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왼손에 '당근' 오른손에 '채찍'
  • 문정인(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 ()
  • 승인 2001.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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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북한 태도·전역미사일방어 문제 등이 '강온' 좌우

사진설명 역사적 악수 : 북한을 방문한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을 맞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지루하고도 말썽 많은 개표 끝에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미국의 위상을 감안할 때,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남북한 관계는 물론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부시 행정부가 온건과 포용을 기저로 한 기존 대북 정책을 포기하고 응징과 봉쇄라는 강경 정책으로 선회함으로써 남북한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평가할 때 과격한 정책 선회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부시 행정부 역시 클린턴 행정부처럼 페리 보고서에 따른 기본 틀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견제와 봉쇄 그리고 군사적 행동을 통하여 북한의 양보를 얻어내기에는 정치·군사적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페리 보고서와 맥을 같이하여 채찍과 당근이라는 양면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크다. 1994년 제네바 협약이나 페리 프로세스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파격적 정책 변화는 없을 것이다.


KEDO 경수로 사업 지원 '악재'될 수도

특히 다행스러운 점은 부시 행정부의 동아시아 정책 담당 참모 대부분이 신중한 현실주의자일 뿐 아니라 보기 드문 지한파(知韓派)라는 사실이다. 폴 월포위츠·리처드 아미티지·제임스 켈리·덕 파알 등 부시 행정부의 동북아 정책 담당 주요 인사들은 김대중 대통령의 포용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극단적 대응책을 배제한 현실적이고도 신중한 대북 정책을 전개할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거시적 전략 구상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 정책 운용 면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우선 부시 행정부의 기본 입장은 핵개발 의혹 해소, 미사일 개발·수출 중단, 재래식 군비 감축 등 현안 해결이 선행되어야 식량 원조·경제 제재 해소·경제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1월 중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이 실현되면, 이러한 현안을 해결할 돌파구가 마련될 수도 있을 것이나, 그렇지 못할 경우 북·미 관계는 어렵게 꼬일 수도 있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 사업 지원도 악재로 등장할 수 있다.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따르면, 경수로 사업이 완공될 때까지 미국은 북한에 중유를 계속 제공키로 되어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중유 공여가 의회의 반대와 행정부의 소극적 태도 때문에 난항을 거듭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한국과 일본이 46억 달러에 해당하는 경수로 건설 기금을 충당하지 못할 때 경수로 사업은 미궁에 빠질 수 있다. 경수로 사업 실패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해체는 물론이고 제네바 협약 무효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사태에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 카드로 대응할 경우, 북·미 관계는 1994년 6월 이전 단계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이와 더불어 문제가 되는 것은 부시 행정부의 국가 및 전역 미사일방어(NMD/TMD) 구상이다. 부시 대통령 당선자는 NMD/TMD로 표방되는 전략미사일방어 체제를 선거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원래 동북아 전역미사일방어 구상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지만 북한의 비협조적 태도가 이러한 구상을 실천하는 데 결정적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부시 행정부의 강경파가 북한의 극단적 대응을 의도적으로 유인할 가능성도 있다.

전역미사일방어 체제 가동은 다각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는 북·미 관계를 악화시킬 뿐 아니라 한·미 관계에도 새로운 균열을 조장할 수 있다. 왜냐하면 김대중 정부는 이미 전역미사일방어 체제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 표명했는데, 전역미사일방어 구상에 동참하는 것이 북한 및 중국과의 관계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역미사일방어 구상 쟁점화는 한국 정부의 외교 입지를 크게 제한할 것으로 보인다.


북·미 평화협정 체결 가능성 희박

한·미 공조와 주한미군 문제도 새로운 과제로 등장할 수 있다. 부시 행정부는 기존 쌍무 동맹을 축으로 한 동맹 외교를 강조하고 있지만 두 가지 문제점이 불거져 나올 수 있다. 그 하나는 한국내 반미 감정 고조와 그에 따른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이다. 다른 하나는, 파월 국무장관 내정자가 이미 시사했듯이 주한미군 유지에 따른 방위비 분담 논쟁이 재현될 가능성이다. 이 두 가지 사안 모두 한·미 양국의 국내 정치적 역동성과 맞물려 한·미 간에 새로운 마찰을 초래할 수 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하여 한·미·일 3국 공조 체제는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의 지난 9월 유엔 연설과 지난 10월 조명록 차수의 방미를 계기로 제기된 4자 회담을 통한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 추진은 당분간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미국 공화당이 전통적으로 4자 회담의 유용성에 의문을 제기해 왔을 뿐만 아니라, 전역미사일방어 문제 및 중국 위협론 대두와 관련해 미·북, 북·중 관계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4자 회담을 통한 한반도 긴장 완화 및 평화 체제 구축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해야 하는 사항은, 북한이 평소 주장해 온 북·미 평화협정 체결 문제가 부시 행정부 출범과 더불어 그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졌다는 점이다.

그밖에 우려되는 사항은, 북한의 의도에 대한 한·미간 해석 차이와 그에 따른 한·미 공조의 한계이다. 북한이 대량 살상 무기와 미사일 현안에 협력적으로 나올 경우, 현정부의 대북 화해·협력 정책은 미국의 축복을 받으며 지속될 것이고, 한반도 냉전 구조를 해체할 윤곽도 더 구체적으로 잡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비협력적 태도로 일관할 경우, 한국과 미국은 그 의도를 해석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데 커다란 견해 차이를 보이게 될 것이다. 미국의 강경 대응과 그에 반하는 한국의 온건 대응은 북한을 둘러싼 한·미 공조에 균열을 일으키고, 궁극적으로는 남북한 관계에 부정적 기제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처럼 부시 행정부 출범은 한국에 대한 이중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구조 측면에서 미국은 기존 페리 프로세스를 존중하면서 한국과 공조하겠지만, 대북 정책을 실질적으로 운용하는 데는 강경한 입장을 견지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한의 태도이다. 클린턴 행정부와의 협상에서처럼 북한이 전향적으로 협조하는 태도를 보일 경우, 남북한과 미국 3자 관계는 순조롭게 전개될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북한이 대립 구도로 선회할 경우, 한반도 문제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이 점에 유념하면서 현정부는 북한과 미국을 지혜롭게 설득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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