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카제 총리' 위험한 비행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2001.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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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우익 위해 산화하는 '특공대' 자임…
구조 개혁 실패하면 '추락'


일본 국민이 이른바 '헨진(變人·변종) 총리'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에게 열광하는 현상을 제1차 세계대전 후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독일에 비유하는 정치학자들이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독일은 의회에서 과반수를 넘는 정당이 없어 3개 정당 내지 그 이상의 정당이 연립 정권을 놓고 이합집산하는 일이 14년 간이나 계속되었다. 연립 정권이 바뀔 때마다 총리도 바뀌었다. 독일 국민이 이런 정치 혼란에 식상한 때에 히틀러가 등장했다. 반 베르사유 조약·반 유태주의를 내건 히틀러는 독일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아 나치 정권을 세웠다.


히틀러처럼 정권 잡은 고이즈미




일본의 정치학자들에 따르면 '변종 정치인'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지난 4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총리 자리를 거머쥔 것은 이변 중의 이변이었다. 자민당의 역대 총리는 자민당 3역으로 불리는 간사장·총무회장·정조회장을 거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대장대신이나 통산대신, 외무대신 경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고이즈미 후보는 후생대신과 우정대신을 경험한 것이 전부이고, 자민당 3역 자리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런 그가 예상을 뒤엎고 자민당 총재 자리와 총리 자리를 거머쥔 것은 한마디로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처럼 자민당 단독 정권이 붕괴된 이후 연립 정권이 계속 등장하면서 정치 혼란이 빚어지고 그에 따라 경제가 침체했기 때문이다.


38년간 계속된 자민당 단독 정권이 붕괴한 1993년 이후 일본에서는 호소카와·하타·무라야마·하시모토·오부치·모리 등 연립 정권이 여섯 번이나 탄생했다. 당연히 총리도 10년 사이에 6명이 바뀌었다. 이런 정치적 혼란 때문에 일본은 부실 채권 처리가 지연되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리는 경제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일본 국민은 정치 혼란과 경제 침체를 타결할 새로운 리더를 갈구했다. 이런 때 '성역 없는 개혁'을 외친 고이즈미 후보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변종 정치인' 고이즈미 후보가 예상을 뒤엎고 자민당 총재와 총리 자리를 거머쥔 것은 그의 우익 성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최근 발간된 〈고이즈미 준이치로를 독파한다〉라는 책에 따르면, 고이즈미 총리의 부친 준야(전 방위청 장관)의 고향은 가고시마 현 가세다(加世田) 시이다. 가세다 시 근처에는 태평양전쟁 때 육군 가미카제 특공대가 발진한 지란(知覽) 비행장이 있다. 현재 그곳에는 가미카제 특공대 자료관이 설치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은 특공대원의 유서가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아버님, 어머님, 저는 두 분의 자식으로서 일본국을 위해 두말 없이 사쿠라처럼 산화하겠습니다. 20년간 대단히 고마웠습니다.'


가미카제 특공대 유서 읽고 눈물 흘려




고이즈미 총리는 부친의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지란의 가미카제 특공대 자료관에 들러 유서 등을 읽어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앞서의 책은 전하고 있다. 또 한 보도에 따르면, 부친의 고향인 가고시마 출신 사촌이 태평양전쟁 말기에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서 오키나와에 출격해 전사하여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있다고 한다.


고이즈미 총리의 애독서도 그가 스무 살 때 읽고 감동한 옛 해군 예비학생 제14기의 유고집이다. 해군 예비학생 제14기는 해군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 차출되어 대부분 전사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런 개인적인 체험 때문에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줄곧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왔으며,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기 앞서 지난 2월 지란의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오랫동안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은 죽으면 야스쿠니 신사로 돌아온다는 신화를 믿고 자폭 공격을 감행했다. 때문에 가미카제 특공대와 야스쿠니 신사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고이즈미 후보가 예상을 뒤엎고 승리한 것도 이 두 신화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지난 4월 자민당 총재 선거가 시작되자 누구나 최대 파벌 하시모토파의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가 압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시모토 전 총리는 또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유족들의 모임인 일본유족회 회장을 오랫동안 지냈기 때문에 11만 당원의 표를 갖고 있는 일본유족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리라고 예상되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일본유족회가 고이즈미 후보를 선택한 것이다.


일본유족회는 5년 전 당시 하시모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를 기피한 데 대해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다. 즉 그들은 하시모토가 총리가 되면 나카소네에 이어 8월15일에 공식 참배를 강행해 줄 것으로 크게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시모토는 8월15일을 피해 자신의 생일인 7월에 참배하는 것으로 8월15일 참배를 대체했다. 고이즈미 후보는 이런 틈새를 이용해 일본유족회에 손을 뻗쳐 공식 참배를 약속했다. 그러자 일본유족회가 예상을 뒤엎고 고이즈미 후보를 밀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끝까지 자신이 공언한 8월15일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를 관철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정작 여당 3당 간사장과 정치적 맹우인 가토 고이치 전 간사장 등의 건의를 받아들여 공식 참배를 이틀 앞당겨 8월13일에 결행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이틀을 앞당긴 것은 우선 국내 사정 때문이다. 그가 만약 8월15일 참배를 강행한다면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된다는 공명당의 입장을 무시하는 것이 되어 공명당이 연립 정권을 이탈할 위험성이 있었다. 또 왜곡 역사 교과서 문제에 이어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가 과격파들을 자극해 테러 활동이 급증할 가능성도 있었다.


고심하는 고이즈미 총리에게 일본유족회가 유족 대표인 고가 전 자민당 간사장을 통해 8월15일 참배를 고집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휴가 중인 지난 8월17일 하코노 호텔에서 고이즈미 총리 자신이 밝힌 것처럼 최대 정치적 공약이나 마찬가지인 '구조 개혁'이 물 건너갈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에 참배일을 변경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가토 전 간사장과 야마사키 현 간사장은 한국·중국과의 외교 마찰이 심해지면 국내 구조 개혁에도 큰 영향을 받게 된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한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도 한국·중국과 외교 마찰이 심해지면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차질이 생긴다는 점을 외무성을 통해 전달했다고 한다.


강경 우파 "말 바꾸는 총리 못 믿겠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일을 변경한 것으로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우선 한국과 중국 정부의 반발을 무마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참배 후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순서를 따지자면 지난해 김대중 대통령이 방일했으니 올해에는 일본 총리가 방한할 차례이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단독 방한보다는 10월에 열릴 에이펙(APEC) 총회 때 김대중 대통령과 장쩌민 주석을 만나 연쇄 정상회담을 여는 것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과 중국 정부는 고이즈미 정권에 대한 보복책으로 에이펙 총회 때 단독 정상 회담에 응하지 않는 것을 신중히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이즈미가 총리 취임 직후 미국과 유럽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했으면서도 한국·중국에 대해서는 일련의 외교 마찰에 대해서 전화 한 통 없다는 불쾌감도 섞여 있다.


일본 국내에서도 한번 공약한 참배 날짜를 번복한 대가는 의외로 크다. 우선 그를 지지해 온 자민당 우파가 말을 바꾸는 총리를 누가 따르겠느냐며 큰 실망감을 보이고 있다. 개중에는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보복으로 구조 개혁 반대 세력에 가담하겠다고 선언한 의원도 있다. 저항 세력의 반발로 구조 개혁에 실패할 경우 신당을 함께 만들 것이라는 설이 있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도 고이즈미 총리를 매도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번 공약한 것을 지키는 것이 정치인의 도리이다. 총리대신이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린다면 누가 존경하겠느냐"라며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큰 실망감을 표명했다.


일부 정치학자는 고이즈미 총리를 '포퓰리스트 정치인'이라고 평한다. 당내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그가 80%를 넘는 여론 지지율만을 바탕으로 구조 개혁을 추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역시 구조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은 모두 저항 세력이라며 여론을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공약을 번복한 것처럼, 점차 그의 허상이 벗겨지면 최대 지지 기반인 여론 지지율이 엄청난 속도로 추락할 위험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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