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DJ의 대북 정책에 '심기 불편'
  • 南文熙 기자 ()
  • 승인 1998.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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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적 대북 정책 추진에 ‘심기 불편’…김대통령 6월 방미 성과 적을 듯
어떤 면에서는 이런 입장이 보편적인 인식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 즉 미국 정부의 각 부처와 의회·학계에 포진한 한반도 관계 실무 책임자들은 김영삼 정부에 대해 무척 피곤해 했고, 그래서 김대중 정부에 큰 기대감을 가졌다. 지난해 연말을 전후한 미국측의 적극적 자세는 사실 이러한 기대감의 표시였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가 진행한 여러 가지 일에 대해 차츰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그런 의구심이 폭발했다.

그 첫 번째는 카터 전 대통령 문제였다. 그를 재방북시켜 남북 정상회담을 중재한다는 것은 이들이 오랫동안 추진해 온 복안이었다. 그러나 출범한 지 얼마 안되는 정부가 이를 부담스러워했고, 미국도 거기까지는 양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2월25일 대통령 취임식에 카터를 초청조차 안한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더 본질적으로는 정부가 대북 정책을 미국과 공조하려 하는지 아니면 독자적으로 추진하려 하는지가 문제의 초점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을 지켜보면서 미국의 실무 책임자들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가고 있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가 대북 문제를 주도하는 데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식자들은 주권 국가의 당연한 권리라고 이해하는 입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북한 정책의 골격을 짜고 현재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미국의 한반도 담당자들로서는 이해 관계가 엇갈리는 것이다. 즉 한국 정부가 자기들과 공조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움직일 때 자신들이 짜 놓은 틀이 위협받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6자회담과 관련한 파문은 정부가 북한 정책뿐 아니라 동북아 정책 차원에서도 독자적으로 행동하겠다는 것으로 읽힐 소지가 있었다. 즉 기존 4자회담 틀에서 벗어나 중국·러시아·일본 등과 독자 채널을 구축하려는 것으로 보였을 법하고, 이런 맥락에서 최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 부주석의 방한에 특히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후진타오는 김정일 총비서와 각별한 사이이고, 한국 방문에 이어 북한도 방문할 것이라고 한다. 미국은 중국이 후진타오를 보내 남북한 사이의 중재 역을 맡으려 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경제 지원에 대해서는 미국측이 그동안 구체적인 안을 마련해 움직였던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한반도 담당자들은 주로 미국 서부 지역의 자본을 중심으로 신디케이트를 형성해 한국을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들의 역할이 자금 지원에만 그치지 않고 활용 과정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미국의 한반도 담당자들이 이 과정에서 모델로 삼은 것은 미국과 일본 관계이다.

미국과 일본 사이에는 현재 공식 채널말고도 비공식 채널이 가동되고 있는데, 사실은 이 비공식 채널에서 거의 모든 일이 논의·결정되고 있다. 미국이 그동안 한국에 요구했던 한·미 공조란 바로 이런 비공식 채널을 구축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4월 말을 기점으로 미국의 한반도 실무자들은 이런 노력이 실패했다고 보게 되었다. 4월 중순께 클린턴 대통령에게 부정적인 보고서가 올라간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미국과의 실질 협력 관계 구축 소홀

지난 몇달 동안 워싱턴의 한반도 실무자들 사이에서 형성되어 온 물밑 흐름은 이처럼 겉으로 드러난 우호 분위기와는 매우 다르다. 이같은 기류를 감지한 소수 전문가는 한·미 양측에 다음과 같이 조심스럽게 지적한다. 우선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그동안 정부가 미국측의 찬사에 너무 고무된 나머지 미국과 실질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김대통령을 포함해 현정부 고위 관계자들 중에는 미국 유력 인사들과 각별한 친분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상당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개인적인 친분 관계와 그룹 대 그룹의 관계는 다를 수 있다. 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 미국의 한반도 실무자들이 김대중 정부에 대한 판단을 지나치게 빨리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다. 물론 김대중 정부에 대한 이들의 인식이 김영삼 정부 때부터 시작된 좌절감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새 정부에 대해서는 나름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출범한 지 3개월도 안된 시점에서 정부의 정책을 벌써부터 단정짓는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미 두 나라가 더 여유를 갖고 시행 착오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아쉽다.
한국 정부는 김대중 대통령의 6월 미국 방문에 큰 기대를 걸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경제 지원을 확약받고, 한·미 관계를 공고히 하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지도자라는 김대통령의 위상을 확인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김대통령은 구체적인 성과를 얻기가 매우 어려울 것 같다.

이같은 판단은 <시사저널>이 최근 한반도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미국 실무자 그룹의 내부 분위기를 다각적으로 취재한 데에 근거한다. 이번 방문의 주요 의제는 대략 △김대통령의 인권상 수상 문제 △4자회담 △경수로 지원 △미국의 경제 지원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그밖의 일반 사항이 될 것이다.

우선 인권상 수상에 대해 미국은 적극적이다. 미국은 김대통령에게 인권운동가로서뿐 아니라 자신을 박해한 정적들까지 포용한 탁월한 정치인이라고 찬사를 보낼 것이다. 또 4자회담과 북한에 대한 경수로 및 인도적 지원 등에 한국측이 그동안 보여 온 노력을 높게 평가한다고 할 것이다. 일반 안건에서는 △한·미 간의 돈독한 우호 관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한반도 안정을 위해 주한미군이 주둔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남북 대화를 미국이 적극 지지한다고 표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내릴 만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김대통령의 미국 방문에서 쟁점이 될 만한 것은 대략 두 가지다. 하나는, 비공식 협의에서 미국은 김종필 총리서리가 올해 초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제기한 6자회담에 대해 설명을 요구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그동안 6자회담을 제안한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워 왔는데, 김대통령 방미 때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G8의 2차 지원금 80억달러 안 온다”

또 한 가지는 바로 이번 미국 방문의 핵심 의제인 경제 지원 문제다. 이에 대해 미국은 대단히 외교적인 형태로 답변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그동안 기울여 온 구조 조정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미국 정부의 지원 방안을 검토한다’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이 미국 자본을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대규모 자본 지원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정도의 답변이 예상된다. 이를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는데, 사실 그동안 이면에서 전개된 분위기로 볼 때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이 문제에 답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한다. 지난해 12월 말 클린턴 대통령이 주도해 한국에 지원하기로 했던 G8 국가(기존 G7 국가에 러시아 포함)의 백억달러 지원금 중 2차 지원분 80억달러가 아직 들어오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한국의 어려운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최근 한국을 방문해 경수로 건설 비용과 중유 지원 비용을 분담하라고 강도 높게 요구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 등이다.

각 사안마다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김대중 정부에 대한 미국의 시각이 정부 출범을 전후한 시점과 매우 달라졌다는 점이다. 새 정부 출범 초기에 한국의 어려운 여건을 감안해 미국이 경수로 분담액을 늘릴 수도 있다고 한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클린턴 대통령이 약속한 지원금 80억달러가 최근까지 들어오지 않는 배경이다. 한·미 관계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80억달러 지원은 앞으로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 4월 중순께 클린턴 대통령에게 이에 대한 부정적인 보고서가 올라갔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누가 어떤 이유로 이런 부정적인 보고서를 제출했을까.

김대중 정부 등장 이후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전문가가 한·미 관계를 매우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김영삼 정부 때는 좋지 않았지만 새 정부 들어서는 매우 호전되었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미국에서도 식자들은 김대중 정부를 도와야 한다는 입장이 주류다. 김대중 정부가 과거 정부의 잘못 때문에 고생하고 있고, 경제 문제를 풀고 남북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평가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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