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힘은 해군에서 나온다”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4.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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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해군력 증강 박차→미국, 타이완·일본 군사력 키워 중국 견제→러시아· 일본, 옛 영광 재현 노려
동북아의 바다가 출렁이고 있다. 중국과 미국,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타이완 등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 사이에 심상치 않은 해군력 각축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최근 7개 항공모함 전단을 동원한 사상 최대의 해상 합동 훈련에 들어갔다. ‘여름 진동 04(Summer Pulse 04)’라는 이름이 붙은 이 해상 합동 훈련은 6월부터 시작해 오는 8월까지 약 2개월에 걸쳐 5대양 전체에서 진행된다. 미국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이 합동 훈련은 2002년 미국 해군이 21세기의 새로운 전략 개념으로 채택한 ‘해양력 21(Sea Power 21)’의 기본 개념을 시험하려는 취지로 마련되었다. 이번 합동 훈련에는 항공모함 유에스에스 존 스테니스호와 유에스에스 조지 워싱턴호 등 미국이 자랑하는 최정예 항공모함 전단이 총출동한다.

훈련의 기본 내용은 전세계 두 군데 이상의 지역에서 비상 사태가 동시에 터졌을 때 이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기동 능력·전투 능력과 합동 작전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특히 미국 국방부는 이번 훈련을 통해 특정 지역에서 비상 사태가 발생했을 때 지역 동맹과 합동 작전을 수행하는 능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예정이다. 동북아 지역이 훈련 대상 지역에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이번 훈련에 일본 요코스카에 기지를 둔 항공모함 키티호크호가 참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5대양 전체에서 해상 합동 훈련

중국도 해군 전투력 강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중국은 지난해 10월과 지난 3월 각각 세계 군사 관계자들의 눈길을 끄는 해상 훈련을 실시했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파키스탄 해군과 창강 부근 해역에서 합동 훈련을 벌였다. 중국 <지에팡쥔바오>에 따르면, 당시 합동 훈련의 주요 목표는 일반 상선의 긴급 구조 등 ‘비전통적 안보 영역’에서의 작전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계 군사 관계자들은 중국 해군이 외국 해군과 사상 최초로 합동 훈련을 했다는 사실에 더 주목했다.

지난 3월16일에는 이보다 더 눈길을 끄는 합동 훈련이 이어졌다. 중국 해군 구축함 하얼빈호가 칭다오항 인근 공해에서 프랑스 함대와 만나 함대 대형 전환, 헬리콥터 이착륙, 해상 보급 및 합동 수색 훈련 등을 실시한 것이다. 이때 중국에서는 중국이 자랑하는 북해함대의 참모장 장판홍이 지휘를 맡았다. 프랑스 해군이 중국 해군과 합동 훈련을 벌인 것은 1978년 덩샤오핑이 문호 개방을 선언한 이후 처음이었다. 특히 중국이 미국과 동맹 관계인 유럽 국가와 사상 처음 합동 훈련을 벌였다는 점에서 군사 관계자들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미국이나 중국만 해군력 증강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때 미국과 세계 패권을 놓고 자웅을 겨루던 러시아도 해군력 재건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동북아 지역 맹주를 노리며 꾸준히 군비를 늘려온 일본의 움직임 또한 심상치 않다. 이미 역내 최강의 해군력을 자랑하는 일본은 올해부터 1천2백억 엔(약 1조2천억원)을 들여 항공모함형 호위함을 건조한다. 게다가 유사시 항공모함으로 개조가 가능한 수송선을 도입할 예정이며, 공중급유기를 도입해 장거리 작전 능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같은 흐름의 이면에 ‘떠오르는 용’ 중국과, 이를 누르려는 미국의 보이지 않는 각축이 있다. 중국이 경제 성장을 발판으로 해군 육성에 나서면서 미국의 견제가 시작된 것이다.

중국이 대양 해군(원양 해군) 육성을 선언하며 해군력 강화에 나선 때는 1986년 12월, 당시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 부주석이자 중국인민해방군 내 최고 실세였던 양상쿤의 공개 발언을 통해서였다. 오는 2050년까지 군 현대화를 완료해 세계 최강의 군사 강국으로 올라서겠다는 야심찬 내용이었다. 그 이전까지 중국은 전통적으로 소련의 위협에 대응해 대륙을 중시하는 전략을 펼쳐왔고, 이 때문에 해군은 보잘것없었다.

인민해방군은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중간 단계 전략도 마련한 것으로 군사 관측통들은 분석한다. 우선 1단계 목표로, 1986~1995년에 마오쩌둥 시절 이래 중국의 변함 없는 해군 전략으로 자리 잡은 ‘근해 방어’ 전략의 내실을 다지고, 다음 2단계(1995~2005년)에는 ‘근해 방어’ 전략을 한걸음 발전시켜 ‘근양 방어’ 전략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어선 2개를 그었다. 그 첫째는 ‘제1 도련(섬과 섬으로 이어지는 사슬)’으로, 일본 본토와 류큐 제도, 타이완·필리핀·보르네오 섬을 잇는 선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중국의 방어 해역은 남중국해로 국한된다. 제2 도련은 이보다 더 범위가 확장된 것으로 서태평양의 마리아나 제도와 괌·캐롤라인 제도가 포함된다.

이같은 방어선 개념의 논리적 귀결은 자명하다. 만약 중국이 당초 계획대로 해군 전략을 추진한다면, 2005년 이후 중국 군사력의 투사 범위는 남중국해를 넘어 미국이 관할하는 서태평양 지역과 직접 맞부딪치게 된다. 중국은 올해 이처럼 중대한 전략적 형세 변화의 시간표 한가운데 있는 셈이다.
이때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이 타이완의 존재다. 타이완 독립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과 미국 사이에 노골적인 힘겨루기가 진행되는 것도 타이완이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중국 해군이 ‘근해 방어’ 작전 단계에서 ‘근양 방어’ 작전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판단한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6월 초순 미국 국방부가 의회에 제출한 중국 군사력 연례 보고서다. 미국 국방부는 중국 해군이 ‘근양 방어’ 단계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군사력을 착착 갖추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중국이 러시아로부터 도입한 소브레미니급 구축함과, 역시 러시아로부터 도입한 킬로급 잠수함 등이 그 증거로 꼽힌다. 중국이 현재 2척을 보유하고 있고 2척을 추가 도입키로 한 소브레미니급 구축함은, 대공·대함·대잠수함 능력이 있으며, 러시아제 SS-N-22 순항 미사일과 SA-N-7 지대공 미사일, 잠수함을 잡을 수 있는 kA-27 헬리콥터로 무장하고 있다. 구식 로메오급 잠수함을 대체할 킬로급 잠수함은 정숙성이 탁월한 데다가 추적하기 힘든 어뢰를 장착하고 있다. 중국은 이밖에도 차세대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중인데 이는 오는 2005년 중 실전에 배치할 예정이다.

한국, ‘바다 패권 전쟁’ 한가운데 서다

미국은 현재 이같은 중국의 해군력 증강에 크게 두 방면으로 대응하고 있다. 자체 해군력을 강화하는 외에, 타이완과 동북아 최대의 동맹인 일본의 군사력을 키우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 보고서는, 중국이 날이 갈수록 타이완에 대한 군사 압력 수위를 높일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타이완의 군사적 취약성을 지적했다. 특히 타이완의 군사력이 지나치게 지상군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해군력 강화가 필수라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 보고서가 발표된 직후, 타이완 천수이볜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무기 대량 구매 의사를 밝혔다. 이 중 관심을 끄는 항목이 잠수함 구입 등 해군력 증강과 관련된 것이다. 총 1백80억 달러에 이르는 무기 도입 예산 가운데, 절반 가까운 액수가 잠수함 구입비에 속했다.

동북아의 바다가 요동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세계 경제에서 이 지역 경제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비약적으로 높아진 것과도 무관치 않다. 최근에는 이라크 무장 테러 단체가 한국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박 또는 해로에 대한 테러 위험 수위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해로 안전이 군사적 측면 이상으로 동북아 역내 국가들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된 것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한국 해군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국방부가 중국 해군의 팽창 위험성을 경고하고, 타이완이 잠수함 구매 의사를 밝힐 무렵인 지난 6월4일 한반도 서해상에서는 해군이 2년마다 한 번씩 주최하는 함상 토론회가 열렸다. 이 날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섰던 이춘근 박사(자유기업원)는 한국의 경제적 지위가 세계 10대 무역국에 든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해군력 강화를 ‘지경학적(geoeconomic) 차원’에서 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국력을 뒷받침하는 군사력의 추는 점점 더 해군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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