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인터뷰]북한측 4자회담 실무 주역 리 근
  • 이창주 (모스크바 대학 교수 ) (sisa@sisapress.com)
  • 승인 1997.08.2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가 4자회담 조건으로 식량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는 내용은 잘못된 것이다. 미국과 남조선이 협력을 약속했기 때문에 우리는 바쁜 처지에서 식량 문제를 서둘러 달라는 입장을 비공식으로 요청한 것이다.”
8월5∼7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4자회담 예비 회담은 한국전 종전 이후 한국·북한· 미국·중국 등 한반도 관련 네 당사자가 사상 처음으로 만난 역사적인 자리였다. <시사저널>은 한국 언론으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의 대미 창구이자 4자회담 예비 회담 실무 주역인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리 근 차석 대사를 만나 4자회담에 대한 북한의 전략을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본지 편집자문위원인 이창주 모스크바 대학 교수가 8월14일 뉴욕을 방문해 이루어졌다. <편집자>

이창주:4자회담 예비 회담을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북한의 대미 창구인 리대사가 실질적인 제반 준비 작업을 했으며, 예상되는 중요 쟁점 사항에 대해 미국측에 북한의 입장을 사전에 전달한 것으로 안다. 이번 뉴욕 예비 회담 성과와 결과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리 근:이번 뉴욕 4개국 예비 회담은 하나의 준비 모임으로 보면 된다. 처음부터 특별한 결과를 예상한 것은 아니다. 참여하는 각국의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였다고 본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한반도 평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후 최초로 네 나라가 참여하는 다자간 국제 회의가 열렸다는 상징성과, 앞으로 지속적인 회담 개최에 합의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북조선은 몇 가지 우려를 가지고 있다. 우리측 회담 대표들은 분명하고 확고한 원칙을 갖고 예비 회담에 참여하였다. 앞으로 이 부분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수용되느냐에 따라 회담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나리라고 본다.

이창주:뉴욕 예비 회담을 개최하기 전에 세 차례에 걸쳐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이 참여한 3자 설명회와 접촉이 있었다. 상식적으로 볼 때 북한이 이번 회담과 관련해 충분한 사전 지식을 가졌으리라고 생각된다. 북한 당국이 가지고 있는 우려와 원칙에 대한 내용을 설명해 달라.

리 근:우리가 회담 수락과 관련해 미국에 요구한 내용 중 핵심은 정치적 지위에 관한 것이다. 남조선과 중국은 외교 관계를 맺고 있으며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북조선과 미국은 외형적으로 선린 관계를 추구하고 있으면서도 공식으로는 아직도 적대적이다. 이러한 상황은 회담 당사자의 아주 불평등한 정치적 지위를 나타내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와 정치적 제약을 풀어야 한다. 제네바 조·미 합의서에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경수로 사업이 내달 9일 착공되고 이에 따른 부속 합의서가 채택돼 실행 단계에 들어가는데도 미국은 다른 부수 사항을 들어 이를 지연시키고 있다. 이교수가 말한 예비 회담 전 3자 협의에서 미국과 남조선 대표들은 4자회담 목적을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간 신뢰를 구축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이 과정에서 북조선 식량 지원 문제를 협의한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 예비 회담에서 미국과 남조선 대표들은 본질적 사항을 비켜 가려고 했다. 우리는 4자회담에서 평화 체제 수립·긴장 완화·남북 신뢰 구축 등을 포괄적으로 협의해야 한다고 본다. 한반도 평화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남조선에서 미군이 철수하는 것과 조·미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문제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우선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다. 남북 간의 신뢰 구축이나 긴장 완화는 남북 당사자끼리 협의할 사항이다. 남북 간에는 이미 이 부분에 대한 기본 합의서가 채택되지 않았나. 남북 기본 합의서 서두에 민족간 신뢰 구축을 명기하고 이를 특수 관계에 있는 민족 내부 간의 호상 협력과 노력으로 성취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국제 회의에서 논의할 사항이 아니다. 식량 지원 문제에 대해 우리는 솔직히 불만을 갖고 있다. 미국과 남조선은 분명히 4자회담에서 이 문제를 협의키로 약속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4자회담과 식량 자원을 연계할 수 없다고 한다.

이창주:북·미 관계 개선은 4자회담과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국가 간의 외교 기준으로만 볼 경우 리대사가 지적한 정치적 지위의 불평등은 공감하지만 4자회담 진행 과정에서 북한측에 특별히 불리한 것은 없다고 판단된다. 이번 뉴욕 회담을 주관한 미국 역할을 어떻게 보는가? 또 9월에 있을 2차 예비 회담에서 의제 문제를 풀 수 있으리라 보는가? 상당수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이 시간을 끌면서 북·미 관계 진전과 식량 지원 등 실속을 챙기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리대사의 솔직한 견해를 밝혀 주었으면 한다.
리 근:조·미 관계는 4자회담과 무관하다. 그렇지만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생각이다. 정치적 지위와 경제 제재 완화 요구가 바로 이러한 상황 판단에 따른 것이다. 미국을 믿고 싶다. 카트만 차관보가 진행한 이번 회의는 비교적 잘 되었다고 믿는다. 2차 예비 회담 준비를 하면서 우리 김계관 외교부 부부장이 회의를 주관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내 개인 생각으로는 카트만 차관보가 좋은 본보기였으며 훌륭했다고 본다. 미국이나 남조선 일각에서 말하는 대로 우리가 4자회담이 참여하는 조건으로 식량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는 내용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단호하게 말하건대 식량 지원 문제는 4자회담의 전제 조건이 절대 아니다. 미국과 남조선이 협력을 약속했기 때문에 우리는 바쁜 처지에서 이 문제를 서둘러 다루어 달라는 입장을 비공식으로 요청한 것이다. 현재 우리는 회담 전망을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다.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호상 이해가 이루어지면 의제 문제에도 합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서둘러서도 안되며 또 당장 일시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미국과 남조선은 수시로 만나서 4자회담 대책을 수립하고 있지만 우리는 중국과 그러한 절차를 갖고 있지 않으며 그렇게 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그렇지만 심정적으로 중국이 우리 주장을 동조하고 있다고 본다. 어느 언론에는 중국이 미국과 남조선이 주장하는 포괄적 의제를 찬성하는 것으로 발표되었으나 이것은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이창주:2차 예비 회담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이 뜻은 미국 혹은 중국과의 개별 접촉을 의미하는 것인가? 리대사는 북·미 관계의 실무 사령탑이며, 앞에서 말한 미국 고위 인사들이 평양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입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계가 있겠지만 방문 경위와 결과를 말해 줄 수 있는가?

리 근:2차 예비 회담을 위해 미국과 접촉하는 문제는 내가 얘기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다만 우리도 일상적으로 대미 협상 창구를 가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질문한 샘 넌 전 상원 군사위원장과 레이니 전 서울 주재 대사의 평양 방문은 샘 넌 의원이 상원 군사위원장일 때 요청했던 것인데, 그동안 보류되고 있다가 백악관의 필요에 따라 방문이 실현된 것이다. 외교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방문 성격이 개인 자격이었지만 클린턴 행정부의 특사 자격으로 예우하였으며, 조·미 관계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한다. 포터 고스 하원 정보위원장 일행 7명이 평양을 방문한 것도 같은 성격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들 방문단 모두 사전 사후에 백악관 브리핑 절차를 거쳤다는 점을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조·미 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북조선 방문을 희망하는 미국의 지도급 인사들이 있으면 협조할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이 서울에서 나오는 신문 보도와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창주:지난 8월4일 김정일 비서의 문건이 발표되었는데, 내용을 보면 북한의 외교 정책이 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몇 가지 특징을 보면 ‘미국을 백년 숙적으로 보지 않겠다’‘조·미 관계를 발전시키겠다’‘일본이 진심으로 과거를 반성하면 비정상적인 조·일 관계도 개선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수립하겠다’ ‘남북 관계도 신뢰와 화합의 관계로 전환해야 하며 정치 대결 상태를 취소해야 한다’ ‘남조선 당국자들이 긍정적 변화를 보이면 허심탄회하게 협상하겠다’ 등 과거와는 상이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금년 하반기에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김정일 비서의 당 총서기 및 국가 주석직 승계와 관련한 새로운 외교 통일 정책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리 근:말한 바와 똑같다. 우리는 조·미 우호 관계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제국주의적 욕망만 버린다면 그들과 적대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하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 지도자의 정책이다. 이는 남조선에 새로 탄생할 정부에게도 민족 화합과 통일에 대한 역사적 책임감을 제시하는 것이다. 김정일 동지는 앞으로 남조선 당국자들이 어떤 자세와 입장을 가지고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지켜보겠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보기에는 4자회담이 잘 진행되고 새해가 오면, 남북간 화합이나 신뢰 문제가 잘 풀리고 우리의 대미·대일 관계도 호혜 관계로 바뀌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