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봅 돌의 한반도 정책 '상극'
  • 변창섭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6.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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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돌 대북 정책 분석/인식차 커 집권자에 따라 기조 달라질 듯
오는 11월5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본격적인 유세에 들어간 미국 공화당의 봅 돌 후보와 민주당 빌 클린턴 후보 가운데 누가 승리하는 것이 한국에 유리한가? 요즘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최근 공화·민주 양당의 전당대회를 통해 각 대권 후보가 천명한 정강 정책을 대비해 가며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저울질하고 있다.

92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부시 후보가 민주당 클린턴 후보에게 패했을 때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크게 당혹해 하면서 한반도 정책의 기조가 바뀌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북한 정책에서 북한을 협상 상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강경책을 펴온 부시 행정부와 달리 클린턴 행정부는 협상에 무게를 둔 유화 정책을 폈다. 클린턴 행정부는 수교를 포함해 미사일 통제, 미군 유해 송환 등과 관련해 직거래를 틈으로써 북한과 긴밀한 외교 접촉을 벌여왔다. 북한도‘미국과의 직접 협상’이라는 숙원을 클린턴 행정부에 들어 푼 셈이었다. 말하자면 클린턴 행정부는 부시 행정부와 180도 다른 북한 정책을 펼쳐왔다.
 

핵협상 타결 놓고 클린턴은 “치적” 돌은“굴욕”

물론 미국의 대외 정책 수립 특성상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정책 기조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다. 그러나 공화·민주 양당이 북한을 보는 시각에 본질적인 차이를 드러내는 만큼 이번 11월 선거에서 공화당의 봅 돌 후보가 승리할 경우 기존 대북 정책에는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 같다.

돌의 북한관은 지난 8월12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전당대회 연설에서, 집권하면 북한을 달래기 위해 미국 시민이 낸 세금으로 석유와 경수로를 원조해 주기로 한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 노력을 저지하겠다고 천명했다. 물론 그는 북한이 한국전 당시 실종 미군과 전쟁 포로 문제에 협력할 경우 북한과 관계를 개선할 용의가 있다는 말을 덧붙이긴 했다. 그러나 레이건-부시로 이어지는 12년 공화당 집권의 상징처럼 여겨져온‘힘의 외교’를 신봉해온 그는, 그간 기회 있을 때마다 클린턴 외교팀의 북한에 대한 유화 자세를 비난해 왔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돌이 집권하면 북한 정책의 기조가 클린턴 행정부와 본질적으로 달라지리라고 보는 관측이 우세하다. 특히 공화당 진영은 클린턴 외교팀이 치적이라고 평가해온 북한과의 경수로 협상을 ‘굴욕 외교’로 보고 있어 이같은 관측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공화당측은 북한이 94년 10월 제네바 핵합의를 통해 클린턴 행정부로부터 전례 없는 양보를 받아냈다고 본다. 돌 후보의 초강경 태도와 달리 클린턴 대통령은 지난달 하순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경수로 협상이 성공적으로 타결된 데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집권할 당시 고조되었던 북한의 핵위기 상황을 원만히 해결했다는 점, 특히 북한이 한때 추진했던 핵개발 계획을 완전히 중단시켰다는 점을 크게 강조했다. 말하자면 북한 핵위기 해소를 자신의 주요 외교 치적의 하나로 내세운 것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볼 때 클린턴의 북한 유화 정책은 그가 재집권할 경우 그대로 이어질 것이 확실하다.

북한을 테러국으로 간주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공화·민주 양당 시각은 서로 다르다. 공화당측은 정강 정책에서 국제 테러국으로 북한을 가장 먼저 언급한 뒤 이란·이라크·리비아·수단·쿠바를 차례로 들었다. 반면에 민주당측은 테러 문제에 관해 이란·이라크·리비아·수단은 거명하면서도 북한은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클린턴 외교팀이 평양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임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지난 2월 북한은 허 종 유엔 주재 차석 대사를 통해 북한이 앞으로 테러 행위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문서로 미국 정부에 전달했다. 그런데도 지난 7월 말 미국 국무부가 북한을 테러국 명단에 남겨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집권 민주당의 정강 정책은 당략에만 치우쳤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문제에 대해서도 공화당측은 매우 강경하다. 공화당측은 북한이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진 장거리 미사일이 알래스카와 하와이를 겨냥하고 있는데도 클린턴 행정부가 이런 위협을 고의로 무시했다고 비난했다.

적어도 현 시점에서 공화·민주 양당이 보여준 북한 문제에 대한 시각은 대조적이다. 물론 공화당이 천명한 대북 강경 기조가 집권 후 100% 실현된다고는 볼 수 없다. 설령 정강 정책으로 채택했더라도 막상 현실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판단 요소들을 고려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취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우방이자 한반도 정책의 직접 관련국인 한국의 입장을 도외시한 채 대북 정책을 입안해 집행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우리 정부의 처지에서 볼 때 공화당이 집권할 경우, 북한의 급작스런 붕괴를 막고 체제 안정을 꾀하기 위한 연착륙 전략에서 클린턴 행정부보다 긴밀히 협조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클린턴 정부는 북한에 대한 연착륙 전략을 수립하면서 북한 체제의 변화보다는‘안정’에 더 큰 비중을 둔 반면 우리 정부는 북한 체제의‘변화’를 유도해 궁극적으로는 평화적인 흡수 통일까지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시각차를 보여왔다.

공화당 집권하면 한·미 공조는 수월할 듯

이같은 본질적인 시각차 때문에 한·미 양국은 그동안 쌀과 경수로 지원 등에서 불협화음을 드러냈던 것이다. 정부측 연구소의 한 외교 전문가는 이름을 밝히지 말라며 “대북 강경 기조를 펼치고 있는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면 대북 연착륙 전략과 관련한 미국과 한국의 시각차가 클린턴 정부 때에 비해 크게 좁혀질 가능성이 있다”라고 분석했다. 그만큼 공화당 정부와는 대북 공조가 수월하리라는 것이다.

물론 공화당의 돌 후보가 당선된다 해서 한·미 공조가 클린턴 행정부에 비해 더 긴밀해질 것이라고 예단할 수는 없다. 단지 대북 정책에 관한 한 공화당 정부가 클린턴 정부에 비해 보수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정작 미·북한 수교 문제처럼 자국의 직접적 이해가 걸린 문제에 부닥칠 때 공화당 정부 역시 국익을 좇아 정책을 집행할 것이 틀림없다. 과거 부시 정권이 대북 강경 기조를 펼칠 때 남북한 간의 총리 회담 실현을 가로막은 것이나, 일본이 북한과 수교 협상을 서두를 때 이에 찬물을 끼얹은 전례가 이같은 사실을 반증해 준다. 다만, 전통적으로 반공주의를 표방하며‘힘의 우위를 통해 국제 평화를 유지한다’는 원칙에 충실해온 공화당 정부가 민주당 정부에 비해 대북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한국과 공동 보조를 맞출 수 있으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오히려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면 가장 당혹해 할 당사자는 북한일 듯 싶다. 과거 부시 대통령 집권 내내 곤욕을 치른 북한은 “부시의 4년 집권은 다른 나라들에 대한 끊임없는 군사력 위협 공갈과 무력 간섭 책동, 발광적인 전쟁 소동이었다”라고 격렬히 비난한 바 있다. 북한은 이번 공화당 전당대회가 끝나기 무섭게 공화당측이 정강에서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거론하고 장거리 미사일 문제를 언급한 데 대해, 조·미 합의문을 파괴하고 힘으로 북한을 압살해 전(全)조선을 지배해보자는 망상이라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북한은 또 공화당의 강경 보수 세력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며 “공화당이 당파적 이익에만 몰두해 조·미 간의 현안 문제에 근시안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외교안보연구원 윤덕민 교수는“북한이 클린턴 정부와 직접 상대하며 서울을 원격 조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만큼 공화당이 집권하는 것을 누구보다 못마땅해 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공화당이 집권해도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 유지라는 대원칙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나, 북한을 상대하는 각론 정책에서는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만반의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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