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세금 전쟁 선포한 일본 이시하라 지사
  •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
  • 승인 2000.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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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도 이시하라 지사 외형표준과세 도입 '논란'
지금 일본은 이라는 책의 저자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 지사가 또다시 큰 소리로 ‘No’를 부르짖고 있어 화제이다.

이시하라 지사는 지난 2월7일 돌연 새로운 형태의 지방세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새로운 지방세란 ‘외형 표준 과세’라고 불리는 세제로서, 기업이 이익을 냈는가 손실을 냈는가를 가리지 않고 자본금·매출액·사무실 면적·종업원 수 등을 감안하여 법인 사업세를 부과하는 세금을 말한다.

이시하라 지사는 우선 도쿄도에 본·지점을 두고 있는 금융기관 중 전체 수신액이 5조 엔을 넘는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내년 3월부터 새로운 형태의 지방세를 징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실시 기간은 5년이며, 세율은 3%(일부 2%) 정도가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율은 금융기관의 영업 총수익에 부과될 전망이다.

현재 수신액이 5조 엔을 넘는 금융기관은 도쿄미쓰비시 은행 등 9개 시중 은행과 요코하마 등 8개 지방 은행, 미쓰비시 신탁 등 6개 신탁은행, 중앙 은행인 일본은행을 포함하여 30개 정도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시하라 지사가 대형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외형표준과세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도쿄도의 재정 상태를 재건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도쿄도는 얼마 전 6조 엔을 밑도는 예산을 편성했다. 불황으로 세수가 부족해 12년 만에 초긴축 예산을 편성한 것이다. 도쿄도의 올해 세수 부족은 6천2백억 엔에 이를 전망이다.
재정 재건 위해 세원 확보 ‘발등의 불’

도쿄도는 일본의 지방자치단체 중에서는 유일하게 중앙 정부로부터 지방교부세를 받지 않고도 독자적으로 살림을 꾸려갈 수 있는 모범적인 지방자치단체이다. 그러나 장기 불황의 여파로 세수가 줄어, 독자적인 공공 사업이 제한되고 단독으로 지방채를 발행할 수 없는 ‘재정 재건 지방자치단체’로 전락할 위험에 직면했다. 실제로 도쿄도는 내년 중앙 정부로부터 지방교부세 1천3백억 엔을 지급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시하라 지사는 도쿄도의 재정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세원 확보가 최우선 과제라고 판단하고 우선 대형 금융기관에 한정해 외형표준과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도쿄도는 이 제도를 도입하면 연간 세수가 1천1백억 엔 정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외형표준과세는 일본의 지방세법 72조에 따라 현재도 전기·가스·생명보험·손해보험 등 4개 업종 기업들에 1.3%가 부과되고 있는 세제이다. 그런데도 도쿄도가 유독 대형 금융기관에 한정하여 외형표준과세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도쿄에 본·지점을 두고 있는 대형 금융기관들이 도쿄도에 지방세를 거의 납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형 금융기관들은 거품 경제 시절 도쿄도에 매년 약 2천억 엔씩 법인 사업세를 납부했다. 그러나 거품 경제 붕괴와 함께 본격적으로 부실 채권 처리가 시작되면서 금융기관들의 법인 사업세 납부액이 매년 줄어들어 지난해에는 34억 엔에 그쳤다.

이시하라 지사는 “금융기관들이 부실 채권 처리라는 과거의 마이너스 유산을 핑계로 납세를 기피하면서도 도쿄도의 행정 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전연 부담하지 않고 있다. 재정 기반 안정과 경기 회복은 도쿄도의 재생을 추진하는 데 불가결한 것이다”라는 말로 외형표준과세를 금융기관에 한정해 도입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세법의 특례를 인정하더라도, 도쿄도가 독자적으로 새로운 지방세를 신설하려는 것은 돌출에 가까운 행위이다. 오부치 내각은 2월22일 각의를 열고, 이시하라 지사의 돌출 행위에 대한 통일된 견해를 마련했다.

오부치 내각은 과세 대상을 수신액이 5조 엔을 넘는 금융기관에 한정한다는 도쿄도 안이 어떤 근거로 마련되었는지 반문하면서, 세제는 국세나 지방세를 막론하고 공평성·중립성 원칙이 지켜져야 하며, 다른 정책 목적과의 균형을 배려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반론했다.

또 도쿄도가 독자적으로 외형표준과세를 도입할 경우 결국 도쿄도를 제외한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중앙 정부의 지방교부세가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본은 중앙 정부가 징수한 법인세 중 32.5%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에 지방교부세라는 명목으로 배분하고 있다.

외형표준과세 제도는 도쿄도의 독자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라 경기에 좌우되기 쉬운 지방자치단체의 세수를 안정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1960년대부터 논의되어 온 문제이다. 일본 정부의 세제조사회도 지난해 7월 외형표준과세를 도입할 경우 과세 표준으로 기업의 사업부가가치·급여 총액·사업소 면적·자본금 등 4개 안을 제시했다. 오부치 내각은 외형표준과세 제도를 도입하려면 도쿄도 단독이 아니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똑같은 기준으로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도쿄도의 표적이 된 금융기관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이시하라 지사의 외형표준과세 도입 발표와 함께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졸지에 1천1백억 엔에 달하는 세금 부담을 강요받게 될 금융기관들은 도쿄도에 대한 행정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다음과 같은 반박 논리를 내놓고 있다.

‘금융기관들에 대해 외형표준과세가 부과될 경우 경제 활성화에 지장을 초래할 뿐더러, 도쿄 금융 시장 전체를 위축시킨다. 나아가 50조 엔에 달하는 공적 자금(세금)을 투입해 금융기관의 경영 건전화를 추진하고 있는 마당에 새로운 세금이 부과되면 금융기관들의 당기 순이익이 4천3백억 엔 정도 감소할 우려가 있다.’

금융기관의 재건을 책임졌던 오치 미쓰오 전 금융재생위원장도 이시하라 지사를 ‘소동을 일으키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비하하면서, 그의 깜짝 발언으로 은행 주가가 평균 12%나 하락했듯이 금융기관에 투입한 공적 자금 반환이 대폭 늦춰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도쿄도 의회, 만장 일치로 통과시킬 듯

그러나 여론의 대세는 이시하라 지사 편이다. 어떤 시민은 “태양의 계절(이시하라 지사의 데뷰 소설) 이래의 대히트이다. 소설 내용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갈릴 수도 있지만 이번 조처에 대해서는 모두가 만장 일치로 박수를 치고 있다”라고 전화를 걸어 왔다고 한다.

<아사히 신분>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도쿄도의 외형표준과세에 대해 59%가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반대는 15%에 불과했다. 또 외형표준과세를 금융기관뿐 아니라 전업종으로 확대하는 것이 좋다고 대답한 사람이 전체의 36%였으며,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일제히 실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51%에 달했다.

일본 국세청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체 법인의 약 65%가 적자 상태이다. 현행 세법상 이런 법인에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지만, 적자 법인일지라도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각종 행정 서비스를 제공받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 여론의 대세인 것이다.

일본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도 이시하라 지사의 ‘No’라는 외침에 뜨거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전국 지사회 회장인 쓰치야 요시히코 사이타마 현 지사는 “지방 분권을 추진해 가기 위해서는 권한 이관만이 아니라 지방세 재원 확대가 필요하다. 조기 실현을 위해 정부가 진지하게 대응해 주기 바란다”라고 밝혔다.

도쿄도 의회도 무당파 소속인 이시하라 지사의 외형표준과세 법안을 3월 초 만장 일치로 통과시킬 전망이다. ‘No’라고 외치는 이시하라 지사에게 ‘Yes’ 표를 던지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그의 과감한 도전과 개혁 자세가 크게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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