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응의 바다'에 빠진 일본 관료들
  •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
  • 승인 1998.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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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공무원­금융기관 ‘접대 커넥션’ 파문 확산
지난 3월6일 정오 무렵 도쿄의 대장성 청사 앞은 경찰 순찰차의 사이렌 소리, 우익 선전차에서 흘러나오는 소음, 보도진의 아우성이 뒤엉켜 매우 소란했다.

그런 와중에 이색 복장을 한 60대 남성이 나타났다. 보도진과 행인들의 눈길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그는 거리낌없이 대장성 정문을 향해 ‘대장성을 즉각 해체하라’ ‘대장성 관료 바카야로’를 외쳐댔다. 대장성 정문을 지키고 있던 수위들은 그를 힐끔힐끔 쳐다볼 뿐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만화 주인공을 본떠 ‘월광 가면’으로 불리는 이 60대 노인은 부정·부패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사건 현장에 나타나 단독 항의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날 정오 그가 눈에 띄는 옷차림으로 대장성 앞에 출몰한 데는 이유가 있다.

대장성 비판 여론에 부채질

도쿄 지검 특수부는 지난 3월5일 대장성 증권국 총무과 과장보좌 사카키바라 다카시(38) 씨와 증권거래감시위원회 상석 증권거래검사관 미야노 도시오(51) 씨를 수뢰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사카키바라 과장보좌는 노무라·닛코 증권과 스미토모 은행으로부터 모두 38회에 걸쳐 2백13만엔 상당의 접대를 받고, 미야노 상석 검사관은 증권국 업무과 과장보좌 시절 노무라 증권으로부터 40회에 걸쳐 2백73만엔 상당의 접대를 받았다는 혐의이다.

지난 2월에도 대장성의 금융증권검사관실 간부 2명이 은행측에 검사 정보를 흘려 주고 1천2백만엔 상당의 접대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긴급 체포되었다. 지난 3월12일에는 일본 대장성 은행국 중소금융과 스기야마 요시오(46) 과장보좌가 목을 매 자살했는데, 그는 지난 2월 중순 대장성 간부들의 오직 사건과 관련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었다.

‘관청 중의 관청’이라는 대장성의 관료들이 올 들어 수뢰 혐의로 줄줄이 체포되자 대장성 관료에 대한 불신감이 최고 수위에 오르고 있다. 특히 ‘커리어 관료’로 분류되는 사카키바라 과장보좌가 체포된 사건은 대장성에 대한 불신을 더욱 부채질했다. 월광 가면이 이 날 대장성 앞에 출몰한 것도 대장성 관료들에 대한 그런 분노의 표시이다.

커리어 관료란 일본에서 국가 공무원 1종 시험에 합격한 간부 후보생을 일컫는다. 이번에 체포된 사카키바라 과장보좌도 도쿄 대학 경제학부를 나와 1종 시험에 합격한 후 대장성에 채용된 커리어 관료였다. 8만명에 이르는 대장성 전체 직원 중 출세가 보장된 커리어 관료는 1% 정도이다.

때문에 대장성의 커리어 관료는 입성 직후부터 금융기관과 업계로부터 끈질긴 접대 유혹을 받는다. 출세하기 전부터 안면을 익혀 놓자는 전략이다. 은행들의 ‘MOF 단(團)’이 그 전형이다.

대장성의 영문 머리 글자를 딴 MOF 단, 즉 은행의 대장성 담당자들은 아예 대장성으로 출근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대장성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주임무이지만, 저녁에 대장성 관료를 접대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이다.
일본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유능한 MOF 단은 대장성 관료들의 일과 후 일정을 환히 꿰뚫고 있다. 그들은 일정이 빈 관료를 다른 은행보다 먼저 접촉해 저녁 약속을 받아낸다. 접대 장소는 대개 요정이나 일류 호텔 별실. 2차로는 긴자나 아카사카의 고급 클럽이 이용된다.

휴일에는 골프 접대를 한다. 유명한 온천장을 낀 골프장이 주요 무대이다. 도쿄에서 골프장까지의 전세 택시비 10여 만엔도 은행측이 전액 부담한다. 여기에 플레이 요금, 게이샤 파티 요금을 합치면 1박2일 골프 접대의 경우 최소한 1인당 50만엔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대장성 관료들은 이런 호화판 접대에도 가끔 식상해 하는 눈치를 보인다. 그러면 은행이나 증권사측은 기발한 접대 기법을 개발한다. 최근 드러난 아이디어는 이른바 ‘노판 샤부샤부’ 접대. 노팬티 차림인 여성 종업원의 시중을 받으며 얇게 썬 쇠고기를 끓는 물에 데쳐 먹는 것이 바로 노판 샤부샤부이다.

지난 2월 체포된 대장성 금융증권검사관실 간부들도 도쿄 신주쿠의 가부키 죠에 있는 노판 샤부샤부 ‘노란’의 단골 손님들이었다. ‘노란’은 회원제 클럽인 데다, 이미 풍속법 위반 혐의로 영업 정지를 당한 터여서 내부를 들여다볼 기회는 없다. 그러나 사건 전에 그곳을 취재한 <주간 현대> 기자의 증언을 들으면,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 수 있다.

신주쿠 가부키 죠 군소 빌딩 지하 2층에 있는 ‘노란’의 입장료는 1인당 1만9천9백80엔. 이 기본 요금을 내고 자리에 앉으면 대학생이나 직장 여성 같은 차림을 한 젊고 섹시한 여성들이 고객의 수에 맞추어 들어온다. 1인당 만엔씩 팁을 건네면 아가씨들은 입고 있던 팬티를 벗어던진다. 위스키를 얼음과 물에 탄 ‘미즈와리’를 주문하면 여성 종업원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는 술병에서 술을 따르려고 일어난다. 이와 동시에 방구석의 통풍구로부터 거센 바람이 불어와 여성 종업원의 스커트를 말아 올린다. 물론 샤부샤부 식탁에 둘러앉은 남성 고객들의 눈은 일제히 여성 종업원의 하반신으로 쏠린다. <주간 현대> 기자의 말에 따르면, 추가로 돈을 내면 ‘회중전등 서비스’ ‘접촉 서비스’ 따위를 따로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주간 현대>의 보도에 따르면 ‘노란’의 회원은 현재 약 1만3천명. 주류는 은행과 증권·보험 회사 직원이고, 중앙 부처의 관료, 일본은행 직원들도 끼어 있다고 한다.

노판 샤부샤부 접대를 받은 관료들은 처음에는 낯이 뜨거워 자기가 그곳에 왔다는 것을 절대로 누설해서는 안된다고 접대측 인사들에게 신신당부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 번 이곳에 발을 들여 놓은 관료들은 그 다음부터는 자기가 먼저 노판 샤부샤부 집으로 가자고 요구한다고 한다.

금융기관의 맹렬한 접대 공세를 받고 있는 것이 비단 대장성 관료들만은 아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지난 11일 오후 일본흥업은행과 산와 은행으로부터 4백30만엔 상당의 접대를 받은 일본은행 영업국 증권과 요시자와 야스유키(42) 과장을 수뢰죄로 체포했다.

은행들, 접대 전담 ‘MOF 단’ 해체 등 대책 강구

중앙 은행인 일본은행 직원이 수뢰 사건으로 체포된 것은 1882년 설립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그래서 마쓰시타 총재가 전격 경질되고, 주식 시장과 외환 시장이 약세를 면치 못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접대 오직이 ‘관청 중의 관청’인 대장성에서 ‘은행 중의 은행’인 일본은행으로 옮겨 붙으면서 일본 금융 시장에 대한 국제적 신인도가 크게 실추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와 자민당은 접대 오직 사건이 잇달아 터지자 공무원에 대한 윤리 강령을 법으로 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자민당의 공무원윤리법조사위원회는 최근 공무원 윤리 법안 대강을 확정했다.

이 대강에 따르면, 중앙 부처 과장급 이상 공무원이 일정액 이상의 증여나 접대를 받았을 때는 반드시 상부에 보고하도록 하고, 국장급 이상에 대해서는 재산 보고를 의무화할 예정이다. 접대의 보고 기준은 5천엔 이상이 유력하다.

한편 일본은행도 총재 이하 임원의 급여와 보너스를 대폭 삭감하는 자체 개혁안을 발표했다. 일본은행 총재의 연간 수입은 총리보다 8백여 만엔이 많은 5천1백만엔이었으나 이를 4천만엔으로 대폭 낮추었다. 또 민간인으로부터 접대받는 행위를 일절 금하고, 퇴직 후 2년 간은 관련 기관에 재취업할 수 없도록 못박았다.

또한 금융기관들도 접대 오직 사건의 공범자라는 비판이 높아지자 MOF 단, 즉 대장성 담당자 제도를 폐지하거나 관료들에 대한 접대와 선물 증정을 금지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도쿄 미쓰비시 은행은 접대 교제비 심사를 이전보다 엄격히 하고 법령준수실을 설치할 예정이다. 산와 은행과 스미토모 은행, 사쿠라 은행은 문제의 MOF 단을 폐지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접대 오직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 많다. 3월5일 체포된 사카키바라 과장보좌에 대한 접대 수준이 ‘C랭크 이하’였다는 소문이 이를 뒷받침한다. 일본 검찰 수뇌가 ‘접대의 바다’라고 표현한 대장성 국장급 이상 관료들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하면 대장성 해체·분할론이 또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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