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배부른 황제 되리라"/'MD 구축' 속셈 분석
  • 이수훈 (경남대 교수·사회학) ()
  • 승인 2001.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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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산업 통한 경제 활성화·패권 유지 '일거양득' 노려


지난 5월1일 부시 미국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아 '미사일방어(MD)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해 전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MD 충격'은 한반도뿐 아니라 전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선 미국 내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야당인 민주당을 포함해 주요 신문, 과학자를 중심으로 한 지식인들이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국제 사회의 반발도 거세다. 북한을 비롯해서 '불량 국가'로 분류된 나라들은 말할 것 없고, 유럽·중국·러시아 등 강대국이 각기 이유는 다르지만 드세게 반발하고 있다. 자신이 주 타깃이 된다고 생각하는 중국은 신냉전을 조장하고 불필요한 군비 경쟁을 유발하는 선언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이 이같은 반대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평면적 이해를 넘어 구조적 분석을 요구하는 과제이다.


1947년 미국이 그리스 내전에 영국을 대신해 개입하면서 선언한 '트루먼 독트린'이 냉전을 낳았듯이, 이번 '부시 독트린'은 신냉전을 본격화했다는 점에서 묘한 역사적 연속성을 감지하게 된다. '트루먼 독트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대 위기에 직면했던 세계 질서에 냉전이라는 특이한 관념을 심어 위기를 해소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계 질서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냉전 체제는 일견 소련을 대립의 한 축으로 하는 동서 진영 간의 적대와 갈등처럼 보이지만 그 이상의 체제 구축적 기능을 담당했던 것이다.


냉전을 통해 미국은 유럽과 일본의 부흥을 꾀할 수 있었다. 재화와 자본의 순조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다자주의적 세계 시장 질서를 복구함으로써 미국은 압도적 우위에 선 생산력을 가동할 수 있었다. 소련과 냉전이 있었기에 미국은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미국의 세계적 지도력은 대체로 '동의에 기초한 것'이었다.


1970년대 초부터 미국 헤게모니에 동요가 일어났고, 급기야 1989년 공산 진영의 붕괴로 냉전 체제가 종말을 고하자, 미국은 '강제에 기초한 지도력', 즉 패권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미국은 경제력에서 유일 강국도 아니었고, 1960년대와 같이 인류 보편 가치를 주창하고 실행할 능력도 없었다. 소련이 제거되자 군사력에서만 유일 강대국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당시 부시 대통령은 '신 세계 질서' 구축을 주창했다. 냉전 체제의 상징이던 이념 대립과 갈등을 넘어 평화와 협력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하자는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웠다. 하지만 속내에는 미국 지도자들의 위기 의식이 있었다. 미국 경제가 너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MD로 '세계 기강' 잡기




이런 상황에서 1991년 벽두에 발발한 걸프전은 어쩌면 필연적 귀결이었다. 걸프전은 당시 외교적 노력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걸프전을 통해 부시가 주창한 신 세계 질서란 탈냉전 시대에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진정한 의도를 가리기 위한 가면이었다는 점이 이내 입증되었다. 냉전 종식으로 소련의 위협이 제거되자 미국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신 냉전'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그 일환으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징벌하기 이전에 이미 부시 행정부는 남반구에서 '악마 만들기'에 나섰다. 파나마의 노리에가, 리비아의 가다피, 이란의 호메이니, 니카라과의 오르테가, 북한의 김일성, 이라크의 후세인 등등 리스트는 길다. 이들은 대개 자유민주주의 파괴자·테러주의자·독재자·정신이상자로 그려지고, 그들이 통치하는 국가는 '깡패' 내지는 '불량' 국가로 분류되었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구축하겠다는 미사일방어 체제가 바로 이런 불량 국가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미국과 우방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같은 주장은 그리 설득력이 없다. 세계사를 돌아볼 때 지금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평화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세계 평화를 앞세워 비평화적인 물리력 구축을 강변한다. 미국은 아직도 패권자로서 전세계의 '사회적 기강'이 해이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로, 정치·군사적으로는 미사일방어 체제로 기강을 잡자는 것이 미국의 세계 전략인 듯하다.


미국, '위험' 생산한 뒤 '보호' 판매




부시 대통령과 그 주변의 안보 집단은 패권자로서 남반구의 '사회적 기강'을 잡기 위해 '위험'을 생산하고 '보호'를 판매하려고 한다. 악마와 불량 국가는 미국의 패권 체제 유지를 위해 필요한 '위험'이며, 그 위험을 담보로 우방국에 '보호'를 판매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불량 국가들의 미사일 위협을 강화하는 것은 한국전쟁 때 미국 외교관이자 역사가인 조지 케넌이 소련의 봉쇄 정책을 경계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속임수에 가깝다. 남반구로부터의 위협이 왜곡되고 과장되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당시 애치슨 국무장관은 1940년대 말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활용해 미국민이 전쟁 공포심을 갖도록 만드는 데 성공해 반대파를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럼 이 왜곡과 과장은 왜 일어나는가? 여기에 자본의 이윤 동기가 개입한다. 미사일방어 체제는 부시 행정부의 세계 전략이지만, 이를 통해 횡재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 레이건 대통령 때 추진된 전략방위구상(SDI) 이래 이 분야에 투자를 해온 군수 메이저들의 이해 관계가 걸려 있다. 그리고 만약 미사일방어 체제가 추진되면 수많은 첨단 산업 분야 기업들이 참여할 것이고,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미사일방어 체제가 현실화하면 한국전쟁 때 트루먼 대통령과 애치슨이 추진한 재무장 프로그램과 유사한 효과를 내지 말라는 법도 없다. 트루먼 정부는 재무장 프로그램을 통해 군사적 케인스주의의 길을 길었다. 경제의 군사화 현상이 일어났다. 군수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함과 더불어 국가도 강력한 안보 국가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후 약 25년 동안 미국은 황금기를 누렸다.


그런 각도에서 부시 대통령의 미사일방어 체제 구축을 신 재무장 프로그램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지난 10여 년 호황을 누려온 미국 경제는 금융 시장 붐과 소비가 주도했다. 그 호황이 거의 끝났다. 경제 위기 조짐이 역력하며, 실제 위기 의식도 만만치 않다.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사일방어 체제 구축 사업은 경제 활성화에 돌파구가 될 것이다. 미사일방어 사업은 남반구를 적절히 통제하고, 미국 경제의 활성화도 꾀하겠다는 이중 목적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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