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통신]원폭 투하에 숨겨진 비밀
  • 金勝雄 특파원 ()
  • 승인 1995.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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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원자폭탄을 개발키로 작심한 것은 히로시마에 첫 폭탄을 투하하기 6년 전인 1939년이었다.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원폭을 개발하라고 종용한 것이 바로 그 해였다. 한갖 종용 차원에서 그칠 법했던 아인슈타인의 원폭 개발 요청을 루스벨트가 덥석 받아들인 데는 그만한 사유가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편지 말미에 ‘잘못하면 히틀러가 먼저 원폭을 개발할지도 모른다’는 단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초 공격 목표는 독일

이 짤막한 단서 한마디가 원폭 투하 50년이 되는 지금 새로운 논란의 불씨가 돼 화제다. 히로시마에 대한 원폭 투하의 타당성 여부를 놓고 아직까지도 일본 정계를 혼미에 빠뜨리고 있는 클린턴 대통령의 ‘사과할 수 없다’는 발언도 따지고 보면 이 단서에서 발원한다.

당초 개발의 이유와 원인이 됐던 나치 독일을 상대로 상정한 원폭이 왜 대상을 바꿔 일본에 투하됐느냐는 논란이 바로 이 대목에서 파생하는 탓이다. 독일인의 씨를 말리려 만든 원폭을 어째서 일본 종자를 말살하려는 데 전용했느냐 하는, 서양인에 대한 일본인 특유의 자조적 정서를 터뜨린 것이다.

미국 다트머스 대학의 역사학 교수 마틴 셔윈 박사는 20년 남짓 이 원폭 개발의 경위를 캐왔다. 그에 따르면, (당시) 미국 국방부의 극소수 군사 전문가 몇명만이 원폭의 투하 대상을 일본으로 알고 있었다. 원폭 제조에 직접 참여한 과학자들마저 이 폭탄의 용도가 히틀러를 제압하는 데 쓰이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43년 초 뉴멕시코 주의 로스앨러모스 산악 실험실에 모여 개발에 참여한 연구진 가운데는 나치로부터 탈출한 유태인 학자도 여러 명 있었다.

투하 대상이 일본으로 확정된 것이 공식적인 문헌으로 남은 때는 45년 4월23일, 국방부의 원폭개발국장 레슬리 그로브 장군이 전쟁장관에게 올린 메모 속에 ‘투하 목표 지역은 예정된 대로 일본입니다’로 적혀 있었다. 히로시마에 투하되기 불과 백일 전이었다.

논란은 여기서 더욱 뜨거워진다. 왜 독일이 투하 대상에서 제외됐느냐가 논란의 핵심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매릴랜드 주 타코마파크 시에 있는 에너지·환경연구소의 물리학자 아건 마키자니 소장은 곧 출간될 원자과학자 회보에 그 이유를 소상히 설명함으로써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나치 핵 제조에 도움 줄 ‘불발탄’ 우려해 일본에 투하

놀라운 것은, 원자폭탄 투하 지역을 독일에서 일본으로 바꾼 주된 이유가 독일에 투하한 원폭이 자칫 불발탄이 되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점이다. 만에 하나 불발로 그칠 경우, 미국이 천신만고 끝에 만든 원폭이 히틀러의 수중에 들어가 나치의 원폭 제조를 촉진시킨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일본을 투하 예정지로 삼고 나서도 미국은 이같은 불발 위험성을 충분히 검토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독일에 비해 일본의 원폭 연구가 훨씬 처진 상태였던 만큼 설령 불발로 그칠지라도 그리 치명적인 이적(利敵)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당시 국방부는 진단했다는 것이다.

마키자니 박사는 구체적으로 43년 5월5일 백악관 회의를 예로 들어 불발의 대안(代案) 찾기에 열렬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아무리 일본이라 하지만 불발 사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피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불발된다 하더라도, 일본군이 원폭을 수거해 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수심이 일정 수준 이상인 바다를 투하 장소로 고르고, 가능하면 항구 부근 해상에 떠있는 일본 전함을 주 공격 목표로 삼는다…’ 그 날 회의의 의결 사항이었다.

마키자니 박사의 이 ‘특종’에 가까운 논문이 발표되자 물리학자들은 물론 셔윈 교수 같은 사학자들도 감탄하고 있다.

원폭 개발 당시 로스 앨러모스 산악 연구소의 이론 팀장을 역임한 한스 베드 박사마저 최근까지도 “주적(主敵)을 나치로 알고 지내 왔다”며 물정에 어두운 학자의 일면을 나타냈다. 베드 박사의 코멘트는 그러나 그 다음이 일품이다. “핵무기가 갖는 전쟁 저지력은 이처럼 원폭 개발 이전부터 작동했군요!” 독일한테 핵을 쓰지 못한 이유를 그는 이처럼 한마디로 갈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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