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 국가 부활' 위해 우향우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2001.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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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우파·새역사모임·〈산케이 신분〉

'3자 합작' 교과서 왜곡 전모 추적


지난 4월3일 일본 문부과학성의 최종 검정을 통과한 문제의 후소샤(扶桑社)판 중학교 역사 교과서는 자민당 우파, 우익 단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사모임), 〈산케이 신분(産經新聞)〉을 비롯한 우익 언론 등 삼두마차가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그들은 왜곡된 역사 교과서 출판에 만족하지 않고 이 여세를 몰아 일본을 '우향우'로 몰아가기 위해 또 다른 합작품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다.




자민당 '일본의 전도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회원 100여명)은 지난 4월5일 자민당 본부에서 총회를 열고, 한국과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역사 교과서가 무사히 최종 검정을 통과한 데 대해 쾌재를 불렀다. 이 모임은 또 문제의 역사 교과서가 앞으로 외국의 압력에 좌우되지 않고 각 학교에서 공정하게 채택되는지 감시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지난 3월7일에도 자민당 본부에서 총회를 열고 국회에서 "한국과 중국 정부의 항의는 내정 간섭에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답변한 외무성 마키다 구니히코 아시아대양주국장을 불러내 "일본 외무성이 중국 외무성과 한통속이라는 것이 사실이냐"라고 닦달했다. 화가 치민 마키다 국장은 "나는 엄연한 일본인이며 애국심도 갖고 있다. 중국 외무성과 한통속이라는 말은 외무성 전체를 모욕하는 것이다"라며 거칠게 항의했다.


이 모임의 대표는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전 농수산장관이다. 그는 1998년 7월 오부치 내각의 농수산장관으로 임명된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종군위안부 강제 연행은 사실이 아니라고 망언을 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문제의 역사 교과서가 출판되기까지는 그와 자민당 의원 모임이 상당한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자민당 의원 모임은 1997년 12월 자민당 본부에 교과서 회사 편집 간부 10여 명을 소집했다. 이 모임에 참석한 자민당 의원들은 그 해 4월 일본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가 4년 만에 개정되어 7개 회사가 모두 종군위안부에 대한 기술을 일제히 기재한 경위를 집요하게 캐물었다. 그들은 또 "딸이 마침 중학교에 들어가는 나이이다. 딸이 그런 역사 교과서를 배운다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라고 출판사 간부들을 윽박질렀다. 그들은 그후 자신들의 내부 토론을 〈역사 교과서에 대한 의문〉이라는 책으로 펴내면서까지 문제의 역사 교과서 출판을 부추겨 왔다.


자민당의 이른바 '문부족 의원'들의 압력도 집요했다. 자민당의 교육개혁실시본부는 지난해 10월 외무성 출신 교과서검정 심의위원이 다른 위원들에게 "인근 나라의 반발을 사는 교과서를 출판하는 것은 백해무익하기 때문에 최종 검정에서 탈락시켜야 한다"라고 연락한 사실이 보도되자 그를 즉각 경질하라고 문부과학성에 압력을 넣었다. 그 결과 노다 에이지로(野田英二郞) 전 인도대사가 다른 위원회로 전보되는 등 교과서 검정에 '근린 제국'을 고려해야 한다는 외무성의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었다.


'나팔수' 〈산케이 신분〉, 교과서 왜곡 견인




자민당 우파 의원들의 전위부대나 다름없는 우익 단체 새역사모임이 결성된 것도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종군위안부 기술이 등장한 1997년이다. 독일 문학을 전공한 전기통신대학 교수 니시오 간지(西尾幹二)가 대표를 맡고, 자유주의사관 운동을 주도해 온 도쿄 대학 교육학부 후지오카 노부가쓰(藤岡信勝)를 비롯한 우파 교수와 작가 들이 참가한 이 모임은 7개 교과서 회사에 종군위안부 기술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면서, 일본의 역사 교육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기 위해 자기들이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일본 각지에서 심포지엄과 강연회를 개최하면서 동조자를 늘려갔다. 이 모임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약 50개 지부와 회원 약 만명을 확보했다고 한다. 또 이들의 압력으로 33개 지방 의회가 역사 교과서 채택 과정의 정상화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채택하거나 가결했다. 일개 민간단체인 이 모임이 불과 4년 만에 이처럼 몸집을 불리게 된 것은 보수 표를 의식한 자민당 우파 의원들이 적극 호응했기 때문이다.


이 모임이 종군위안부 기술 삭제운동에 그치지 않고 직접 역사 교과서를 편찬하겠다고 선언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1980년대 중반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라는 우파 단체가 〈신편 일본사〉라는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출판했으나, 이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가 적어 그들 나름의 역사 바로잡기에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모임은 처음부터 중학교 역사 교과서 시장의 10%를 점유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앞서 말한 자민당 우파 의원 모임의 회원인 고야마 다카오(小山孝雄) 참의원 의원은 새역사모임의 교과서 시장 10% 점유 목표를 엄호 사격하기 위해 지난해 8월 국회에서 "교과서 채택 권한이 각 지방 교육위원회에 있다"라는 답변을 얻어냈다. 이같은 사실은 자민당 우파 의원들과 새역사모임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고야마 의원은 지난 1월 오직 사건으로 체포되어 참의원 의원 직을 사임했다.


자민당 우파 의원들이 '연출가'이고 새역사모임이 '전위부대'였다면, 〈산케이 신분〉을 비롯한 일본의 우익 언론은 '나팔수'였다. 특히 〈산케이 신분〉과 그 계열 월간지 〈세이론(正論)〉은 나팔수 노릇을 뛰어넘어 삼두마차를 견인해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산케이 신분〉은 새역사모임이 편찬하고 계열 출판사인 후소샤가 출판하는 문제의 역사 교과서의 원고가 완성되어 가고 있을 무렵인 1999년 10월, 열두 차례에 걸쳐 '교과서 통신부'라는 기획 기사를 내보냈다.


이 신문은 기사에서 기존 7개 출판사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를 신화·고대·중세·전후 보상 등 11개 항목으로 나누어 관련 기술을 자의적으로 평가한 뒤 등급을 매겼다. 이 평가에서 교과서 시장 점유율이 낮은 데이고쿠 서원 등이 상위를 차지한 반면, 약 40% 점유율을 자랑하는 도쿄서적 등은 하위로 밀렸다.


이 기사는 기존 역사 교과서 기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종군위안부에 관한 기술이 7개 교과서에서 3개 교과서로 준 것이 그 증거이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교과서 원고가 완성되어 갈 무렵 〈산케이 신분〉의 평가 기사가 나와 매우 당황했다"라고 밝히면서, "이번에 종군위안부 기술이 대폭 후퇴한 것은 각 출판사들이 새역사모임의 교과서를 의식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즉 새역사모임의 교과서가 교과서 시장을 잠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기존 출판사들도 종전의 기술 내용을 대폭 후퇴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산케이 신분〉은 이 기사로 지난 1월 말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되었다. 류큐 대학 다카시마 노부요시 교수 등이 새역사모임, 〈산케이 신분〉과 그 계열 출판사인 후소샤를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로 제소한 것이다. 다카시마 교수 등의 주장에 따르면, 〈산케이 신분〉과 후소샤는 '1997년 말 새역사모임과 각서를 체결하고 특정 교과서를 팔기 위해 다른 회사의 교과서를 비판하는 기사를 연재하거나, 그런 내용의 책과 팜플렛을 제작하고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말한 외무성 출신 노다 교과서심의위원이 경질된 것도 〈산케이 신분〉의 보도가 발단이 되었다. 또 문제의 역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할 경우 한국과 중국 정부의 큰 반발이 예상된다고 우려한 〈아사히 신분(朝日新聞)〉 기사와 논설을 사사건건 물고늘어지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산케이 신분〉의 인터넷 홈페이지가 한국 네티즌들의 사이버 시위로 다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 직후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 서울 특파원은 '과거가 효용을 갖는 나라들'이라는 칼럼에서 '요즘 〈산케이 신분〉에 대해 매스컴을 중심으로 극우, 역사 왜곡을 주도하는 신문이라는 비난이 눈에 띄고 있다'라고 지적하면서, 과거에는 〈아사히 신분〉이 '반한적'이고 〈산케이 신분〉이 '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적도 있다고 항변했다.




얼마 전 〈산케이 신분〉은 취객을 구하려다 선로에 떨어져 숨진 이수현씨의 의로운 죽음을 대서 특필하는 의외의 모습을 보였다. 〈산케이 신분〉은 독자들로부터 모은 위로금 약 1천4백만 엔을 부산에 있는 이씨 집으로 직접 찾아가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산케이 신분〉의 진짜 얼굴이 어떤 것인지는 이미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종군위안부 문제가 불거지자 한국이 무조건 싫다는 '염한론'을 퍼뜨린 것도 〈산케이 신분〉이었으며, 한국의 반일 감정 때문에 한·일 관계가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는 억지 논리를 유포해 온 것도 〈산케이 신분〉이다. 게다가 이제는 왜곡된 역사 교과서 출판을 부추겨 역사를 파괴하려고까지 하는 것이다.


자민당 우파·〈산케이 신분〉·새역사모임은 검정 통과의 여세를 몰아 앞으로 교과서 시장 10% 점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히로시마 현 교육위원회는 이들의 압력으로 교과서 채택에서 이른바 '학교표'를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삼두마차, 헌법 개정·핵무장 노려


현재 교과서 채택 권한은 각 지방 교육위원회가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담당 교사가 어떤 교과서를 채택할 것인지를 학교장을 통해 교육위원회에 제출하고, 교육위원회 조사원이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채택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현장 교사들의 반발로 문제의 역사 교과서가 채택될 여지가 별로 없다. 때문에 이들은 교과서 채택 권한을 교육위원회로 집중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0% 점유 목표가 달성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앞서 말한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신편 일본사〉는 일선 교사들의 반발로 인해 올해 공립학교 가운데 19개 학교의 교과서로 채택되는 데 그쳤다. 채택된 부수도 2천7백부이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세 차례 수정을 거쳤지만 아직도 전체 기술이 다른 교과서와 판이하고, 중학생에게는 어려운 내용이기 때문에 채택하는 학교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두마차가 지향하는 마지막 목표는 물론 교과서 시장 10% 점유가 아니다. 그들은 여세를 몰아 천황제 국가로 복귀, 헌법 개정, 핵무장 등을 향해 힘차게 삼두마차의 바퀴를 굴려가려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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