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움직이는 여성 20인 프로필
  • 워싱턴·卞昌燮 편집위원 ()
  • 승인 1997.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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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시사지 <조지> 선정 ‘매력 있는 여성 20명’/힐러리 대신 딸 첼시아 뽑혀
얼마전 백악관측이 출입 기자들을 위해 마련한 만찬장에서 색다른 모습이 관심을 끌었다. 이 자리에는 할리우드의 명배우들도 초대되었는데 섹스 심벌로 요즘 한창 각광받고 있는 여배우 앤 헤치(28)도 끼어 있었다. 그런데 그의 바로 옆에는 유명한 여성 코미디언 엘런 드제네레스가 다정스레 함께 앉아 클린턴 대통령 면전에서 손짓을 하며 키득거렸다. 얼마전 자기가 동성연애자라는 사실과 함께 그 상대가 바로 엘런이라고 밝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앤 헤치가 백악관에까지 애인을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자신이 레스비언임을 숨기지 않는 그의 태도는 동성애를 바라보는 젊은 여성들의 전통적인 가치관에 이미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느 나라든 사회 명사들의 행동이나 생각이 일반 대중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기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도 미국에서는 특정 계층을 파고들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무장관부터 팝 가수까지 망라

얼마전 미국 시사 교양 잡지인 <조지>는 미국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매력적인 여성 20명을 선정해 흥미를 끌었다. 이 잡지의 존 F. 케네디 주니어 편집장은 ‘이들 대다수는 여성이라는 전통적 굴레에서 벗어나 사회 변혁에 영향을 준,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그들처럼 되어 보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평했다.

이들을 직업 별로 살펴보면, 정치인으로는 뉴햄프셔 주 지사인 진 세힌 여사와 제니퍼 던 하원의원, 언론인으로는 모린 다우드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연방 하원의원 직을 버리고 CBS 방송의 앵커로 변신한 수전 몰리나리, MSNBC 방송의 고정 해설가인 앤 쿨터, ABC 케이블사 회장인 제럴딘 레이번, 연예인으로는 영화배우 앤 헤치와, 소수 민족에 대한 인종 편견과 정치적 압박을 힙합 리듬으로 풍자해 10대의 우상이 된 로린 힐이 있다. 또 공직자로는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캐럴 브라우너 환경청장, 애틀랜타 시 경찰국장 베벌리 하버드가 있다.

이밖에 보수주의 운동가인 케이 콜스 제임스, 콜린 파월 전 합참의장의 부인 엘머 파월 여사,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미국 농구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한 리사 레슬리, 맥도널드 햄버거 창업자 레이 크록의 부인이자 사회사업가인 조앤 크록 여사, 미국 여성 최초의 B 52 폭격기 조종사인 켈리 플린, 50년대식 미국 어머니상으로 꼽히는 팻시 렘지, 오클라호마 시 청사 폭파범이 자신의 친오빠임을 법원에서 증언해 충격을 준 케니퍼 멕베이 등이 있다. 20명 가운데는 클린턴 대통령의 외동딸 첼시아도 끼어 있어 눈길을 끈다.

올해 56세인 제니퍼 던 하원의원은 둘째아들 이름을 레이건이라 지으리만큼 레이건 전 대통령의 보수주의 통치 이념에 푹 빠진 사람이다. 공화당 워싱턴 주지부 여성의장 직을 맡다가 92년 처음으로 하원에 진출한 신출내기이지만, 그는 차기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러닝 메이트나 하원의장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공화당 내에서 각광받고 있다. 미국 사회의 뜨거운 논쟁거리인 낙태에 대해 그는 오히려 자유주의자의 입장을 취한다. 즉 낙태를 하고 말고는 전적으로 여성의 권리이지 정부가 간섭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공화당 표밭인 뉴햄프셔 주. 이곳은 지금 한 여성 민주당원이 지난해 새 지사로 취임한 뒤 공화당조차 부러워할 정도로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선거 참모였던 진 세힌 주지사가 역대 공화당 출신 주지사들이 해내지 못한 무료 유치원 제도를 실현한 것이다. 그 때문에 주정부 일에 냉소적인 것으로 이름난 주민들조차 그의 업무 수행력에 67%의 지지율을 보냈을 정도다.

잘 나가던 하원의원, 그것도 내리 네 번이나 당선한 중진급 의원이 의원 직을 버리고 언론인으로 변신했다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그런 인물이 있다. 공화당 출신 4선 의원인 수전 몰리나리가 그 주인공이다. 그가 지난해 봄 CBS 방송의 뉴스 프로인 <새터데이 모닝>의 공동 앵커 직을 맡기 위해 의원 자리를 사임한다고 하자 미국 정가가 발칵 뒤집혔다. 언론계에서는 공화당 출신인 그가 당파성을 떠나 공정성과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 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느냐고 걱정했지만, 앵커가 된 지 1년이 넘도록 잡음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의 데뷔는 일단 성공이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모린 다우드(45)는 워싱턴 정객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언론인이다. 그가 1주일에 한 번씩 <뉴욕 타임스>에 고정 집필하는 칼럼은 정치인들에 대한 준엄한 고발장이다.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평은 어떨까. ‘대통령이기 때문에 남들이 주목할 수밖에 없지만, 남을 주목하게 만드는 품성은 모자란 사람’이라는 것이 그의 솔직한 평가다. 80년대 이 신문의 백악관 출입 기자로 일하면서 필력을 쌓은 그는 어떤 매체의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할리우드의 어떤 영화사가 그의 삶을 영화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한다.

인종의 벽 넘은 흑인 여성 5명 우뚝

MSNBC 방송에서 뉴스 해설가로 활약하는 앤 쿨터는 여권 운동가이자 독설가로 유명하다. 또 극우 신문인 <휴먼 이벤트>에 고정 칼럼을 쓰고 있고, 공익 법률회사인 개인권리센터에도 적을 두고 있을 만큼 활동적이다. 클린턴 행정부가 지난해 이민을 규제하기 위한 입법을 추진할 때 그는 자기 프로그램에서 이 법안을 맹렬히 비난했다.

그밖에 언론계 인사로는 어린이 전문 케이블 TV인 니켈로던사 회장으로 있다가 지난해 A&E, 역사 채널 E! 등과 같은 케이블 TV의 대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ABC 케이블 방송의 회장에 취임한 제럴딘 레이번 여사가 있다.

공직에서 이름을 날리는 사람도 만만치 않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여성 최초로 국무장관에 오른 매들린 올브라이트 (60). 과거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먼로, 존 퀸시 애덤스, 딘 애치슨, 헨리 키신저 같은 명 국무장관들의 뒤를 이은 올브라이트 장관은 학구파이지만 실무를 더 중시한다. 그는 또 역대 어느 국무장관보다도 언론 매체에 자주 나오려고 애쓴다. 미국의 대외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려면 우선 국내 지지 기반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공직자로서 각광받고 있는 또 한 사람 캐럴 브라우너 환경청장(41)은 업계의 끈질긴 반대 로비를 무릅쓰고 공기 오염 방지에 관한 법안을 이끌어낸 주인공이다.

이번에 뽑힌 인물 가운데는 백인이 지배하는 미국 사회에서 우뚝 선 흑인 여성이 5명이나 되어 관심을 끈다. 우선 눈에 띄는 사람이 콜린 파월 전 합참의장의 부인인 앨머 파월 여사(59)이다.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라난 그는 결혼 생활 31년 동안 공적인 자리에 나서기를 꺼린 전형적인 내조형이다. 95년 11월 어느날 파월 전 합참의장이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직 야망을 포기한다고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파월보다 부인 앨머 여사를 주목했다. 그런 결정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람은 부인밖에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과연 앨머는 “남편의 출마에 잡음이 많이 따를 줄 알았다. 남을 위해 우리의 삶을 희생하고 싶지는 않다”라고 털어놓았다.

앨머 여사와 달리, 적극적으로 백인 주류 사회에 진출해 인종의 벽을 넘어 제몫을 하고 있는 흑인 여성도 적지 않다. 보수주의적 도덕운동가인 케이 콜스 제임스, 농구계 스타였던 리사 레슬리, 애틀랜타 시 경찰국장 베벌리 하버드가 그 주인공들이다.
대통령 제소한 ‘용감한’ 폴라 존스

제임스 여사는 차기 버지니아 주지사 또는 공화당 대통령의 러닝 메이트 후보로 거론되리만큼 공화당에서 인기가 대단하다. 그는 93년 자신이 사는 버지니아 주 의회가 흑인 등 소수 민족의 권리를 제한하는 복지개혁안을 상정했을 때 이를 열렬히 지지해 흑인 지도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흑인들이 볼 때 그는 이단아임이 분명하지만, 바로 피부색을 초월한 이같은 행동 때문에 오히려 지도자감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25세인 리사 레슬리는 패션 잡지 <보그>나 스포츠 전문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를 통해 미국인들에게 얼굴이 꽤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를 잡지의 표지 모델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에게는 ‘스포츠 전도사’라는 별명이 붙어 다닌다. 그는 폭스 스포츠 채널의 해설가로 활동하며 시트콤 여러 편에 출연해 스포츠가 육체 운동 이상의 무한한 혜택을 제공한다는 평범한 메시지를 수백만 시청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흑인 여성 최초로 2만3천여 경찰을 거느리는 애틀랜타 시 경찰국장 자리를 맡은 베벌리 하버드가 경찰에 입문하게 된 것은 남편 때문이었다. 스물두 살 되던 해 그는 파티에서 만난 지금의 남편이 누군가에게 ‘베벌리 같으면 절대 경찰이 될 수 없을 거야. 저렇게 여성적이고 예뻐서야 어림도 없지’라고 한 말을 우연히 엿듣고는 그 길로 경찰학교에 응시했다. 아홉 살 난 딸의 엄마이기도 한 그는 현재 범죄율이 높기로 유명한 애틀랜타 시의 치안을 떠맡고 있다.

이들말고도 팝계에서 힙합이라는 독특한 음악으로 10대의 우상으로 떠오른 로린 힐(22)의 위세도 대단하다. 그에게 힙합이란 종교와도 같다. 그것은 단순히 흑인 청소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종을 위한 화합의 음악이다. 미국 전역 순회 공연은 물론이고, 그가 해외 공연을 한 나라는 서른 여덟 나라에 이른다.

순전히 개인적인 사연이 전국적인 논란거리로 떠오르면서 미국 사회에 일대 충격을 준 인물들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현직 대통령과의 성 추문으로 단숨에 언론의 눈길을 모은 폴라 존스(31). 최근 대법원이 현역 대통령이라도 자신이 연루된 사건이 재판 중일 때는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판시함으로써 클린턴은 존스가 제기한 성 추문 소송과 관련해 법정에 서야 할 처지가 되었다. 험난한 조종사 양성 코스를 마친 뒤 여성 최초로 B 52 폭격기 조종사가 되었으나 어처구니없는 간통 사건으로 군복을 벗은 켈리 플린 중위 역시 미국 사회, 특히 군부에 엄청난 파장을 안긴 주인공이다.

제니퍼 멕베이는 오클라호마 시 청사 폭파범 용의자가 바로 친오빠임을 확인해 주는, 혈육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증언을 법정에서 함으로써 사건을 일찍 마무리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오빠에게 극형이 선고되는 순간 누구보다 울부짖었던 사람이 그였다. 그의 양심적인 고백은 수많은 미국인의 심금을 울렸다.

또 열아홉 살 때 미스 웨스트 버지니아가 된 뒤 탄탄대로를 달려온 팻시 램지 여사는 자기가 못이룬 미스 아메리카의 꿈을 외동딸을 통해 실현하려 했으나 좌절하고 말았다. 지난해 12월 딸이 납치되어 무참히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4년 전 난소암 진단을 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정성을 다해 돌보던 딸이었다. 이 소식이 매스컴을 통해 미국 전역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그를 통해 현대에 보기 드믄 지극한 모성애를 재발견했다고 평가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가 아니고 외동딸 첼시아 양이 20명 중 한 사람으로 꼽힌 것은 어떤 까닭일까. 그에 관해 알려진 정보는 지난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뒤 현재 스탠퍼드 대학에 다니고 있으며, 발레에 관심이 많고 어린이 심장병 전문의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정도다. 대통령의 딸이지만 그의 행적이 언론의 관심을 끈 적은 거의 없다. 그가 매력 여성 20명에 뽑힌 것은 아마도 성 추문에 연루된 아버지와 치맛바람이 심해 빈축을 사는 어머니 틈새에서 별탈 없이 평범하게 성장한 데 대한 평가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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