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로 건설, 순조로운 출발
  • 변창섭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6.07.0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KEDO·북한, 통신·통행 의정서에 합의…올 하반기 한전 인력·장비 北 파견될 듯
오는 2003년 북한에 공급할 경수로 건설 사업에 청신호가 켜지고 있다. 경수로 공급 주체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측과 북한은 지난 5월21일 특권 면제 및 영사 보호에 관한 의정서에 합의한 데 이어 6월14일에는 통신·통행에 관한 의정서에 최종 합의했다. 7월 중순에는 북한의 묘향산 초대소에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와 북한측 대표가 경수로 부지 인수와 북한이 제공하게 될 인적·물적 유료 서비스에 관한 의정서 체결 문제를 협의한다. 경수로 협상을 추적하고 있는 외교안보연구원 김용호 교수는 “앞으로 기술적인 문제에서 북한이 어떤 자세로 나올지 두고봐야 하겠지만, 현재로선 협상에 잘 순응하는 것 같다”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이번 통신·통행 합의에 따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주계약자인 한전은 빠르면 하반기부터 터를 다듬는 데 필요한 불도저·굴삭기·덤프 트럭 등 대형 중장비와 건설 요원을 경수로 건설 후보지인 신포 지역에 파견할 계획이다. 한전의 한 실무자에 따르면, 보통 터 닦기 작업에 1년, 지하 토목 공사에 열 달이 소요되기 때문에 경수로 1호기 공사는 빨라야 내년 5월 착공된다.

북한은 또 경수로 부지 안에 국제 전화·장거리 전화·팩시밀리를 설치할 전화 회선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통행 부문에서는 물자를 수송할 바지선과 소형 선박이 통과할 수 있는 직항 해로가 트이게 되었으나, 주요 기자재를 수송할 바지선을 댈 항만 개설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경수로 건설에 투입될 인원과 물자 수송에 필요한 공로(空路)의 경우 우선 함남 신포 부근에 있는 선덕 공항을 이용하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경수로 부지 기초 굴착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더 효율적인 항공로 개설 문제는 추가로 협의하기로 했다. 또한 추가 항로가 지정되기 전까지 우선은 북한의 고려민항 편으로 북경-선덕 공항간 항로를 이용하기로 합의했다.

미국계 기술감리사 역할 조정이 숙제

이번에 체결된 통신·통행 의정서는 지난해 12월 체결된 경수로 공급 협정을 뒷받침할 10개 후속 의정서 가운데 두번째이다. 아직 처리되지 않은 8개 의정서 내용에는 경수로 파견 요원 소득세 면세나 중장비 반입에 따른 관세 면제 등 행정 협조 사항도 들어 있다.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현재 경수로 사업이 전반적으로 늦어지고 있기 때문에 우선 사업 착수를 위해 시급한 의정서부터 협상해 체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측은 경수로 사업을 시작하는 데 긴요한 두 분야의 의정서가 체결됨에 따라 앞으로 공사 전반에 대한 기술 자문 및 감리를 맡을 용역 회사(program coordinator) 선정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감리사는 북한이 미국의 개입을 극대화하고 한국의 역할을 극소화하기 위해 지난해 6월 콸라룸푸르 경수로 협상 때 적극 주장해 생긴 일종의‘정치적 완충제’이다. 전문가들은 주계약자인 한전이 경수로 건설의 기술 부문을 감리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기술감리사의 입김에 따라 얼마든지 경수로 사업이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경고해 왔다.

물론 경수로 공급 협정은 기술감리사의 역할을 어디까지나 경수로 건설의 기술 부문에 대해 집행위원회에 자문하는 정도에 머무르도록 규정해 놓았다. 또 한·미·일 3국 대표로 이루어진 집행위원회를 만장일치제로 운영하도록 되어 있어 어느 한 나라가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기술감리사의 역할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처음부터 기술감리사를 창설하자고 주장해온 북한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이다. 뉴욕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본부의 우리측 한 실무자는“주계약자인 한전과 북한 간에 접촉이 원활할 경우 별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북한이 미국계 기술감리사를 등에 업고 일을 꼬이게 만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현재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측은 6개 회사의 기술 능력과 기술 용역료 등을 1차로 비교 평가한 뒤 우선 1~2개사를 선정하고, 7월 초순 최종적으로 용역 회사 선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현재 기술 감리를 맡을 후보로는 다국적 기업인 벡텔, 서전트 & 런디, 레이시온 등을 포함해 6개 회사가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