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죽었다" 바람 만난 혁명 불길
  • 카트만두·이성규(다큐포럼 대표) ()
  • 승인 2001.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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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국왕 의문사 후 공산반군 세력 급속 확산


네팔인들은 자기네 왕이 수많은 힌두교 신 가운데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신, 그래서 인간 세상에 내려온다는 비슈누의 화신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지난 6월1일 갑자기 비슈누의 화신이 왕궁 만찬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 6월2일 힌두교 성지 파슈파티나트 화장터에서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졌다.




"이제 우리에게서 비슈누는 떠났습니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와 자수성가한 비니얀 씨(30)의 말이다. 그는 비렌드라 전 국왕의 서거를 애도하는 의미로 삭발을 했다. 갸넨드라 왕이 있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필자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화를 내듯 큰소리를 냈다. "갸넨드라를 왕이라고 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를 비슈누의 화신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네팔에서 신이 사라지자 중국에서조차 잊혀가는 마오쩌둥 사상을 신봉하는 공산 반군이 힘을 얻고 있다. 네팔의 67개 군 가운데 이미 과반수 지역에서 반군이 출몰하고 있다. 고르카·당·자잘코트·칼리코트와 같은 중서부 지역에는 반군이 독자적인 행정과 치안을 담당하는 해방구가 있다.


만년설의 신비를 간직한 나라 네팔은 세계에서 하나뿐인 힌두 왕국이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이 2백31 달러인 극빈국이다. 전국민의 40%가 절대 빈곤층인데,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심지어 자기 딸마저 팔아 넘기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네팔 여성 1만2천여명이 성 노예로 팔리고 있으며, 대부분 국경 너머 인도 뭄바이의 카마티푸라 같은 사창가로 보내진다.


공산 혁명이 일어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다. 가난하더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으면 현재의 고통은 참을 수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미래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절망한다. 절망 속에서 사람들은 뭔가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게 되는데, 그래서 반군 지지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반군 서열 2위로 알려진 프란찬다가 힌두교 성직자 출신으로서 유학까지 다녀온 인텔리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생의 고통이 전생의 업이라고 믿는 네팔에서 성직자 신분인 프란찬다가 이끄는 공산 반군은 가난한 이들을 현세에서 구원할 또 다른 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을 정도다.


마오쩌뚱 추종자 1만8천여명, 인민전쟁 5년째




위 사진은 반곤 서열 1위인 바블람 바트레이와 2위인 파란찬다(맨 오른쪽).


1995년에 있었던 네팔 총선에서 통일 공산당은 내각을 장악했지만, 국민의회를 비롯한 보수 진영이 연합하는 바람에 9개월 만에 실각했다. 합법적 선거를 통해 자신들의 공산 이데올로기를 실현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젊은 혁명가들은 9개월 만에 실각하자 선거 민주주의의 한계를 절감했다. "처음부터 우리가 무장한 것은 아니었다. 선거에 의한 정권 장악은 결국 부르주아적인 환상이었다는 것을 1995년에 깨달은 것이다." 1990년대 초 한국에서 불법 체류하며 3D 업종에서 일했다는 피엔 씨의 말이다. 그는 현재 중서부 지역에서 활동하는 반군의 한 지구당 책임자이다.


1996년 무장 게릴라 2백명을 모아 인민전쟁을 선포한 네팔 반군의 전략은 마오쩌둥 사상에 입각한 것이다. 세계 공산혁명사를 보면 그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공장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 무장 봉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다는 레닌의 고전적인 혁명 방식과, 전근대적인 소작제도로 고통받는 농민을 기반으로 하여 혁명을 성공시킨 마오쩌둥의 혁명 모델이다. 네팔 반군은 이 두 가지 가운데 혁명적 토양이 비슷한 마오쩌둥의 전략과 전술을 따른다. 농촌을 거점으로 삼고 도시를 압박해 들어가 혁명을 이룩한다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다.


네팔 반군이 인민전쟁을 선포한 후 5년 동안 사상자가 1천6백명 발생했다. 현재 반군은 자동화기 병력 2천명과 단순 화기 병력 5천명 그리고 예비 병력 8천여명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의 무기 중 일부는 중국에서 밀반입된 것이지만, 이미 자본주의를 수용한 중국 정부는 네팔의 공산 반군과 연관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현재 이들의 혁명적 동지는 인도의 비하르 주와 안드라프레데시 주에서 자치적 해방구를 꾸리고 있는 MCC(Maoist Com-munity Center)와 PWG(People's War Group)이다. 네팔 반군은 중국에서 밀반입되는 무기를 인도 반군에 넘겨 혁명 자금을 조달한다.


카트만두를 중심으로 한 도시 지역은 아직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하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비밀 경찰에 의한 사찰이 강화되고, 밤이면 철통 같은 검문 검색이 도시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광주에서 8년간 유학 생활을 한 감비르 씨는 네팔인들이 왕가의 비극에 분노하면서도 조용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980년 한국의 광주에서 정부군이 학살을 자행했지만, 대다수 한국인들은 당시 전두환 정권의 발표를 그대로 믿었다. 학생운동권이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했지만 한국인들은 학생들의 말을 유언비어라고 생각했다." 그는 지금 네팔도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시인 가운데는 네팔의 30%를 장악하고 있는 마오이스트(마오쩌둥주의자) 반군 1만8천명이 그들의 신이 머무르는 히말라야를 붉게 만드는 것은 역사를 퇴보시키는 일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카트만두 시내에서 만난 나라얀 씨(25·요식업)는 "나도 지금의 국왕을 갈아치우고 싶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유령이 휩쓸던 20세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해외 체류 노동자들도 혁명자금 송금


마오이스트들은 오는 7월12일 총파업을 선언했다. 총파업은 이곳 말로 '번다'라고 하는데, 번다가 선언되면 모든 것이 멈춘다. 파업을 하지 않으면 피의 보복을 받기 때문이다. 반군은 또한 카트만두로 잠입해 사업가들에게 낫과 망치가 붉게 그려진 반군의 영수증을 발급하며 혁명 자금을 강제 징수하고 있다.


"어쩔 수 없다. 그들이 달라고 하면 줘야 한다. 물론 그들이 신봉하는 혁명을 따르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무섭기에 줄 뿐이다." 카트만두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가내 수공업을 하는 사업가의 말이다. 부자와 달리 노동자들은 자진해서 혁명 정부에 돈을 낸다. 혁명 정부 수입의 50% 정도는 해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 일하는 네팔 노동자 가운데도 혁명 정부에 송금하는 이가 적지 않다. 네팔 정부는 최근 번다를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보복이 두려워서 번다에 참여한 사람까지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네팔 정부군과 반군이 정면 충돌한다면 네팔은 걷잡을 수 없이 혼란에 빠진다. 그렇게 되면 네팔은 내전 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23년간 네팔에서 의료구호 활동을 해온 덴마크인 스벤 씨(48)의 말이다. 최악의 경우 정부군과 반군의 대결은 인도와 중국의 개입을 부를 수도 있다.


"펏치 커스트 혼처홀라?"(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타하 차이나…"(모르겠어요.) 네팔인들이 요즘 나누는 대화이다. 그만큼 그들의 미래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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