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지배하면 21세기 지배한다.
  • 南文熙 기자 ()
  • 승인 1998.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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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인구·에너지 자원 75% 집중… 미국·러 시아 등 강대국의 ‘패권 투쟁 무대’로 떠올라
“러시아 외교는 시계추 운동을 거듭해 왔다. 러시아 지도의 한복판을 가르고 있는 우랄 산맥이 그 분기점이다. 서방 세력의 봉쇄로 우랄 서쪽의 출구가 막혔을 때 러시아의 동진이 시작된다. 동쪽의 부동항을 통해 원기를 보충하기 위해서다. 러시아의 동진은 역사 이래 발칸·중동·한반도 등 3대 화약고 중 한반도의 폭발을 의미해 왔다. 구한말이 그랬고 한국전쟁이 그랬으며, 이제 그 세 번째 역사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지난 94년 미·북한 간의 제네바 협정으로 북한에 대한 경수형 원자로 공급이 결정되었을 때 러시아측이 경수로에 대한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력하게 주장한 적이 있다. 북한에 제공될 경수로로 러시아제가 채택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러시아측의 이같은 갑작스러운 태도에 대해 이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전문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냉전 시대에 우랄 산맥 서쪽에 집중되었던 러시아 외교가 이제 동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심상치 않은 조짐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이들의 주장은 실감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몇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예감은 이제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미국·중국·러시아 등 국제 무대의 ‘슈퍼 플레이어’들이 냉전 이후의 세계에서 무엇을 겨냥하고 움직여 왔는지 명료해지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지난해에야 비로소 이들의 각축이 21세기의 생존을 둘러싸고 지구적 규모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포괄하는 유라시아 대륙이 바로 이들의 패권 투쟁 무대이다.‘
의미심장한 장쩌민 주석의 러·일 방문

최근에 이루어진 장쩌민 중국 주석의 러시아·일본 연쇄 방문에도 유라시아 전략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장주석의 양국 방문에서 그것은 대조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지난 11월23∼25일 있었던 장주석의 러시아 방문은 매우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옐친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정상 회담은 병문안으로 대체되었지만,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대통령 직무대행과의 회담에서 기대했던 성과를 모두 달성한 것이다. 양국은 ‘미국이나 유럽 등 어느 한 세력이 주도하는 국제 관계가 아니라 다극화하고 다원화한 세계가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의견 일치를 보았다. 또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한 차원 격상해 군사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중국이 경제 지원을 약속하자 러시아측은 그동안 공급을 꺼렸던 첨단 무기를 지원하겠다고 화답했다. 이로써 미·일 군사 동맹에 맞서는 중·러 군사 동맹의 출현이 예고되었다.

장주석의 러시아 방문이 미국이 주도하는 유라시아 전략에 대한 중·러의 동반 대응 성격이 짙다면, 일본 방문에서는 유라시아에 진출하려는 일본을 봉쇄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국제 관례로 보자면 장주석이 지난 11월26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 회담 문건에 서명을 거부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 직접적인 계기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측의 미흡한 자세 때문이었다. 일본은 김대중 대통령 방일 때만 해도 과거사에 대한 사죄 표명을 문서에 남겼던 적극적인 자세에서 돌변해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함으로써 장주석의 분노를 샀다. 즉 정상 간의 대화에서 구두로 사죄하고 문서에는 사죄 대신 반성이라는 표현을 고집하자 장주석이 이를 최종적으로 거부한 것이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장주석의 강경한 입장의 배후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일본이 그동안 중국에 제공해 온 엔 차관에 대해, 최근 일본 경제가 어렵다는 점을 들어 10% 정도 삭감하겠다고 한 데 대한 불만이 있었다는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 보자면 엔 차관은 일본의 침략 전쟁에 대한 배상 성격을 띤 것이다. 따라서 이를 삭감한다는 것은 과거사에 대한 책임을 덜 지겠다는 태도로 읽혔을 법하다.
그러나 일본 분석가들 중에는 지난해부터 이미 사단이 벌어진 것으로 보는 사람도 꽤 있다. 지난해 7월2∼4일 하시모토 류타로 당시 총리는 일본 경제동우회 주최 간담회에 참석해, 일본 외교의 새로운 방향에 대해 야심찬 구상을 발표한 바 있다. 즉 그는 “21세기를 향해 일본 외교의 프런티어를 유라시아 지역으로 확대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면서 “태평양에서 시작해, 러시아·중국 그리고 중앙 아시아의 코카서스 지역이 그 대상이 될 것이다”라고 천명했다. 이같은 외교 구상을 발표한 뒤 하시모토 총리는 11월1~2일 동 시베리아의 크라스노야르스크를 방문해 옐친 대통령과 ‘사우나 정상 회담’을 벌였다. 하시모토가 뚫은 일·러 정상 회담은 지난 11월12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에게 계승되었다.

그런데 당시 일본 언론들은 하시모토의 유라시아 외교와 그에 뒤이은 친러 외교를 매우 불안하게 지켜보았다. 당시 일본의 시사 월간지 <센타쿠(選擇)>는 97년 10월호에서 ‘하시모토 유라시아 외교의 위험성’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겨냥한 이같은 자세는 일본 외교에 없었던 일이다. 치밀한 준비 없이 강대국들의 패권 투쟁에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 미국 봉쇄 정책 거세지자 ‘東進’

그러나 당시 하시모토 나름으로는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그것은 냉전 이후 갑자기 쪼그라든 일본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였던 것이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벽과 더불어 미국의 의심스러운 태도 역시 일본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였을 것이다. 사실 냉전 이후 미국에 대해 일본이 가지고 있는 의심과 우려에는 나름으로 근거가 있다. 냉전이 끝난 직후 미국의 전략가들은 앞으로 미국의 앞길을 가로막을 방해 요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미국이 초강대국 지위를 계속 누리려면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 전략가들의 눈길을 끈 것이 바로 일본의 경제력이었다. 즉 일본의 경제 팽창을 그대로 둘 경우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안보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문명 충돌론’으로 일약 스타가 된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 대학 교수가 바로 그 첫 테이프를 끊은 사람이다. 그는 이라크 전쟁 당시 행한 각종 강연과 연설에서 “냉전 이후 미국에 군사적 위협을 가할 만한 국가는 이미 사라졌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적 도전이 문제다. 미국의 안보를 위해서도 금세기 중에 일본의 도전을 억누르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주장했다.

90년대 초 ‘일본 두들기기’와 거품 붕괴로 일본의 경제적 도전을 무력화한 미국의 전략가들이 그 다음에 주목하기 시작한 곳이 바로 유라시아 대륙이다. 이와 관련해 새뮤얼 헌팅턴은 지난 91년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행하는 잡지 <서바이벌> 1·2월 호에서 ‘유라시아 대륙에 정치적 군사적 패권을 가진 세력이 출현하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야말로 냉전 이후 미국의 전략적 관심’이라고 말했다.

헌팅턴에 이어 미국의 세계 전략 차원에서 유라시아 문제를 극명하게 제기한 것이 바로 브레진스키의 <포린 어페어스> 논문(97년 9·10월호)이다. ‘유라시아의 전략 지정학’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논문에서 브레진스키는 ‘냉전 이후 유일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유라시아에 대한 통합적이고 포괄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전세계 인구의 75%, GNP의 60%, 에너지 자원의 75%가 집중된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하는 국가가 결국 21세기의 패권을 쥐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하는 국가는 자동적으로 중동과 아프리카까지 지배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따라서 유라시아 지역에서 ‘미국에 적대적인 어느 한 국가 또는 국가 간의 동맹이 나타나 패권을 장악하는 것을 막는 것이야말로 미국의 21세기 전략의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브레진스키는 미국에 도전할 잠재력을 갖춘 국가로 유럽에서는 독일과 프랑스를 지목했고,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을 지목했다. 따라서 이들 국가와의 관계 확대를 통해 이들이 적대 세력으로 돌변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전략가들의 이같은 구도는 엉뚱하게도 러시아의 반격에 직면하면서 크게 흔들리는 상황에 도달했다. 소련 제국의 부활을 막기 위한 미국의 과도한 봉쇄 정책이 그 발단이다. 우선 나토(북대서양 조약기구) 확대를 들 수 있다. 러시아의 서쪽 출구라 할 수 있는 동유럽 국가들을 나토에 편입시켜 온 미국의 전략은 이미 폴란드·체코·헝가리 등을 뛰어넘어 우크라이나 등 옛 소비에트 연방 국가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해 8∼9월에는 미국 제6함대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합동 군사 훈련을 러시아의 턱밑에서 진행해 러시아측을 긴장시켰다.

러·중·불·독, 반미 연대 가능성 높아

미국이 중앙 아시아에까지 무력 진출을 감행하는 배경에는, 21세기의 새로운 자원 보고로 각광받는 카스피 해 주변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62쪽 그림 참조). 이와 관련해 지난해 8월 클린턴 대통령은 이 지역의 핵심 국가라 할 아제르바이잔의 알리에프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카스피 해 인근의 유전 개발에 미국 거대 석유 자본인 아모코·쉐브론·엑슨·모빌 등의 참여를 보장받은 바 있다.

러시아의 반격 역시 만만치 않게 전개되었다. 특히 지난해 9~10월 옐친 대통령은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 독일의 콜 총리와 연쇄 접촉해, ‘러시아가 참여한 대유럽 건설’만이 유럽의 안보를 보장하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독일·프랑스 역시 미국에 의한 1극적 세계 지배에 불만을 품고 있고, 또 중동 지역의 원유 문제에서도 러시아와 이해 관계를 같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10월 유럽 언론들은 ‘모스크바·본·파리 트로이카 체제’가 성립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유럽 국가들과의 이심 전심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한 러시아에게 중국은 동방의 든든한 동맹국이다. 중국이 주장하는 반패권주의라는 것도 역시 미국의 1극적 세계 지배를 반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러 정상 회담에서 양국이 다극적 세계 질서를 주창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결국 러시아를 가운데 두고 유럽의 독일·프랑스, 그리고 동아시아의 중국이 손을 잡는 유라시아 국가 간의 연대가 떠오를 가능성이 점차 높아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옐친의 ‘반미 항쟁’이 일정한 효과를 거둔 지난해 말 일부 분석가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1극적 세계 질서가 이제 미국과 유라시아 국가가 양립하는 2극 구도로 재편되어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올들어 심해진 러시아의 경제 위기로 인해 이같은 구도에 차질이 빚어졌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서쪽 출구가 봉쇄된 러시아로서는 동방으로의 이동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는 러시아가 중·러 관계를 군사 동맹 차원으로 끌어올린 데서도 여실히 입증된다.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 동맹 강화는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의 대미 강경 자세에 힘을 보태 주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 이는 연쇄적으로 미국의 대북 자세를 더욱 강경한 것으로 몰아붙여 한반도 긴장의 파고를 한 차원 높일 수도 있다. 강대국 간의 유라시아 전략과 러시아의 동진이 한반도 를 또다시 국제 분쟁의 화약고로 밀어넣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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