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족의 피 맺힌 절규 "땅 뺏으면 집단 자살"
  • 이태화 (녹색연합 국제연대부장) ()
  • 승인 2001.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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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현지 취재/
미국 기업 석유 개발에 원주민 '항쟁'


"우리를 신성하게 하고 우와(U'wa)로 만드는 모든 것들을 잃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전 부족이 목숨을 걸고 미국 석유회사 옥시덴탈 페트롤륨(옥시)의 석유 개발로부터 자신들의 영토를 보호하기 위해 투쟁하는 콜롬비아 인디오 부족 우와의 지도자 로베르토 코바리아의 말이다. 우와족의 목숨을 건 저항은 마약·게릴라·내전으로 유명한 콜롬비아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고 있다. 국제 사회에서는 우와족을 도우려는 움직임도 활발한데, 특히 이탈리아 녹색당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필자는 지난 1월13일부터 1월26일까지 이탈리아 녹색당 대표단의 우와족 방문에 동행했다. 우리 일행은 이탈리아 녹색당원, 프랑스 다큐멘터리 제작팀, 필자 그리고 콜롬비아 환경단체 활동가들을 모두 합해서 20명 정도였다.

이탈리아 녹색당은 2000년 3월 우와족의 투쟁에 관심을 가진 이후 꾸준히 대표단을 우와족 영토에 파견하고 있다. 이번이 제4차 대표단으로서, 녹색당 당수 그라시아 프란체스카토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탈리아 연합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녹색당 당수의 방문은 우와족의 투쟁이 곧 세계의 관심사임을 콜롬비아 사람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의 활동은 주로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와 우와족 영토가 있는 아라우카 주에서 전개되었다.


4백년 전에도 스페인 침략에 맞서 집단 자살


지금의 우와족 영토는 베네수엘라와 인접한 콜롬비아 국경 근처 아라우카와 보야카 주에 있으며, 콜롬비아의 가장 주요한 두 국립공원 시에라 네다바 드 쿠쿠이와 타마 일대에 걸쳐 있다. 1940∼1970년에 예전의 광활한 영토의 85%를 콜롬비아 정부에 빼앗기고 지금은 아주 좁은 땅에서 살아가는 형편이다. 영토를 빼앗기는 과정에서 폭력과 질병 감염으로 1만8천명이 목숨을 잃고 약 6천명이 살아 남았다.

원래 콜롬비아에는 원주민이 3백여 만명 살고 있었다. 그러나 4백 년 전 백인에게 정복되는 과정에서 원주민 인구가 급격히 줄었다. 우와족도 예외가 아니었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스페인이 우와 지역을 점령했을 때, 우와족 선조들은 스페인의 노예가 되어 우와의 정체성을 잃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선언하고 상당수가 집단 자살을 했다. 현재 우와 사람들에게 전승되고 있는 노래에 따르면, 이때 자살한 사람들의 시체가 강에 쌓여 강물의 흐름을 바꿀 정도였다고 한다. 그 이후 살아 남은 우와 사람들은 지난 4백년 동안 스페인 정복자들과 콜롬비아 정부에 시달리면서도 우와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 왔다. 1992년 미국 석유회사 옥시가 우와 영토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에 관심을 보이기 바로 전까지는.

우리 일행이 숙소로 정한 쿠바라라는 조그만 마을은 1999년 미국 환경운동가 3명이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에 살해되어 유명해진 지역이다. 또한 바로 이 지역이 옥시의 석유 시추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우리가 들어간 쿠바라를 비롯한 아라우카 주 일대는 또 다른 게릴라 집단인 국가해방군(ELN)과 콜롬비아무장혁명군이 팽팽하게 세력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거기다가 다국적 기업인 옥시가 들어오고 나서 치안을 위해 콜롬비아 군대 3천∼5천 명이 항시 주둔하게 되어, 게릴라와 정규군이 끊임 없이 충돌하고 있다. 콜롬비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 된 것이다.

1992년 옥시는 콜롬비아 정부로부터 채굴권을 따낸 후 우와 영토 내의 석유를 개발하는 사모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옥시 외에도 나이지리아에서 석유를 개발할 때 인권 침해로 악명을 날린 쉘 사와 콜롬비아 국영 석유회사 에코페트롤이 참여했다. 이 사업은 시작할 때부터 심각한 환경 파괴, 원주민 공동체 파괴 등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를 의식한 쉘 사가 이 사업 계획에서 철수하고 현재는 옥시와 에코페트롤만 참여하고 있다. 옥시는 현재 리비아 사막·북해·페루와 에콰도르의 밀림지대 그리고 북 콜롬비아를 비롯한 15개국에서 석유를 개발하고 있다. 옥시가 사업을 진행한 이후 우와 사람들을 위해 사업 예정지 인근 토지 매입을 도운 공증인이 살해되고, 평화 시위 도중 우와족 어린이 3명이 군대가 쏜 최루탄을 피하다 익사하는 등 사건이 잇따르면서 평화롭고 조용하게 살아가던 우와인 마을은 쑥밭이 되었다. 또한 전통적으로 외세, 특히 다국적 기업에 반감을 갖고 있는 좌파 게릴라들은 옥시의 채굴 장비에 5백 회가 넘게 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콜롬비아 군의 대응도 거칠어져 이 지역에서는 불안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현장에 갔을 때 우리는 군인들과 자주 마주쳤다. 게릴라들도 소수이지만 가끔 눈에 띄었다.

우리 일행은 우와족이 살아가고 있는 주스칼 지역을 방문해 그들의 삶과 문화를 배우고, 인근 농민단체들과 학생단체들을 만나 토론했다. 사실 이 지역의 농민과 학생 들은 이미 우와족을 지원하고 있다. 이들은 1999년 우와족의 대규모 평화시위 때, 연대 의사를 밝히고 가담했다가 군대가 폭력을 휘두르는 바람에 많이 다치기도 했다.

우와족을 이끌어가는 지도층은 크게 두 부류인데, 전통적인 우와 권위체로 불리는 월카야(정신적 지도자)와, 외부 세계와의 정치적 조율을 맡고 있는 카빌도(정치적 지도자)들이다. 우리의 일은 대부분 카빌도 7명과 이루어졌는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정신적 지도자인 월카야가 우리를 만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었다. 그는 선발된 우와인 25명과 우와의 핵심 영토인 주스칼의 깊은 산속(이곳은 한 번도 외세의 침략을 받지 않아 산업 사회의 입김이 미치지 못한 곳이기도 하다)에서 살면서 35년 동안 한 번도 산을 내려온 적이 없다고 한다. 물론 외부인을 만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산 아래 사는 우와인은 정기적으로 그를 찾아가 우주의 진리나 삶의 자세를 논하고 명상과 단식을 한다.


"우와족의 싸움은 반세계화 투쟁의 상징"


우리 일행 20명 중 오직 4명에게만 월카야를 만날 기회가 주어졌다. 녹색당 당수 그라시아 프란체스카토, 녹색당 국제전문위원 주세페, 평화운동가 앨리아 그리고 필자였다. 그를 만나러 가는 도중 필자는 이탈리아 녹생당이 왜 이 투쟁에 관여하게 되었느냐고 그라시아 프란체스카토에게 물었다.

"녹색당은 그 이념이 이 지구의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고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과의 평등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이 선두가 된 경제적 세계화에 명확히 반대한다. 국제통화기금 구조 조정을 받고 있는 콜롬비아는 석유와 같은 자신의 천연 자원을 끊임없이 수출해 채무를 갚도록 강요받고 있다. 콜롬비아는 크기로 치자면 전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만 생물 다양성 면에서 보면 전세계의 15%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콜롬비아의 자연은 남미의 한 국가에 속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인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영토를 지키려는 우와족의 싸움은 그들만의 싸움이 아니요, 바로 우리의 목숨을 건 투쟁이며 반세계화 투쟁의 상징이기도 하다. 또한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전세계의 야생성을 지키는 것은 인간의 영성을 지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만난 월카야는 체구가 아주 작았다. 외모는 볼품없었지만 그의 지극히 평화롭고도 깊은 눈빛(사실 필자는 그런 눈을 한 인간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은 산업 사회에서 온 이방인 4명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그의 주위에는 다른 정신적 지도자 4명이 그림자처럼 따랐는데, 산을 한 번도 내려오지 않았으면서도 월카야는 우와족의 투쟁 방향을 아주 정확히 짚고 있었다. 그는 녹색당 당수와의 회견에서 외부인들이 어떻게 우와인을 도울 수 있는지 의견을 제시하고, 우리에게 지속적인 지원을 부탁했다.

옥시와 우와족의 싸움은 성서에 나오는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에 비견할 만하다. 온갖 부와 권력을 가진 거대한 다국적 기업 옥시와, 가진 것이라고는 뛰어난 영성밖에 없는 우와족의 대결. 그러나 이런 우와족에게 서서히 전세계의 힘이 집중되고 있다.

얼마 전 석유 개발을 반대하는 미국 환경운동단체들의 압력에 굴복해 옥시의 주요 주주 중 하나이며 세계 최대의 뮤추얼 펀드인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는 옥시에 대한 그들의 투자 의사를 철회했다. 이는 전세계 곳곳에서 시위가 일흔다섯 번 있고 난 뒤 이루어진 일이다. 이제 다시 환경운동단체들은 옥시의 다른 주요 주주 중 하나인 스탠퍼드 번스타인 주식회사를 타깃으로 삼아 압력을 가하고 있다.


세계 환경·인권 단체들, 우와족 지원에 나서


한편 콜롬비아 국내에서는 환경단체 및 인권단체와 더불어 우와족들이 원주민 토지에 대한 권리를 보장한 법을 바탕으로 해서 법적인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 모든 외부의 지원과 우와족의 끈기 있는 저항에도 불구하고 옥시의 사업을 저지하지 못할 경우, 우와인들은 '세계의 심장'이라고 부르는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6천명 모두가 집단 자살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3일 옥시는 우와족의 오랜 저항으로 인해 연기되어 온 첫 시추 작업을 시작했다.

미국 국무부의 개발 프로젝트에 관한 한 보고서에는 '이제껏 원주민이 개발 프로젝트에 대항해 맞섰을 때, 언제나 개발업자들이 승리해 왔다'라고 쓰여 있다. 따라서 옥시는 이번 경우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우와인과 그들을 지원하는 전세계의 관심 있는 단체와 개인 들은 이제 진짜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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