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철길 위에서 꾸는 꿈'
  • 모스크바·정다원 통신원 ()
  • 승인 2001.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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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군사·경제적 이득 노려…
러시아, 아시아 전진 기지 확보 '야심'


지난 8월3일 저녁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브 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맞을 준비에 한창이었다. 9일간 특별 열차를 타고 국빈 방문하는 김위원장은 모스크바에 도착해, 옛 소련 정권에서 총리를 지낸 니콜라이 티호노프, 부총리 일리야 클레바노프, 철도장관 악쇼넨코의 영접을 받으며 크렘린 궁으로 안내되었다. '테베6(TV6)' 텔레비전 방송은 김위원장의 도착을 보도하기 위해 특별 방송을 편성했다. 그의 이번 러시아 방문 기간은 장장 24일, '최장 국빈 방문'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게 되었다.




김위원장의 방러 일정은 세 갈래로 요약된다. △김일성 주석 유적지 순례 △러시아 최신 무기에 대한 관심 표명 △시베리아 횡단 철도(TSR)-한반도 종단 철도(TKR) 연결 프로젝트 논의이다. 이와 더불어 북·미 회담, 북·일 회담 등 국제 문제에 대한 입장 조율이 포함되어 있다.


북·러 정상회담과 실무회담의 귀추는 한국뿐 아니라 한반도 상황과 이해가 얽혀 있는 미국·일본에도 초미의 관심사이다. 북·러 정상회담에서 김위원장의 방한 일정이 어떤 방식으로든 논의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방한과 남북 관계 진전은 전적으로 시베리아 횡단 철도-한반도 종단 철도 연결을 논의한 결과에 달려 있다. 북한은 러시아가 시베리아 횡단 철도 프로젝트 실현을 위해 시베리아 횡단 철도-한반도 종단 철도 연결을 1차 과제로 삼았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를 매개로 러시아로부터 군사적·경제적 이득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해 왔다. 사실 시베리아 횡단 철도 프로젝트를 2년 내에 실현하려는 목표를 세우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북한 철도 현대화와 복선화, 철도 전문 인력 확충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한다.


북한과 러시아가 이 프로젝트에 얼마나 관심이 큰지는 북·러 확대 정상회담에 양국 철도 총수들이 모두 참석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남북 경협에서도 가장 큰 현안이다. 따라서 북·러 협상 결과는 김위원장이 방한하는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러시아 미하일 카시야노프 총리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 개통 100주년,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철도 개통 150주년을 기념해 7월27∼28일 '러시아와 세계 경제 발전에서 TSR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열린 국제 회의 축사에서, "TSR-TKR 프로젝트는 매우 전망 있는 사업이다. TSR는 가장 빠르고 싸게 아시아와 유럽의 화물을 수송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북한 철도 현대화에 20억 달러 규모를 투자할 의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시베리아 횡단 철도-한반도 종단 철도 연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대가로 러시아의 투자를 이끌어 냈다. 그리고 북한 시설 이용료와 노동력 사용을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최신예 무기를 공급하겠다는 밀약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무기 구매비의 50%를 외상으로 요구한 북한과 외상 거부 의사를 표명한 러시아 간에 실무 협상이 계속될 전망이다.




이번 북·러 철도 협상에서는 경원선이 북·러 경계 지점인 하산을 통과해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연결되는 노선이 우선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러시아가 이 노선을 택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산까지 연장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일본의 수출 상품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나른 후,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통해 유럽으로 수송할 단기 계획도 세워 놓은 상황이다. 북한 역시 시설 이용료와 인건비를 챙기는 데 이 노선이 경의선-중국-시베리아 노선보다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양국의 이해 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에 경의선 쪽으로 연결하는 노선은 2차 검토 대상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와 자유 무역 지대로 선정된 나홋카를 대아시아 무역 전진기지로 삼을 예정이다. 개통을 한 달 앞두고 있는 중·러 국제 철도도 중국의 수이펀허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된다. 블라디보스토크는 21세기에 아시아의 중심지로 떠오를 수도 있다.


러시아 교통부는 운송에 관한 모든 조건을 국제 수준에 일치시키려고 하는 등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 100주년 행사로 'TSR-다리' 홍보도 강화하고 있다(58쪽 기사 참조). 김위원장 역시 특별 열차편으로 모스크바에 도착함으로써 TSR 100주년 행사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한몫 거들면서 정치·경제적 이득을 챙기고 있다.


철도 연결, 장애물도 적지 않아


그러나 화물 운송의 경쟁력은 비용과 시간이 좌우한다. 이 외에 안정성과 신용에 따라 매기는 보험 수가를 부수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과연 현재 러시아가 추진하고 있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한반도 종단 철도 연결 사업이 경쟁 관계인 해운 운송과 비교해 얼마만큼 비교 우위에 있는지 면밀한 조사 연구가 요구된다.


가장 큰 장애는 역시 '마인드(mind)'이다. 아직도 러시아는 사회주의적 요소를 많이 갖고 있다. 특히 지방의 경우 아직도 사회주의 체제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70년간 사회주의적 관료주의에 젖어온 러시아인과 자본주의가 체질화한 한국인 간의 '마인드 차이'는 이 사업 추진 과정에서 부딪치며 풀어야 할 과제이다.


또한 운임을 낮추고 안전성을 높여 보험 수가를 내리는 문제도 남아 있다. 얼마 전 푸틴 대통령은 시베리아 횡단 철도 10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했던 철도청 직원들을 위로하고 훈장을 수여하면서 '안정된 운임 체계'를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 외에 남북한 철도 궤도 너비와 전압 차이 등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앞으로 북한과 러시아 실무자 간의 협상이 이 프로젝트를 현실화하는 데 중대한 고비가 될 것이다.


실무 협상에서 주목되는 것은 북한이 시베리아 횡단 철도-한반도 종단 철도 연결 프로젝트를 무기 협상과 연계해 남한보다 우월한 공격용 무기를 공급해 달라고 러시아에 요구하리라는 점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북한에 방어용 무기만 공급하며 미국이나 한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랄 것이다.


러시아는 이 문제를 놓고 북한과 줄다리기를 하면서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할 것이다.


러시아는 북한 철도 현대화에 대한 투자와 남북관계 진전 문제를 연계해 한국 정부에 원조를 요청할 것이 분명하다. 이미 러시아는 한국으로부터 차입한 자금 중 미상환분인 18억 달러를 북한 철도 현대화 투자 비용으로 대체하자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북한은 미국과 한국 정부로부터 최대한의 이득을 얻을 때까지 외교 행보를 계속할 것이다. 특히, '무기 협상' 실무회담에서 외상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한다면, 북한 정부는 한국과 일본과의 협상에서 현금을 충당하려 할 것이다. 북·러 정상회담 이후 우리가 챙겨야 할 일이 부쩍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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