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DO 난마' 남북이 직접 풀어라
  • 패트리셔 게디(동북아 안보 연구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01.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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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분석한 제네바 합의와 경수로 사업의 '전망과 대안'

부시 정부의 북한 정책 틀이 점차 체계화함에 따라 북한 경수로 건설과 제네바 합의에 대한 논의가 무성해지고 있다. 논의는 크게 보아 찬반 양론이다. 경수로 사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며, 북한의 핵 위협을 낮추지도 못하리라는 것이 첫 번째 입장이다. 이에 반해 제네바 합의와 경수로 사업이 남북한·미국·일본 간의 매우 중요한 대화 통로 역할을 해왔으므로 이 사업을 결코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두 번째 입장이다.

사진설명 거북이 걸음 : 1999년 12월15일 한전과 KEDO가 원전사업 주계약을 서명하는 모습. ⓒ경수로기획단

사실 경수로 사업은 건설 공기 지연과, 타슈켄트 노동자를 투입하게 만든 지난해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 파업 등으로 차질을 많이 빚었다. 게다가 유가가 급등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고(KEDO·이하 케도)는 첫 번째 경수로 완공 때까지 해마다 중유를 50만t씩 북한에 지원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래 계획대로 2003년까지 경수로 건설을 완공하기는 이미 불가능하게 되었다. 완공 후 경수로에 필요한 부품을 북한에 수출하는 것도 조건이 까다로워 여의치 않다.

제네바 합의에 따라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지침을 철저히 준수하고 핵 물질 전체 보유 현황에 대한 사찰을 받아야만 한다. 또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와 북한 간의 공급 협정은 북한의 경수로가 국제원자력기구와 미국의 안전 기준을 준수해야 하며, 미국 기업으로부터 주요 원자력 부품이 북한에 이전되기 전에 북한과 미국이 평화적 원자력 협력에 대한 협정을 체결하도록 하고 있다. 북한은 원자력 사고에 대비해 피해를 배상할 법적·재정적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


전력망 미비·IAEA 사찰 범위 등 난제 수두룩


사진설명 험난한 여정 : 북한의 함남 금호지구 경수로 건설 현장. 북한 노동자 파업, 협상 지연 등으로 공사 진척이 더디기 짝이 없다. ⓒ경수로기획단

이런 조건이 제대로 충족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표하며 경수로 사업에 가장 비판적인 사람은 미국의 핵비확산정책교육센터(NPEC) 헨리 소콜스키 대표이다. 지난 3월 한국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경수로 문제에 관한 기자 간담회를 갖기도 한 그는 올해 초 케도에 보낸 공개 서한에서 핵비확산과 경수로 안전에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핵무기를 개발할 목적으로 가동한 예전의 북한 원자로보다 경수로가 플루토늄을 더 많이 생산한다는 점과, 북한의 전력망과 구조가 경수로 안전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이 경수로를 운용할 능력에도 문제가 있어 원자력 사고에 대비한 보험 가입 여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수많은 장애물을 뛰어넘어 경수로가 완공될 수 있을까? 경수로 건설이 과연 이루어져야만 하는가? 이런 문제를 하나하나 상세히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국제원자력기구 사찰 문제이다. 북한이 원자로의 중요 부품을 인수하기 전에, 핵무기를 제조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국제원자력기구가 사찰을 통해 보증해야 한다. 북한이 완전하게 협조하더라도 이 과정을 마치는 데 2년 정도 걸릴 전망이다. 물론 기간이 단축될 수도 있는데, 이는 북한의 모든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의 전면 접근을 북한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허용하느냐에 달렸다.

다음은 북한 전력의 상호 연계망 문제이다. 케도 전문가 에드워드 린치에 따르면, 케도는 경수로 사업을 시작한 첫날부터 북한 전력망이 경수로의 전력을 송·배전하고, 경수로의 안전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경수로 운용에 필요한 전력망 개선과 확충은, 케도가 자금원을 찾는 데 도움을 주도록 되어 있기는 하지만, 북한이 책임져야 할 사안이다. 북한도 전력망을 개선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세계적인 전력 기업인 ABB와 장기 협력 계약을 맺어 송전망을 현대화하고 발전소와 산업시설을 개선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력망이 노후하고 구조가 부실해 경수로 운영에 필요한 전력 상호 연계망을 갖추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원자력 안전 규제 기준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문제도 중요한 과제이다. 미국내 경수로 비판자들은, 북한이 원자력을 안전하게 운영할 능력은 부족하지만, 경수로의 사용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재처리할 기술은 갖고 있다고 본다. 이런 우려는 두 가지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 역사적으로 기술적 결함 못지 않게 운영자의 실수가 핵 발전 사고의 중요한 원인이었는데, 대규모 경수로를 처음 가동하는 북한이 이에 대비한 사전 훈련을 적절히 할 수 있는가이다. 또 하나의 근거는, 기술적으로 까다롭기는 하지만 사용후 핵연료에서 추출할 수 있는 플루토늄으로 생산 가능한 핵무기의 규모는 제네바 합의를 통해 막으려고 했던 핵무기 제조 규모가 훨씬 넘어선다는 점이다. 케도는 경수로 사업이 핵확산방지조약(NPT)이 규정한 '원자력 에너지 평화적 이용'과 조약 체결국 간의 기술 이전에 관한 내용에 부합한다고 설명하지만, 이런 의혹에 대해 적극 반박하지 않고 있다.

부시 정부가 강경한 북한 정책을 유지한다면 평화적 원자력 협력에 관한 협정 체결이 북·미 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중요한 사안이다. 미국 원자력법에 따르면, 원자력 부품을 북한에 수출하는 면허를 미국 기업에 부여하기에 앞서 양자 협정이 먼저 체결되어야 한다. 부시 정부가 북한의 모든 핵 관련 행위에 대한 상시 감시와 사찰을 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기를 원하기 때문에 협정을 위한 협상은 난항이 예상된다. 또한 부시 정부가 북한을 재래식 대규모 살상 무기 생산 국가로 규정해 세계적으로 거부감을 일으키는 국가미사일방어(NMD) 계획 추진을 나름으로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마지막으로 원자력 사고 책임 문제이다. 경수로 터빈을 공급하기로 한 제너럴일렉트릭(GE)사는 사고 책임에 관한 적절한 보증을 받지 못해 사업 참여를 포기한 상태이다. 이로 인해 히타치와 도시바가 터빈을 공급할 예정이다. 하지만 사업의 주계약자인 한국전력의 원자로는 GE의 터빈을 기초로 설계되었으므로 부품 변경에 따른 원자로 재설계와 새로운 안전 기준을 마련하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사고 책임 문제는 GE의 사업 참여 포기로 끝날 일이 아니다. 완공된 경수로가 북한에 넘겨진 뒤 북한은 만약 일어날지도 모를 핵 사고에 대해 절대적 책임을 질 수 있을지, 또 보상에 필요한 재정적 보증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남아 있다.


최악 상황은 '경수로 실패→제네바 합의 파기'


사진설명 조감도.

이러한 문제들은 경수로 사업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문제점 논의에만 치중해 실제 시급한 '어떻게 북한의 에너지 수요를 해결할 것인가'라는 논의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경수로에 비판적인 입장 대부분은 이 사업이 실패할 것이라고 지적하는 데만 열중하고 해결책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만약 원자력이 대답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북한과 케도 국가들이 경수로 사업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목적을 성취할 더 나은 방안이 있는지 함께 모색해야 한다.

앞에서도 열거했듯이 계속되는 완공 기한 지연과 비용 상승이 아니라도 경수로 사업을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것이 제네바 합의를 폐기하는 것을 의미해서는 안된다. 제네바 합의가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협정은 아니지만, 남북한과 미국·일본이 상호 목적을 위해 서로 계속 접촉하도록 하는 역할은 해왔다.

물론 제네바 합의 당사자들이 합의 내용을 완전히 이행하지는 않았다. 미국은 합의문 서명 후 석 달 안에 무역 제재를 해제하기로 했지만, 미적거리다가 지난해 미사일 협상과 연계해 부분적으로 해제했을 뿐이다. 북·미 양국이 평양과 워싱턴에 사무소를 열기로 했지만 역시 실현되지 않았다. 대사급 수준으로 양자 관계를 개선하기로 한 것도 지켜지지 않았다. 주로 미국에 책임이 있는 이러한 불이행에도 불구하고 제네바 합의는 존재하고 있다. 물론 이런 유연성은 주로 부정적으로 발휘되고 있다. 그렇다면 제네바 합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할 것인가?

제네바 합의문 개정이 가능하다면 북한이나 케도 국가들에게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경수로 한 개나 두 개 전부를 화력 발전으로 대체하자고 제안했다. 이 생각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제네바 합의문 서명 후 북·미 후속 협상에서 김정우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위원장은 경제 관료들이 원자력 대신 화력을 원한다고 밝히고 이 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경수로 비판론에 흔들리지 말라


사진설명 북한내 '코리아타운' : 경수로 건설 현장 내 한국측 근로자들이 묵고 있는 숙소. ⓒ경수로기획단

또 다른 일각에서는 현재의 취약한 송·배전 시설을 고려할 때 발전 형태만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입장의 대표적인 단체는 북한의 재생 에너지 개발 사업에 이미 몇 년간 참여해 온 미국의 노틸러스 연구소이다. 이 연구소는 최근에 나온 제네바 합의와 경수로 사업 방향에 대한 제안서에서, 중유를 지급하는 대신 그 비용을 북한의 전력망 등 전력 기초 시설 개선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왼쪽 상자 기사 참조).

제네바 합의와 경수로 건설에 대한 이런 논의에서 이 사업의 수혜자인 북한과 수십억 달러 규모 사업의 70%를 감당하는 한국이 북한의 에너지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창조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제네바 합의는 북·미 양자 간의 합의이지만, 그 이후의 법률적 효력을 갖는 협정들과 계약들은 한국을 사실상 제네바 합의의 당사국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한국 정부와 국민은 소수 미국인의 비판에 주춤거리지 말고, 북한과 함께 경수로 논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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