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통신]프랑스 신생아 36%가 사생아
  • 고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6.09.1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초에 타계한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에게 마자린이라는 사생아가 있다는 사실이 파리 통속 잡지들의 커버 스토리가 된 적이 있었다. 94년의 일이다. 그때만큼 사생아라는 말이 프랑스인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린 적도 없었다. 명사들의 사생활은 시대와 나라를 초월한 잡담거리였다.

그러나 사생아라는 말이 지닌 어두운 어감에도 불구하고 마자린이 별난 경우는 아니었다. 바로 그 해에 프랑스에서 태어난 아이 셋 가운데 하나는 사생아였기 때문이다.

프랑스 국립통계청이 최근 공개한 ‘프랑스인의 결혼·이혼·자유 결합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94년에 태어난 아이 가운데 무려 36%가 혼외 출생자 즉 사생아인 것으로 밝혀졌다. 사생아를 프랑스어로는 ‘자연스러운 아이’라고 하는데, 사생아들이 36%에 이른다면 마자린을 포함한 사생아들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아이인 셈이다.

국립통계청의 이번 보고서는 44년 종전 이후부터 94년까지 50년 동안 프랑스인들의 결혼·이혼·자유 결합(법률상의 혼인 절차 없이 이루어지는 동거) 추이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로써 70년대 중반을 고비로 결혼보다는 자유 결합이 대세를 이루며 혼인 연령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여기서 70년대를 분기점으로 한 단절이 급격하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예컨대 72년의 경우 평균 혼인 연령은 남자 24.5세, 여자 22.5세로 종전 이후 최저를 기록했고, 그 해에 결혼한 남녀는 역사상 최고인 41만7천쌍에 이르렀다. 종전 후 20년 동안은 프랑스인들에게 결혼이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된 시기였다. 종전 이전에 태어난 프랑스인 가운데 90%가 이 기간에 결혼 생활을 경험했다. 당연히 자유 결합은 아주 드물었다. 75년 법률적 혼인 부부에 대한 자유 결합 부부의 비율은 3.6%에 불과했다. 65년에 정식 결혼 이전에 동거를 시작할 용기를 지닌 남녀는 전체의 10%밖에 안되었다.

하지만 그후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결혼은 더 드물어지고 더 늦어졌다. 이와 함께 자유 결합에 대한 선호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것은 68년의‘ 5월 세대’가 사회에 진출하면서 결혼을 포함한 전통적 가치 등을 허물기 시작한 데 큰 원인이 있다. 예컨대 72년에는 결혼한 남녀가 41만7천쌍이었는데 94년에는 25만4천쌍으로 39%나 줄어들었다. 이와 함께 결혼 연령도 높아져 94년의 평균 혼인 연령은 남자 28.7세, 여자 26.7세를 기록했다.

‘실험적 동거 후 결혼’ 90% 차지

이렇게 혼인 연령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혼전에 동거를 시작하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94년에 살림을 시작한 남녀 가운데 무려 90%가 자유 결합으로 그들의 공동 생활을 시작했다. 바로 이것이 사생아 비율이 이 해에 3분의 1을 넘게 된 이유이다.

61~65년에 5.9%에 머물렀던 사생아 비율은 90년에 처음으로 30%를 넘어섰으며, 94년에 36%에까지 이르렀다. 그렇지만 이 아이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사생아, 즉 ‘부정한 관계에 의해 태어나 부모로부터 버림 받은 아이’와는 거리가 있다. 대개의 경우 아버지가 친자 관계를 인지하기 때문이다. 사생아가 드물던 60년대에는 사생아 다섯 가운데 한 아이만이 아버지에 의해 인지됐지만, 그 비율은 75년에 40%로 늘었고, 92년에는 70%에 이르렀다. 85년에 태어난 아이 가운데 아직까지 아버지가 친자 관계를 인지하지 않은 아이는 3%밖에 안된다고 통계청의 이번 보고는 밝히고 있다.

사생아 출생률의 급격한 증가가 주로 혼전 동거 확산에 있는데도 그 아이들이 대체로 아버지에게 친자식으로 인지된다는 사실은, 자기 부모의 결혼식에 참가하는 아이들이 점차 늘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80년의 경우 혼인 당사자의 아이(들)가 참가한 결혼식은 전체의 6.9%에 머물렀으나, 93년에 이 비율은 20.7%에 이르렀다. 이 해에 거행된 결혼식 다섯 건 가운데 하나는 단순히 남녀의 법적 결합이 아니라 부모들과 그들 자식 사이의 결합이기도 했던 것이다. 요컨대 프랑스에서 사생아가 전체의 3분의1을 넘어선다는 것은 프랑스인들의 애정 윤리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혼인 방식의 변화, 즉 만혼 유행과 ‘실험적 동거 이후의 정식 결혼’ 방식이 확산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