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 울린 ‘박박 머리’ 아이들
  • 금강산·崔寧宰 기자 ()
  • 승인 1998.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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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가는 길에 엿본 북한 주민의 고달픈 삶
둥글넓적한 얼굴, 가느다란 눈, 튀어나온 광대뼈, 펑퍼짐한 코. 영락없는 ‘토종 얼굴’이었다. 그러나 11월21일 오전 10시50분 금강산을 취재하기 위해 장전항을 밟자마자 처음으로 마주친 앳된 북한 젊은이는 표정이 굳어 있었다. 추위에도 꼿꼿이 부동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안쓰러웠다.

입국 수속을 담당하는 북한 요원들은 민간인인데 양복과 인민복 차림이 깨끗했다. 모두 큰 손목 시계를 차고 있었다. 색안경을 쓴 이도 있었는데 어색해 보였다. 현대그룹이 지은 출입국 사무소 주위에는 곳곳에 북한군 장교들이 서 있었다. 하나같이 키가 작달막했다. 남쪽 사람들의 키가 커졌기 때문이겠지만 분단 반세기 동안 남과 북의 인종이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온정리로 가는 길에는 철조망 뒤편에 50m 간격으로 북한군 병사들이 서 있었는데 차창 밖으로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반응이 없었다. 북한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있었다. 오랫동안 차 한 대 볼 수 없었다. 한참 만에 트럭 한 대가 스쳐갔는데 짐칸에 사람들이 5∼6명 타고 있었다. 자전거도 한 대 지나갔는데 남자가 앞에 타고 뒤에는 여자가 다리를 모으고 비껴 앉았다. 몇 십 년 전 시골 신작로에서 보던 풍경 같았다.

민간인들의 차림새와 기색은 장전항에서 본 군인들보다 훨씬 비참했다. 무채색의 남루한 옷차림도 그렇고 모두가 허리를 구부린 채 보따리 등짐을 지고 기운 없이 걸어갔다. 온정리 사람들은 집을 짓고 있었다. 철근도 없이 시멘트 블록을 엉성하게 쌓아올리는 것이 소꿉장난을 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집 짓는 일은 모두 손으로 하고 있었다. 3인 1조로 삽질을 하고 있었는데 마치 시늉만 내는 것 같았다. 이들은 관광 버스가 지나가자 일손을 멈추고 신기한 듯이 쳐다보았다. 손을 흔들자 일부 주민은 같이 흔들어 주었다. 그러나 이곳에도 감시하는 군인이 있었다. 몇몇 군인이 주민의 손 흔들기를 막았다.

현대가 공연장과 음식점을 짓는 공사 현장이 보였다. 대형 크레인과 굴삭기가 움직이고 있었다. 소꿉장난을 하듯이 집을 짓는 온정리 사람들과 헬멧과 작업화로 무장하고 기계를 이용해 공사를 하는 한국의 건설 노동자들. 대조적인 광경이었다.

차림새 남루하지만 여인들은 모두 미인

금강산 등산로 곳곳에는 대빗자루를 든 온정리 출신 안내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한사코 대화를 피하고 외면하지만 순박한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남자들은 한결같이 볼이 깊게 패고 피부가 거칠었다. 머리는 감지 않아 지저분했고 차림새는 낡은 것은 둘째치고 오랫동안 빨지 않아 목덜미와 소매 끝에 때가 많았다.

그러나 여자들은 달랐다. 차림새는 남루했지만 아담한 키에 달걀형 얼굴, 이목 구비가 시원시원한 것이 하나같이 미인이었다. 그러나 서울의 미인과는 달랐다. 50∼60년대 빛 바랜 흑백 사진에 등장하는 시골 처녀들의 얼굴. 바로 그 얼굴이었다. 구룡폭포 가는 길에 만난 한 여성 안내원에게 장갑도 끼지 않은데다 얇은 옷을 입고 있어 춥지 않느냐고 물으니 “운동을 많이 해서 춥지 않시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 안내원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11월22일 해금강으로 가는 길에 만난 삼일포 인민학교 어린이들은 관광객 모두가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었다. 단층 교사 창문에 머리를 박박 깎은 아이들이 밤송이처럼 닥지닥지 붙어서 관광 버스를 구경했다. 관광객들이 손을 흔드니 “와!” 하며 마주 손을 흔들었다. 눈 덮인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들은 버스가 지나가자 일제히 눈덩이를 뭉쳐 버스를 향해 던졌다. 그 광경에 버스에 탄 관광객 모두는 착잡한지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11월22일 해금강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맨 앞에서 달리던 버스가 도랑에 빠졌다. 그 바람에 승객들은 모처럼 어둠이 내린 온정리 마을을 볼 수 있었다. 전기가 아예 들어오지 않는 듯 마을 전체가 캄캄했다. 어둠 속에서 굴뚝 위로 연기가 희미하게 오르고 있었다.

온정리 마을의 그 어둠은 쇠락한 사회주의의 초상이었다. 어둠 속을 달려 장전항에 도착하니 저 멀리 휘황 찬란하게 자본주의의 불을 밝힌 거대한 유람선이 보였다. 온정리와 장전항의 북한 인민들은 저 배를 어떻게 생각할까? 삼일포 인민학교에서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던 그 아이들도 분명히 유람선의 불빛을 볼 것이다. 그 불빛이 온정리 사람들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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