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죽음 앞에 꼬리 내리는 미국 네오콘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4.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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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탈미화’ 가능성에 미국 긴장 포괄적 비핵화론 내세우며 ‘작전상 후퇴’
‘김선일씨의 비통한 죽음이 한반도 위기를 비켜가게 했다?’ 미국이 3차 6자 회담(6월23~26일)에서 전향적인 협상안(아래 표 참조)을 내놓은 데에는 김씨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 사정에 밝은 국내외 전문가들은 “이번 3차 6자 회담 직전 워싱턴 분위기를 주도한 것은 네오콘의 강경론이었다. 그러나 김씨 사건을 계기로 분위기가 반전했다”라고 밝혔다. 물론 6자 회담 참여국들의 탈미 경향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지만, 김씨 피살 사건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3차 6자 회담을 앞두고 워싱턴은 또다시 내홍에 휩싸였다. 한국·중국·일본 등 6자 회담 참여국들의 탈미화 움직임이 이슈였다. 고농축우라늄(HEU) 문제로 미국에 각을 세우기 시작한 중국, 그리고 북·미 직접 대화를 거론하며 이탈 움직임을 보여온 일본에 대한 대책이 시급했다.

당시 미국 내외의 언론 보도에는 워싱턴의 두 가지 목소리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국무부를 취재원으로 한 언론들의 경우 ‘미국이 이번에 새로운 협상안을 제시할 것’이라는 식의 낙관론을 흘렸고, 반면 국방부나 네오콘을 진원지로 하는 언론의 보도 논조는 강경했다. 6월21일자 월 스트리트 저널이 대표적이다. 이 신문은 ‘워싱턴의 고위 관리들이 6자 회담 이후의 대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면서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더욱 유연해지라고 주문받았지만 미국은 대북 강경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측의 이같은 팽팽한 접전에서 주도권을 쥔 것은 네오콘의 강경론이었다. 당시 워싱턴 소식에 밝은 한반도 전문가는 “중국과 일본의 이탈 움직임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강경한 흐름이 고개를 쳐들고 있다. 이번 6자 회담을 결렬시킨 뒤 대북 제재 국면으로 몰고 가는 것이 이들의 복안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 역시, 미국 고위 관리들이 ‘유엔에서 대북 비난 결의안을 추진하고, 북한의 미사일 수출과 마약 판매를 봉쇄해 경제적 압박을 증대하는 것’ 등을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들의 강경론은 뒤로 물러서야 했다. 두 가지 상황이 순차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그 하나가 바로 6월 말 7월에서 초로 예상되는 김정일-푸틴 정상회담이었다. 얼마 전부터 김위원장이 러시아 극동지역을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지 모른다는 소식이 알려졌으나 기연가미연가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모스크바의 미국측 정보망에 의해 ‘북·러 관계가 이번 회담을 통해 실질적으로 발전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보고되면서 워싱턴 당국이 긴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경우 북·러 관계에 민감한 일본의 대북 진출 움직임이 더욱 강화되는 등 6자 회담 참여국들의 탈미화 경향이 더욱 거세게 일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네오콘이 중심이 된 강경책이 탈미화 경향을 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부채질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워싱턴의 기류가 다시 혼미해지는 와중에 김선일씨 사건이 불거져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에 따르면, 김씨 사건 초기부터 워싱턴은 이 사건의 파장을 예의 주시하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예를 들어 김씨 피랍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 내 주요 언론들은 한·미 관계를 공격하는 칼럼을 일제히 게재하려는 기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씨가 피랍되었다는 사실이 6월21일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칼럼 게재가 보류되거나 논조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6월22일 김선일씨가 끝내 참혹하게 살해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바로 그 다음날 부시 대통령이 직접 미국측 협상대표들에게 ‘북한이 핵 포기를 선언할 경우 대가를 지불하는 내용의 새로운 협상안’을 본회담에서 발표하도록 지시했다. 이 소식은 6월23일자 뉴욕 타임스 인터넷판이 처음으로 보도했고, 그 뒤에 미국 대표단에 의해 ‘포괄적 비핵화론’으로 정식 발표되기에 이르렀다.

그 뒤의 상황을 보면 미국 협상팀이 일부 혼선에 빠진 듯한 일들이 벌어졌다. 북측 대표인 김계관이 핵실험 강행 의사를 피력했다는 AP 통신 보도에서 나타났듯이, 강경파의 반격 움직임이 도처에서 목격되었다. 그러나 이들 역시 큰 틀에서는 주변국들의 탈미화 현상과 김선일 사건의 후폭풍 앞에서 일단 한 발짝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은 스페인과 다르다”

우선 강경파의 관점에서, 일단은 이 상황을 모면하자는 작전상 후퇴 성격이 강하다. 김씨의 억울한 죽음으로 한국 사회 전체가 비통한 분위기에 젖어 파병 재검토 논란이 뜨거운데, 미국이 6자 회담을 결렬시킨 주범으로 낙인 찍히게 될 경우 대미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것은 불문가지이다.

한편에서는 미국 주류 사회에서 일고 있는 한·미 관계 재평가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6월22일 폭스 뉴스가 ‘한국은 스페인과 다르다’는 내용으로 보도한 이래, 24일자 워싱턴 타임스는 사설에서 ‘(한·미 두 나라의) 혈맹 관계가 김씨의 죽음으로 다시 새롭게 회복되었다’고 밝혔고, 25일 존 틸러리 전 주한미군 사령관은 ‘미국민들이 김선일씨 피살로 한국을 크게 느끼게 됐다’고 말하는 등 그동안 불편했던 한·미 관계를 재조명하는 발언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씨의 죽음으로 ‘무능’ 시비에 빠진 한국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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