터 부동산개발회사에 불법으로 금융 특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동업자가 경영하던 신용금고 회사로부터 정치 자금을 받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화이트워터 사건’ 제2의 워터게이트 될 수도

최근 조사위는 청문회 활동을 통해 당시 변호사였던 힐러리의 잘못을 잡아냈다. 힐러리의 비서가 가진 노트에는 고객의 이름이 나와 있으나 상담 내용이 들어 있어야 할 힐러리의 서류는 없어져 버린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 서류는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백악관 법률고문 포스터가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죽자마자 서류를 없애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조사위는 포스터가 죽은 후 열린 백악관 전략 회의의 속기록 등 관련 서류를 넘겨 달라고 백악관측에 요청했으나, 클린턴은 워터게이트 사건 때 닉슨처럼 ‘대통령의 특권’을 주장하며 이를 거절했다. 그러다 최근 백악관측이 의회의 압력에 굴복해 서류를 내놓음에 따라 이 사건이 쟁점으로 살아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화이트워터 사건 수사는 결과에 따라 클린턴을 한방에 날려 버릴 수도 있는 폭발성 잠재 사안이다.

또 한 가지 변수는 콜린 파월이 돌의 러닝 메이트가 될 것인가이다.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최근 파월은 “96년에는 부통령을 포함해 어떤 선출 직에도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적지 않은 관측통들은 그가 막판에 부통령 직을 수락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로는 돌과 파월이 한 팀이 될 경우 클린턴·고어 팀을 물리칠 것으로 나타난다.

지금으로서는 대선 경주에서 클린턴이 앞서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떤 돌발 변수가 생겨 지금의 흐름이 반전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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