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 돌격대장의 좌충우돌 '북한 때리기'
  • 워싱턴·변창섭 편집위원 ()
  • 승인 2001.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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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막무가내 보수' 행보


부시 행정부의 외교팀 가운데 요즘 언론에 부쩍 자주 오르내리는 사람이 있다.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57)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요즘 부시 행정부의 최대 현안인 미사일 방어(MD) 계획을 홍보하기 위해 럼스펠드 국방장관 이상으로 뛰고 있다. 좀체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가 CNN은 물론 Fox 뉴스·ABC 나이트라인, 공영 방송인 PBS와 회견했다.




그는 지난 7월29일 CNN의 시사 대담 프로에 출연해 "미국은 북한의 엄청난 재래식 무기로부터 위협받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북한위협론은 부시 행정부가 '불량국'의 미사일 위협을 명분으로 삼아 추진하는 미사일 방어 계획 논리와도 맞닿아 있다. 그래서인지 월포위츠 부장관의 최근 행보가 대대적인 '북한 때리기'와 연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돈다.


1973년 국방부 군축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한 월포위츠 부장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현실파 국방통이다. 그는 국방부 부차관보(1977∼1980), 국무부 정책기획국장 (1981∼1982),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 (1982∼1986), 인도네시아 주재 대사(1986∼1989),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 (1989∼1993) 등 요직을 다 거쳤다. 흥미로운 사실은 공직의 대부분을 냉전 시절에 보내서인지 몰라도 그의 안보관이 냉전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냉전적 사고를 보여준 일화를 소개한다.


1992년 당시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이던 그는 안보 전략과 관련한 비밀 메모를 작성했다. 골자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은 잠재적 경쟁국이 지역 강국이 되거나 세계적 역할을 맡을 수 없도록 이를 사전에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구상 어떤 나라보다도 북한에 회의적"


그런데 이 메모 내용을 〈뉴욕 타임스〉가 폭로해 정치적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특히 민주당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은 그의 발상을 "냉전 시절처럼 막대한 군사비를 지출하기 위한 수작이다"라고 공격했다.


그토록 호되게 질책을 받았어도 월포위츠의 냉전적 안보관은 지금까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그는 지난해 봄 시사 월간지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당시를 회고하며 '진짜 냉전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오히려 나를 공격했던 사람들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냉전적 안보관은 그의 대북 인식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그가 북한이라는 나라를 생각하면서 떠올리는 단어는 하나밖에 없는 것 같다. 영어로는 rogue state,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불량국'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이 말은 동물의 경우 '고삐 풀린 망아지' 쯤으로 비유되고, 인간의 경우 도대체 통제가 안되는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뜻을 함축하고 있다. 최근에도 상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해 이 말을 쓴 그는 한때 북한을 가리켜 "나는 지구상 그 어느 나라보다도 북한에 대해 깊은 회의를 품고 있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월포위츠가 정확히 언제부터 이런 북한관을 갖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한반도 정책을 주관하던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 시절에 그런 생각을 굳히게 되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당시는 남북 관계에 별 진전이 없던 때였다. 바로 이듬해 10월 한국 각료급 인사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얀마(버마) 아웅산 폭파 사건이 터진 것도 그의 대북관 형성에 일조했을 것이다.


그러다 1989년 국방부 서열 3위인 정책담당 차관 자리에 오른 그는 북한 문제에 좀더 깊숙이 관여하게 되었다. 특히 1990년대 들어 국제적 현안으로 떠오른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그는 워싱턴과 서울을 분주히 오가며 강경 대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테면 1991년 5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과 플루토늄 재처리 의혹 시설 제거 등을 골자로 한 강경책을 마련한 사람이 그였다. 미국 의회조사국(CRS) 한반도 전문가인 래리 닉시 박사는 "1993년까지도 한·미·일 3국은 월포위츠가 제시한 강공책을 바탕으로 북한 핵문제를 풀려고 했다"라고 밝혔다. 이런 강공책은 오히려 1993년 봄 북한으로 하여금 플루토늄 추출 강행과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를 결행하도록 만들어 사태를 악화시켰다.


1993년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가 출범하자 야인으로 물러난 월포위츠는 북한에 대한 공세만큼은 늦추지 않았다. 그는 1995년 1월 하순 상원 외교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약 석 달 전 미국과 북한이 맺은 기본합의문에 대해 "이는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연기한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해결 자체를 어렵게 만든 것이다"라고 혹평했다. 그는 또 "북한이 진짜 전력이 필요하다면 원자력이 아닌 화력 발전소를 지었어야 옳았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해 그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 경수로를 화력 발전소로 대체하는 문제를 거론한 것은 당시 발언과 맥을 같이한다.


그는 1997년 10월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가리켜 미국에 최대의 위협국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라크 핑계 대며 "미사일방어 꼭 필요"


월포위츠의 이름이 또다시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은 1999년 3월 이른바 '아미티지 대북정책 보고서'가 발표되었을 때였다. 전 국방부 안보담당 차관보를 지냈고 현재 국무부 부장관인 리처드 아미티지 씨가 주도해 공화당 명망가들로 구성한 북한정책 재검토 위원단에 그가 핵심 멤버로 참여한 것이다. 보고서는 특히 북한이 끝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선제 공격'으로 제압하기를 권고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1990년대 들어 직·간접으로 북한 정책에 관여해온 월포위츠는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국방부 부장관에 오름으로써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특히 그는 미사일 방어망에 따른 국내외의 거센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집요하게 대응 논리를 펴고 있다. 지난 7월17일 미사일 방어에 관한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그가 제시한 자료는 그런 대응 논리의 정수로 꼽힌다. 그는 여기서 미국에 실제적 미사일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나라로 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들며, 앞으로 3∼4년 뒤 북한이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를 탄도 미사일로 공격할 능력을 갖추게 될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내일 당장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 한반도라면서,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맞서기 위한 공중 발사 레이저 요격 시스템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거론했다.


지난 7월30일자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이라크와 북한 같은 나라의 위협에 맞서 과연 미국이 제대로 방어력을 갖춰 왔는지 분석할 가치가 있다"라며 거듭 미사일 방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월포위츠와 북한과의 '악연'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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