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금융 개혁, 성공이냐 실패냐
  • 난징·成振鏞 통신원 ()
  • 승인 1998.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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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民銀行 등 개혁에 나서… 실패하면 아시아 경제 큰 타격
중국은 과연 안전한가? 지난 1년간 중국은 이웃 나라들이 금융 위기를 겪는데도 꿋꿋이 잘 버텨 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다. 그것은 현재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여러 가지 개혁 정책, 특히 금융 개혁의 성패를 지켜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중국은 대대적인 런민인항(人民銀行) 구조 개혁 내용을 발표했다. 행정 구역 별로 설치했던 성급(省級) 지점을 모두 폐쇄하고, 지역 구분을 뛰어넘어 9개 분점으로 축소한다는 것이다. 중국 국무원 부총리 원지아바오(溫家寶)는 런민인항 구조 조정의 주요 목적을 ‘독립적인 화폐 정책 집행과 금융 감독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중앙 은행의 기능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통화량을 조절하고 금융 및 자본 시장을 조정하는 것이다. 새삼스럽게 중국이 중앙 은행의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지금까지 런민인항이 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런민인항은 지난 48년 12월 만들어져 국가 금융 관리 기관으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기업과 일반 국민에 대한 금융 업무도 함께 해 왔다. 그러다가 84년 기업에 대한 대출 업무를 떼어내고, 95년 ‘중국 인민 은행법’을 공포해 중앙 은행 기능을 강화했다. 그러나 여전히 런민인항 지점이 행정 구역에 따라 분포해 있어서 중앙에서 독립적으로 금융 정책을 추진하는 데 많은 장애가 있었다. 원지아바오 부총리는 “금융 부문에 대한 지방 정부의 간섭을 줄이고, 금융 규정을 어기는 금융기관이나 담당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런민인항의 구조 조정을 실시한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중국에서 금융 개혁에 대한 얘기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이다. 97년 11월 중국은 전국금융공작회의(全國金融工作會議)를 열어 몇 가지 금융 개혁 조처를 마련했다. 거기에는 △중앙 은행인 런민인항의 관리 감독 기능 강화 △4대 국유 상업 은행 상업화 촉진 △모든 금융 활동의 규범화·법제화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금융 개혁 3년내 끝내겠다”

지난 1월 런민인항 다이샹룽(戴相籠) 행장이 “금융 개혁을 3년 내에 끝내겠다”라고 다시 강조한 데 이어 올 여름부터 부실 은행에 칼을 대기 시작했다. 지난 6월 부실 경영으로 부채에 허덕이던 하이난(海南) 발전은행을 폐쇄해 금융 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고, 10월에는 만기가 된 채권을 갚지 못한 광둥국제신탁투자공사(GITIC)를 전격 폐쇄했다. 이 회사는 중국에서 가장 활발한 상공업 지대인 광둥성(廣東省)의 해외 투자 유치 창구로서 중국의 국제 투자 신탁 업계에서 가장 높은 지명도를 누려 왔다. 이 회사를 폐쇄한 조처는 해외 채권자와 투자자 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다른 금융기관들에게는 무서운 공포탄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금융 개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앙 은행 개편에 손을 댄 것이다.

중국이 금융 개혁에 나선 이유는 아시아 금융 위기가 중국에까지 번지는 것을 막고 경제 개혁을 지속해 가기 위해서이다. 이는 곧 중국 금융의 위험도가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중국 금융의 위험성은 무엇보다 은행이 안고 있는 부실 채권. 중국 정부가 밝힌 금융기관의 부실 채권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6%선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제로는 그 2∼4배가 될 것으로 추산한다. 부실 채권의 주범은 국유 기업이다. 만성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국유 기업에 돈을 대주다 보니 은행마저 부실해진 것이다. 국유 기업들의 평균 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80%를 넘어섰다.
늘어나는 외채도 문제다.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중국의 외채는 지난 6월 말 현재 1천3백79억6천만 달러로 지난해보다 16.3% 늘었다. 중국은 아시아 경제 위기로 침체된 국내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긴축 정책을 포기하고 돈을 푸는 쪽에 힘을 실어 오면서 많은 외채를 끌어들이고 있다.

여기에다 위안화 가치를 고수하느라 수출 경쟁력이 떨어져 외화벌이에 차질이 생기고, 위안화 평가 절하에 대한 불안감 탓에 막대한 달러가 어디론가 새 나가고 있다. 한마디로 아시아 경제 위기로 돈줄이 말라가는 데다, 중국 경제의 갖가지 모순이 은행 부실화로 집중되고 있어 금융의 흐름을 감독하고 통제해서 금융 질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안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중국의 금융 개혁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금융을 비롯한 서비스 분야의 시장 개방이다. 중국은 지난해부터 베이징을 비롯해 몇몇 주요 도시에 외국 은행 지점 설립을 허용하는 등 조금씩 개방 폭을 넓혀 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요구 수준을 만족시키지 못해 지난 6월 클린턴의 중국 방문 때도 세계무역기구 가입에 대해서는 아무런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세계무역기구 가입을 바라는 중국으로서는 금융 시장 개방과 금융 개혁이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외국 투자자들, 돈 떼일까 봐 불안 증폭

그러나 금융 개혁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무엇보다 부실 금융기관 청산은 돈을 떼일지도 모른다는 해외 투자가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켜 중국이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는 데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 중국 당국은 광둥국제신탁투자공사를 전격 폐쇄한 뒤 지난 11월2일 금융 부채 청산 전담 기구를 런민인항에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며칠 뒤 “청산되는 국제 투자 신탁 공사는 극소수이며 자본 주입을 통해 구제되는 국제 투자 신탁 공사도 있다”라는 다이샹룽 행장의 얘기가 외국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것은 금융 개혁과 외환 규제를 강화하고, 외국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중국이 금융 체질을 개선하면 국제 신용도가 높아져 외자 유치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금융 개혁이 성공을 거두었을 때 얘기다. 금융 개혁이 시행되는 당장은 외국 투자자들의 불안을 씻어내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중국 당국은 부채 청산 전담 기구를 설치해서 금융기관의 부채 해결에 직접 나서겠다고 하지만, 해외 투자가들이 중국 금융 정책의 투명성을 어느 정도나 신뢰할지도 의문이다.

어쨌든 중국은 한국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처럼 위기를 강조하며 금융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과 차이가 있다면 중국이 외환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 11월2일 일본 대장성 발표에 따르면 중국의 외환 보유액(1천4백51억 달러)은 일본(2천1백39억8천만 달러)에 이어 세계 2위다. 여기에 3위 홍콩(9백65억 달러)을 포함하면 세계 최고다.

만일 중국이 금융 개혁에 실패하고 위안화를 평가 절하하는 현실이 닥친다면, 당장 한국의 수출 전선에 이상이 생겨 경제 회생에 커다란 장애가 될 것이다. 한국은 위안화가 10% 평가 절하될 경우 수출에 20억 달러 정도 차질을 빚는다. 그리고 그 여파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 경제로 미칠 것이다.

아시아 지역의 기업 금융 정보를 다루는 홍콩의 ‘정치 경제 리스크 컨설턴시(PERC)’는 지난 2월 중국의 금융 체제 위험도를 7.5로 평가하면서 ‘중국이 서둘러 금융 부문을 개혁·개방하지 않으면 아시아 지역의 경제 회복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참고로 한국의 위험도는 8.9, 태국은 9.0, 인도네시아는 9.2이다. 평가 수치는 1부터 10까지이며 10이 위험도가 가장 높다). 세계가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 우리가 중국의 개혁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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