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길 ‘유럽 관통’ 가능한가
  • 파리·김제완 통신원 ()
  • 승인 1998.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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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아우른 신중도주의 실체 모호…영국·독일·프랑스 등 좌파 정부 노선에도 차이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가 프랑스를 방문해 리오넬 조스팽 총리와 함께 자동차에 올랐다. 블레어는 차 안에서 조스팽에게 제3의 길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자동차가 네거리에 이르자 조스팽이 물었다. “총리 각하 어느 쪽으로 갈까요.” 블레어는 이렇게 대답했다. “깜박이는 왼쪽 것을 켜고 핸들은 오른쪽으로 돌리라고 하세요.”

프랑스의 시사 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는 최근호에서 블레어의 신노동당 노선을 비꼬아 이같은 우스갯소리를 소개했다. 프랑스 사회당과 영국 노동당은 같은 좌파이면서도 차별성이 있음을 드러내는 사례는 이같은 얘기뿐만이 아니라 실제 상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3월24일 프랑스를 공식 방문한 블레어는 의사당에서 연설하면서 프랑스 의원들에게 좌와 우를 뛰어넘는 제3의 길과 신노동당의 노선을 역설했다. 그런데 박수 소리는 엉뚱하게도 우파 의원석에서 터져나왔다.

4월7일에는 블레어 총리 초청으로 유럽연합(EU) 소속 12개 회원국의 집권 사회당·사민당 당수들이 런던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블레어는 전세계 중도 좌파 정당들을 하나로 묶는 ‘중도 좌파 인터내셔널’이라는 야심에 찬 구상을 발표하고 동참을 권했다.

하지만 이날 다우닝 가에 집결한 사회당 지도자들 대부분이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한 사람은 조스팽 총리였을 것이다. 정통 좌파를 표방하는 조스팽의 처지에서는 미국 민주당까지 포함하는 그룹에 참여하라는 제의에 모욕감을 느꼈을 법도 하다. 프랑스에서는 드골이나 시라크와 같은 우파조차 미국의 민주당보다는 왼쪽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학 관계 싸고 좌파 정부끼리 미묘한 신경전

이같은 사례들은 영국과 프랑스의 좌파 정권 사이에 사상과 노선 차이가 크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준다.

문제는 지난 10월27일 공식 출범한 독일 사민당의 노선이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유럽 3대 강국 사이의 역학 관계가 변화할 수 있고 유럽 통합 작업의 방향에도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게하르트 슈뢰더 신임 독일 총리는 선거 기간 내내 블레어와 같은 제3의 길과 신중도 노선을 역설해 왔다. 그리고 11월2일 취임 후 첫 외국 방문지로 영국을 선택했다. 그는 사회 정의와 경제 발전을 함께 꾀하는 것이 양국의 당면 과제라며 블레어의 노선에 동의를 표시했다. 이 날 회담에서는 양국 공통 정책 목표를 다룰 각료급 상설 협의체 결성에도 합의했다. 그러나 슈뢰더는 독일·영국 간의 협력 강화가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고 프랑스와의 전통적인 관계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프랑스 사회당 수뇌부는 이러한 다짐에도 불구하고 슈뢰더가 영국에 친근감을 보이고 있는 점에 대해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유럽 통합의 양대 견인차 구실을 해온 프랑스와 독일 관계에 이상 기류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의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그같은 불안감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집권 연립 정부는 현재 슈뢰더 총리가 정통 좌파인 오스카 라퐁텐 사민당 당수, 녹색당의 요시카 피셔와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양상이다. 라퐁텐은 선거 기간에 좌파 고정표가 이탈하지 않도록 관리했으며, 요시카 피셔는 녹색당이 얻은 47석의 지분을 가지고 연정에 참여했다.

제3의 길의 선봉장으로 평가되었던 경제장관 내정자 요스트 슈톨만의 입각이 무산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가 도중 하차한 것은 오스카 라퐁텐의 견제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시사저널> 제471호 참조).

또 슈뢰더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발표한 정책에 기업에 불리한 세제가 포함되어 있어 재계의 반발을 사고 있는 점도 지나칠 수 없다. 기업이 당해 연도에 흑자를 내면 적자가 났던 지난 연도의 손실분을 공제해 그 차액에 대해서만 과세했던 제도를 새 정부는 전격적으로 폐지했다. 결국 슈뢰더가 곧바로 영국과 같은 제3의 길로 나아가리라고 믿는 것은 섣부르다는 판단에 이르게 된다.

헬무트 콜 총리가 집권했던 16년 동안 독일은 프랑스에서 좌우파 정권이 교차했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유대를 유지해 왔다. 콜이 전쟁 세대로서 유럽 역사에 대한 부채감을 가지고 있어 프랑스에 양보를 많이 한 것도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이에 반해 슈뢰더는 콤플렉스가 없는 전후 세대여서 독일의 국익에 손해가 되는 일은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한 제3의 길에 호응한 독일의 민심을 무시할 수도 없으므로 슈뢰더가 나아갈 길은 여전히 유동적이다.

독일 총선의 결과가 나온 지 한달이 되지 않은 10월19일, 이탈리아에서는 과거 공산주의자였던 마시모 달레마 좌익민주당(DS) 당수가 새 총리로 공식 지명되었다. 10월9일 로마노 프로디 전 총리의 중도 좌파 정부가 의회의 불신임으로 붕괴한 이후 달레마 당수는 연립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공산당과 중도 좌파 및 중도 우파 소속 의원들을 규합해 각 정당의 서면 동의를 받아냄으로써 공산주의 전력의 정치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서유럽국 정부를 이끌게 되었다. 이탈리아 좌파 정부는 붉은 색이 한 겹 덧칠된 셈이다.

자유주의의 승리로 끝났다는 선언을 담고 있는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저서 <역사의 종말>이 전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것이 지난 94년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4년이 지난 지금, 유럽연합 15개 국가 중 11개국은 좌파가 다수당으로, 2개국은 연정을 통해 집권함으로써 스페인과 아일랜드를 제외하고 13개국에서 좌파가 석권하고 있다.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좌파 도미노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유럽의 좌파 도미노 현상, 배경은 무엇인가

갑작스럽게 보이는 좌파의 전면적인 등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종전 이후 30여 년 동안 서유럽 대다수의 나라에서 정권을 잡은 것은 우파였다. 이것은 당시의 세계적인 냉전 구도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현실 정치는 우파가 장악했지만, 68혁명이 보여주듯이 이데올로기의 주도권은 좌파가 잡고 있었다.

당시의 지적 사조를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로 알베르 카뮈의 유고작 출간과 관련된 일화를 들어보자. 지난 60년 교통 사고로 사망한 카뮈의 딸 카트린 카뮈는 유고작인 <최초의 인간>을 94년에 출간했다. 30여 년이 지나서야 출간한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그는 80년대 이전까지 프랑스 지식인 사회나 문단이 카뮈에게 보여 온 적대적 태도가 출간을 망설이게 한 이유라고 답했다.

좌파 경향 지식인들의 역할에 변화 조짐이 나타난 것은 소련의 망명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노벨 문학상을 받으며 서유럽 지식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70년대 중반이다.

그러다가 80년대 말에 이르러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유럽이 붕괴하면서 좌파는 이데올로기 주도권마저 잃어버렸다. 이때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90년대에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며 현실 정치와 이데올로기 주도권을 함께 장악했다. 좌파의 전면적인 재등장은 역설적으로 이같은 좌파의 ‘몰락’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우파에 대한 견제가 약해지자 90년대 유럽에서는 극우파가 발호하고 민족 갈등이나 사회 불안이 높아졌다.

좌파의 재등장에도 불구하고 21세기형의 복잡 다기한 사회 현상들, 특히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생산 양식은 신자유주의 분석 틀에 더 크게 의존하고 있다. 정보화 시대에는 노동이 점차 개별적인 단위에서 이루어지므로 종래의 공동 작업 기회가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개인주의를 정당화하는 우파의 논리가 힘을 얻고 있으며 좌파는 좌파다운 정책을 자유롭게 펴지 못하고 있다.

지난 시대에는 우파 정부가 좌파 정책을 받아들여 복지 정책을 폈듯이 이번에는 좌파 정부가 우파 정책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대다수 유럽 좌파 정권들이 실시하는 국영 기업의 민영화이다.

신사회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과거의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들과 비교되는 점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각기 오른쪽으로 한 발짝씩 더 위치 이동을 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우파는 자신의 속성을 강화한 반면 좌파는 정체성의 위기로 이어졌다. 이같은 조건에서 좌파 진영에 새로운 담론이 필요해짐으로써 블레어의 제3의 길이나 중도 좌파 노선이 태어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다.

이처럼 좌파의 위기 속에서 탄생한 제3의 길과 중도 좌파 노선은 내부에 여전히 위기를 안고 있다. 우선 좌와 우를 아우르는 정당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이는 곧바로 좌우 대립 구도로 이루어진 유럽의 기존 정치 제도 붕괴나 대변혁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이를 대체할 새로운 정치 틀이 무엇인가에 대한 언급이 없다. 실제로 그런 틀이 가능하다면 좌와 우를 아우르는 정당에 맞서야 하는 다른 정당의 이데올로기는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문다.

그러나 현실 정치 속에서는 이 제3의 길이 실용적인 정치 도구로 적절히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블레어는 그의 탁월한 언론 플레이 능력을 발휘하는 데에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도구로 쓰고 있다.

이와 함께 제3의 길이나 신중도는 영국과 독일 총선에서 나타났듯이 좌우의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않은 부동층 유권자를 공략하는 데 탁월한 효능을 입증했다. 집권을 위한 선거 전략일 뿐이라고 비판을 받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처럼 제3의 길은 여전히 혼돈을 내포하고 있으며 뚜렷한 실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대안과 비전을 모색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지속적으로 지켜보아야 할 과제인 것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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