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 지내, 세계적 관광지 될 것"
  • 판문점·金鎭華 편집위원 ()
  • 승인 1998.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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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중립국감시위원단 스위스 대표단장 페터 수터 소장 인터뷰
판문점 중립국감시위원단(NNSC) 스위스 대표단장 페터 수터 소장(49)은 직업 외교관이다. 4년 전 판문점 근무를 자원하면서 별 2개를 달고 한국에 온 그는, 판문점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군사분계선 30m 앞 잔디밭에서 음악회를 여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국내외 인사 2백여 명을 초청해 스위스 카르미나 현악 4중주단의 모차르트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는 왜 북한군 코앞에서 음악회를 여는가, 그리고 유럽인들에게 판문점은 무엇인가? 10월20일 열릴 공연에 앞서 판문점 근무 4년째인 대사급 외교관 수터 소장으로부터 ‘판문점 공연’의 의미를 들어보았다.

왜 북한군 코앞에서 음악회를 열게 되었는가?

한국전쟁이 끝난 지 거의 반 세기 동안 판문점에서는 확성기를 통해 선동적 연설과 요란한 선전 음악을 시도 때도 없이 울려퍼졌다. 평상시 조용하기 이를 데 없고 겉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평화로운 이곳에서 이제 좀 다른 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남북한 양측, 특히 북한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가 이제 현악 4중주의 평화로운 음악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내 생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어느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어 카르미나 4중주단에 판문점 연주를 요청했더니, 그들이 나의 구상을 기꺼이 받아 주어 무료 공연을 하게 되었다. 카르미나는 일본과 대만 공연 사이에 짬을 내어 한국에서 단 한번 판문점 공연을 하기 위해 24시간 동안 체류한다.

프로그램을 보니 모차르트 곡뿐인데, 왜 그런가?

카르미나는 모차르트의 <불협화음 4중주>로 막을 열어, 점차 조용해지면서 피날레에 이르러서는 완전한 하모니를 이루는 곡으로 끝을 맺는다. 지금도 들려오는 확성기의 시끄러운 소리가 조화의 소리로 바뀔 날이 오기를 염원하는 상징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북한측은 이 연주회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군사분계선에서 약 30m 떨어진 잔디밭에서 연주회가 열린다. 북한군 초소와 감시탑에서 연주회 모습이 빤히 보이고 음악 소리도 들린다. 이 날도 확성기를 튼다면 ‘연약한 모차르트’는 죽어버릴 것이다.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할 수 없다. 4중주단에게 연주 도중에 북으로부터 ‘소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미 ‘경고’해 두었다.

북한측에 사전에 통보하고 양해를 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럴 생각도 있었으나, 오히려 반감을 일으킬지 몰라 단념했다. 각국 대사 등 많은 외국 인사가 참석하니 방해하지 않으리라 믿고 싶다.

판문점 중립국감시위원단 스위스 대표단원은 군인 계급장을 달고 있지만 모두 민간인이라는데, 왜 그런가?

나는 현재 직업 외교관이다. 외무부 평화정책국장으로 위기 예방 외교 정책을 맡아왔다. 제3국에 선거감시단을 파견하고 평화유지군에 참여하는 일들을 해 왔는데, 판문점 근무도 외무부에서 맡아 온 나의 임무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중립국감시단 일은 군사적인 문제뿐 아니라 미묘한 외교적 사안이 많으므로 외교관을 발탁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고 군사에 문외한은 아니다. 스위스는 국민방위 체제를 오래 유지해 왔기 때문에 20∼50세 국민은 누구나 장기간 민방위 훈련을 받는다. 따라서 군 관계 경험과 지식이 충분하다고 믿는다. 나의 부하들도 마찬가지이며, 과거 스위스 대표들도 모두 현직 외교관이었다. 현재 스웨덴 대표도 외교관이다. 판문점에 파견될 때는 군 계급이 주어진다.
벌써 4년 동안 판문점에서 근무했는데, 생활이 단조롭고 무료하지 않은가?

나의 전임자들은 예외 없이 판문점 근무가 일생에 잊을 수 없는 귀한 경험과 독특한 생활관을 갖게 하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한다. 특히 나에게는 더욱 그렇다. 20세기 중반에 시작된 한국전쟁의 상처가 이 세기를 마감하는 현시점에서도 아물지 않고 있으므로, 판문점 근무는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직접 체험하는 아주 귀한 경험이다. 보다시피 겉으로 이토록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이곳에 보이지 않는 긴장과 긴박감, 전류의 흐름과 같은 야릇한 떨림이 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초현실적 회화를 대하는 느낌이랄까, ‘카프카’적인 장면을 보는 그런 느낌이랄까. 이곳에 와서 실제 살아 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하고 독특한 세계이다. 때문에 판문점 근무자는 모두 지원자이고, 이곳 근무는 특권으로 여겨진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없는 특이한 곳이다.

가장 인상적인 경험은 무엇인가?

미군 유해가 북한에서 송환되는 장면이었다. 70세가 넘은, 백발이 성성한 퇴역 군인들이 거의 반 세기 만에 분계선을 넘어 돌아오는 동료의 유해를 바라보는 그 장면, 그들의 가슴과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도저히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더욱 잊을 수 없는 것은 소 5백 마리가 북한에 들어간 장면이다. 한국의 역사와 한국인의 감성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가슴 뭉클한 상징적 장면은 드물 것이다.

판문점을 방문하는 외국인들 가운데 유럽인은 미국인과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데?

의외로 판문점을 찾는 유럽인이 많다. 특히 중립국감시단을 파견한 스위스와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대부분 이곳에 들른다. 유럽인들은 한국의 분단이 너무도 철저하고 절망적이라는 현실에 놀란다. 많은 전쟁과 독일의 분단을 경험한 유럽인들은 판문점이 상상을 초월한, 잊을 수 없는, ‘비현실’이란 느낌을 가지고 돌아간다. 그 점에서 미국인의 반응과는 다르다.

이곳에서 임기 5년을 채울 생각인가?

나는 자원해서 왔다. 조금 전 무료하지 않느냐고 질문했는데, 이곳에서 똑같은 날은 없다. 겉으로는 그럴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변화를 하루하루 ‘느낌’으로 경험한다. 나는 용산 미8군 부대에 장성 숙소도 가지고 있어 이따금씩 출퇴근하면서 바라보는 들녘의 평화로움, 인간이 만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비무장지대의 야릇한 풍요함을 대하곤 한다. 마치 나만의 거대한 ‘리조트’에 사는 기분이다. (땅밑을 흐르는) 수맥과도 같이 보이지 않는 긴장과 평화로움, 이것은 참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대조의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얼마나 조용한가. 지금 들려오는 저 확성기 소리만 아니라면 말이다.

당신의 표현처럼 인간이 만지지 않은 이 비무장지대의 환경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가?

1000㎢인 거대한 비무장지대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독특한 환경 보존 지대다. 특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적게 지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가감하지 말았으면 한다. 무공해 전동차를 일정한 궤도에서만 운행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관광객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내버려 둔다면 쉽사리 망가질 것이 뻔하다. 현재의 스위스·스웨덴 막사, 북측에 여전히 남아 있는 중국·폴란드·체코 막사, 작은 다리, 종각, 정원, 어느 하나도 없애지 말고 그대로 둔다면, 뛰어난 관광 유적이 될 것이다. 이들은 모두 50년 가까이 바로 이 자리에 있던 역사의 한 단면이다. 휴전 직후부터 있던 남측의 ‘자유의 집’이 헐리고 그 자리에 규모가 훨씬 큰 평화의 집이 건설되었다. 자유의 집 같은 역사적 건물은 그대로 보존한 채 다른 건물을 지어도 될 텐데. 아시아 지역 유럽공관장회의가 한국에서 열리면 그들은 모두 판문점에 들른다. 최근에도 스웨덴 대사 30명, 핀란드 대사 15명이 단체 방문했다. 통일이 되는 날, 판문점과 비무장지대는 ‘아주 특별한’ 세계적 관광지가 될 것이다. 이곳을 개발하지 않는 한 말이다. 유럽인들은 특히 이런 곳을 좋아한다.

임기를 마친 뒤 계획은?

외무부로 돌아간다. 별 2개는 달지 않겠지만, 나의 군 계급은 영원히 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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