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열차에 미래를 적재하라"
  • 모스크바·정다원 통신원 ()
  • 승인 2001.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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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TSR-다리' 계획 세우고 '황금 노선' 만들기 박차


지난 7∼8월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프로젝트'의 기치를 올렸다. 100주년 기념 열차가 시베리아를 횡단했고, 세미나와 전시 행사도 줄을 이었다. 이와 동시에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열차 개통 150주년 기념 행사도 열렸다. 때마침 김정일 위원장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와 북·러 정상회담에 임했다.




지난해 2월 푸틴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 공식 제안한 시베리아 횡단-한반도 종단 철도(TSR-TKR) 연결 제안은 아시아-유럽 물류 비용 감소, 시베리아 자원 공동 개발, 남북한 협력 증대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이 제안은 어업권,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의 농장 개발, 나홋카 자유 무역항 등에 대한 한국의 연구를 촉발했으며 북한의 관심도 끌었다. 북한은 이 사업에 참여하는 대가로 북한 무기 현대화를 러시아 정부와 협의해 왔고, 급기야 8월4일 특별 시베리아 횡단 열차 편으로 모스크바에 도착한 김정일 위원장은 회담 의제에 시베리아 횡단-한반도 종단 철도 문제를 포함하기에 이르렀다.


이 프로젝트는 남북한과 러시아를 둘러싸고 정치·경제적으로 복잡한 이해 관계가 얽혀 있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 철도 프로젝트는 과연 무엇이며, 이것이 남북 관계에 미칠 파급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지난 7월9일 러시아 제국의 상징인 쌍두독수리 마크를 기관실 앞에 내걸고, 차량마다 'TSR 100주년'이라는 플래카드를 건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사절단과 작가·시인·기자 들을 태우고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해 힘찬 기적 소리를 울렸다. 이 열차는 8개 도시에서 기념 행사를 가졌고, 도착하는 역마다 환영 나온 주민들로부터 '빵과 소금'(러시아 식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악쇼넨코 철도장관은 기념사에서 "시베리아 횡단 철도 덕분에 아시아의 여러 도시가 독자적으로 발전할 전기를 맞게 됐다. 이 철도는 전문가들의 기술적 사고가 이룬 금자탑이다"라고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후 비행기를 타고 열차의 뒤를 따라다니며 행사를 독려했다.


악쇼넨코가 TSR 100주년 기념 행사에 지나칠 정도로 관심을 갖고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역할을 강조한 이면에는 러시아의 경제적 계산이 깔려 있다. 즉 러시아는 단기적으로 시베리아 횡단-한반도 종단 철도 사업을 포함해 장기적으로는 일본 홋카이도에서 체코의 보구민을 거쳐 영국 런던까지를 연결할 'TSR-다리'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른 사할린-홋카이도 해저 터널을 구상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이 철도를 북아메리카와 영국까지 연결할 계획도 염두에 두고 있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 철도 계획은 지난 7월 27∼28일 모스크바 국제무역센터와 크렘린 대회궁전에서 열린 '러시아와 세계 경제 발전에서 TSR의 역할'이라는 국제 회의에서 구체화했다. TSR 100주년과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철도 개통 150주년 기념 행사로 열린 이 국제 회의는 세계 철도 관계자와 경제인 들을 초청해 경제 세계화 과정에서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열린 것이다.


최근 독일 남부 슈투트가르트에서 'TSR-다리'라는 주제로 열린 전시회는 시베리아의 석기 시대 물고기 화석과 고유 민속품을 소개해 시베리아에 대한 유럽인들의 고정 관념을 깨고 새로운 눈으로 시베리아 고유 문화를 인식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전시회의 진정한 목적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TSR-다리'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한 것이었다.


현재 푸틴 행정부는 'TSR-다리'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데 온힘을 쏟고 있다. 러시아는 'TSR-다리' 이미지 활성화 및 운송 인프라 구축과 함께 그동안 장애 요인이 된 문제점 해결, 즉 운송 요금 인하·운송 기간 단축·서비스 개선·안정성 제고 등을 위해 교통부 산하에 'TSR 경쟁력 제고를 위한 국제조정위원회'도 설치했다.


7월 초 러시아 철도청장과 체코 운송장관 야로미르 쉴링은 체코의 오스트라바 시에서 만나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서쪽 끝 보구민에 대규모 철도 화물 터미널을 건설하기로 합의 각서에 서명했다. 러시아측은 이 터미널이 건설되면 철도 운송 요금을 현재보다 15∼20% 인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는 이와 동시에 운송 시간 단축에도 힘을 쏟고 있다. 러시아 교통부는 국제 수준의 주행 거리인 하루 1140km로 극동의 나홋카에서 핀란드까지 11일에, 체코까지는 12.5일에 주파할 방안을 마련했다. 교통부는 이로써 시베리아를 통한 운송이 해운 운송에 견주어 최대 2분의 1까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러시아측은 새 루트 개발을 위해 폴란드와 슬로바키아와도 협의하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TSR-다리' 구축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철도 궤도 문제이다. 러시아 철도는 광궤 철도여서 궤도 너비가 1.520m인 데 비해 서유럽은 협궤 철도여서 1.435 m이다. 이로 인해 화물을 옮겨 싣는 비용이 추가되어 운송 요금이 올라가고 운송 시간이 지체되었다.


'시베리아 자원 개발' 한·러 합작도 순풍 탈듯


러시아의 또 다른 약점은 오랜 사회주의 체제에서 말미암은 질 낮은 서비스이다. 서비스 질을 개선하기 위해 러시아는 자본주의 방식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일본의 소포물 배달에서 쓰이는 '도어-투-도어(Door-To-Door)' 서비스를 시베리아 횡단 철도 사업에도 도입할 계획이다.


러시아는 'TSR-다리' 프로젝트에 비용과 노력을 많이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악쇼넨코 철도장관은 장기적 안목에서 이 프로젝트가 러시아에 투자한 것보다 이익을 많이 줄 것으로 전망한다. 우선 통관세로 벌어들이는 액수가 현재 10억 달러인데, 전문가들은 앞으로 20억 달러까지 무난히 달성될 것으로 내다본다. 또한 시베리아 횡단-한반도 종단 철도 사업에서도 연간 20억 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 교통부는 핀란드·우크라이나·벨로루시와 중부 유럽 국가로 수출되는 한국과 일본의 물동량을 흡수할 경우 충분히 채산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 프로젝트와 시베리아 자원 개발을 긴밀하게 연결하고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쫓으려는 야망에 따라 시베리아가 급격히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과거 낭만과 유형(流刑)의 공간으로만 기억되던 시베리아가 이제는 '자원의 보고'로 간주되고 있다. 실제로 시베리아의 풍부한 임산자원·수자원·지하자원은 세계 경제인들의 눈길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경제인들의 우선적 관심은 지하 광물자원에 집중되어 있다. 시베리아에는 석유·가스 외에 금·알루미늄·니켈·우라늄이 많이 묻혀 있다. 특히 석유와 가스는 세계 최대 매장지로 추정된다. 1999년 통계 자료에 따르면, 석유는 추정 매장량의 14%만이 채굴되었고, 가스는 3%만 채굴되었을 뿐이다. 현재 한국과 러시아는 이르쿠츠크 가스전 개발과 중국과 북한을 통과하는 가스 파이프라인 부설 문제를 협의하고 있고, 자원 개발 다각화도 논의 중이다.


'TSR-다리' 프로젝트와 시베리아 개발 계획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시베리아의 풍부한 자원과 편리한 운송 수단인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결합할 경우 그 전망은 매우 밝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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