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군림할 자격 갖추지 못했다”
  • 워싱턴·卞昌燮 편집위원 ()
  • 승인 1998.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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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스 홉킨스 대학 마이클 만델바움 교수 인터뷰
다음은 근래 들어 우방을 포함한 세계 각국으로부터 갈수록 눈총을 받고 있는 미국의 외교 행태에 관해 존스 홉킨스 대학 국제대학원의 미국 외교 정책 전문가인 마이클 만델바움 교수와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근래 들어 미국과 동맹국 사이에 균열이 커지고 있고, 그 원인으로 미국의 오만한 외교 행태를 꼽는다. 이런 식의 외교 행태를 어떻게 보는가?

국제 정치에는 이견과 마찰이 따르기 마련이며, 동맹국 간에는 특히 심하다. 어쩌면 당연하기까지 한 이견이나 잡음은 냉전 때는 대소 단결을 이유로 억제되었다. 따라서 미국과 우방 간의 마찰을 위험하다고만 볼 필요가 없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냉전 후의 미국 외교 정책이 제대로 홍보되지 않다 보니 오해가 심해진 측면도 있다. 우방들이 미국이 건방지며, 너무 나서고, 오만하다고 보는 것도 부분적으로는 오해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미국이 욕을 먹으면서까지 개입주의적 태도를 고수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요즘 분위기는 다르다. 미국은 예전처럼 국제 문제에 적극 나서기를 꺼리고 있다. 미국의 대외 정책은 국내 여론에 의해 결정된다. 미국이 현재 고립주의에 빠져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냉전 때처럼 국가의 자원을 국내 정책 못지 않게 외교 정책에 배분하는 데는 그리 관심이 없다. 예를 들어 전투 지역에 미군을 보내는 데 대해 미국민은 반대한다. 그러나 많은 나라들이 어떤 문제가 생기면 미국이 지도적 역할을 수행해 주기를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기대가 있는 한 미국은 앞으로도 개입주의적 태도를 고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내의 고립주의적 여론이 커지면 미국 정부의 개입주의적 대외 정책이 영향을 받지 않겠는가?

궁극적으로 그럴 것이다. 특히 비용 문제가 따를 때는 더욱 그럴 것 같다. 예를 들어 주한미군 문제만 해도 그렇다. 많은 미국인들은 세계 11대 경제 대국인 한국이 북한에 비해 월등 나은 상황에서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주한미군을 주둔시킬 필요가 있느냐고 묻고 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갈수록 안보보다는 경제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이라크 사태를 해결하는 데는 러시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를 두고 미국내 대부분의 비판가들은 미국의 중동 외교가 실패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는가?

외교 정책에 관한 한 러시아는 미국과 이해 관계가 다르다. 러시아는 후세인이 핵무기를 갖거나 인접국을 무력으로 점령하는 것에 물론 반대하지만, 그밖의 면에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걸프전이 끝난 지 오랜 상황에서 미국의 우방들이 다른 견해를 갖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를 굳이 미국과 러시아 간의 외교 대결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미국내 보수 언론들은 유엔 안보리 5대 상임 이사국 가운데 러시아·중국·프랑스가 이번 이라크 사태에서 보여준 것처럼 앞으로 반미 집단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는데….

일리는 있지만 그런 견해에 찬동하지 않는다. 첫째, 문제의 상임 이사국 모두가 거부권을 갖고 있어 연대할 이유가 없다. 둘째, 유엔 안보리가 세상을 다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셋째, 과거의 경험이 말해주듯, 러시아와 중국은 서로 다른 이해 관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들 세 나라가 반미 연대를 할 조짐이 있다는 식의 분석에 찬동할 수 없다. 또 한 가지, 러시아가 중동 문제에 대해 미국과 다른 정책을 추구한다고 해서 냉전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러시아와 중국을 ‘구미화’ 하지 않을 경우 연대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국제 질서를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라고 볼 수 있는가?

미국이 가장 강력한 국가로서 자연스런 지도력을 행사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미국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본다면 그렇지 않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개입주의적 정책을 선호하지만, 예전처럼 국내에서 거둔 세금이 바깥에서 쓰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앞으로의 세계는 세력 균형에 의해 국제 질서가 정해지기보다는 어떤 국제 질서 규범으로 움직이는, 그런 세계가 되었으면 한다. 나는 미국이 세계에 군림할 자격을 갖추었다고는 보지 않는다. 미국은 앞으로의 국제 질서가 군사력이 아닌 공통의 규범 및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질서로 재편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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