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판 씨받이 '알바 대리모'
  • 토론토·김영신(자유기고가) ()
  • 승인 2001.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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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비용 고 혜택'으로 미국 불임 부부들에게 큰 인기
미국인에게 캐나다인 '대리모'가 인기를 끌고 있다. 캐나다의 선진 의료 시스템이 미국 불임 부부의 입맛에 꼭 맞기 때문이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캐나다 대리모를 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월경(越境) 쇼핑'이 유행하고 있다.


대부분 캐나다 후보자들이 인터넷에 직접 광고를 내 스스로 중개자 역할까지 맡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인터넷이 미치는 범위만큼이나 시장도 넓다. 뉴욕·미시간 등 접경 지역은 물론 앨라배마·텍사스·캘리포니아 등 미국 전역의 불임 부부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서로맘스온라인닷컴'(surromomsonline.com)이라는 인기 인터넷 사이트에 실린 열아홉 살 난 캐나다 사스카체완 주 출신 대리모 후보자의 광고는 틀림없이 미국의 불임 부부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칠 것이다. '로지'라고만 이름을 밝힌 이 후보자는 한 아이의 엄마인데, 1만8천 캐나다 달러를 대가로 요구하면서, 값은 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만일 제왕절개 수술이 필요할 경우 3천 달러, 쌍둥이라면 천 달러를 더 내야 한다고도 적었다. 임신 기간에 유기농 식품을 먹기를 원한다면 매달 2백 달러를 더 내라고 한다. "나는 당신들이 내게 원하는 대로 할 겁니다." "나는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지 않고, 마약도 안 해요. 심지어 커피도 안 마신답니다." 그녀의 광고 문구 중 일부다.


온타리오 주 빔스빌의 파멜라 힐맨이라는 여성은 지난 8월 처음으로 인터넷에 대리모를 자청하는 광고를 올렸다. 네 아이의 엄마이며 서른여섯 살인 그녀는 불임 부부들을 동정하면서도 실속은 따졌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괜히 빙빙 돌려 이야기할 생각은 없어요. 문제는 돈이죠. 이건 내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고, 우리 아이들을 떠날 필요도 없지요. 그리고 내가 아주 잘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캐나다 달러가 미국 달러보다 싼 것이 캐나다 대리모 사업이 번창하는 원인이라고 질 스미스는 말한다. 온타리오 주에 살고 있는 그녀는 세 자녀의 어머니인데, 역시 지난 8월 대리모로 나섰다. "저쪽(미국) 대리모가 2만 달러를 요구하는 것과, 여기(캐나다) 대리모가 2만 달러를 요구하는 건 아주 다르죠. 거기다 미국 쪽은 의료보험 비용이 더 들고요. 그러니 이 편이 훨씬 싼 거죠." 9월5일 현재 미화 1 달러는 1.56 캐나다 달러이다.


현재 미국인 대리모의 '시세'는 미화로 1만5천∼2만 달러를 호가한다. 여기에 상담 비용, 변호사 비용, 산부인과 비용, 임신 중의 의료비, 실직 급여, 근로비 및 출산비가 추가되면 미국인 부부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통상 3만7천∼5만5천 달러로 치솟는다.


캐나다는 대리 임신부를 구하는 이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미국 메릴랜드 주 실버스프링의 유력한 입양 변호사인 제임스 슈라이브맨은 말한다. 그 이유는, 후보자가 많고 의료 서비스 수준이 미국만큼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기를 데리고 국경을 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비 부모 중 한 사람의 이름을 대고 출생증명서만 제출하면 된다.


캐나다 정부, 대리모 금지 법안 곧 제정




캐나다 연방정부는 이러한 대리모 사업의 이상 열기와 그 부작용을 인식해 빠르면 내년에 이를 막는 법을 시행할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돈을 매개로 한 대리 임신 광고와 대리 임신으로 이득을 취하는 일이 금지된다. 위반하면 최고 10년형이나 최대 50만 달러 벌금형을 내릴 예정이다.


새로운 법이 시행되면 캐나다는 상업적인 대리 임신을 불허하고 여성들로 하여금 오직 '적당한 비용'만을 보상받도록 허가할 것이다. 그러나 토론토의 불임 전문가인 클리프 리브랙은 이 법안에 대해 대리모 비즈니스 관행을 암거래화하도록 부추길 것이라고 그 효과에 의문을 나타냈다.


1993년 캐나다 복제기술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패트리셔 베어드 박사(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의료윤리학 및 유전학 교수)는 여성들로 하여금 대리 임신으로부터 이득을 얻도록 허용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또 하나의 착취가 될 뿐이라고 믿고 있다. 실제 자료를 살펴보면,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이나 부유한 여성이 이 일을 하는 사례는 아주 드물다고 그녀는 말한다. 미국인들이 캐나다인 대리모를 씀으로써 이미 한계에 도달한 캐나다의 세금보조 의료보호체제를 거덜내고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대리 임신 계약 자체를 위반하거나 파기할 경우 발생할 문제들도 무시할 수 없다. 이혼하게 되었다며 대리모에게 낙태를 요구한 미국 부부들의 사례가 보고되었기 때문이다. 미시간 주의 한 남성은 태어날 아기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이 밝혀지자 자기는 병약한 아기를 '주문'하지 않았다며 아기 출산에 동의하지 않은 것은 물론 아기에게 생명 유지 장치를 달기를 거부하기도 했다(악명 높은 멜러호프 사건).


대리 임신 합의 전문가인 미국의 한 변호사는, 사람들이 제대로 약속을 지키면 일은 원활하게 진행되지만, 인터넷을 통해 가격을 턱없이 싸게 부르거나 국외 서비스를 이용하다가 뜻하지 않은 문제에 부닥치게 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맥길 의료윤리법률센터 설립 책임자였던 마거릿 소머빌은 "대리 임신이란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 상업화를 막아야 한다고 보지만, 또한 그 일이 개인 대 개인 사이에서 이뤄지고 돈이 개입되지 않는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캐나다의 야당인 캐나디언 얼라이언스 소속 키스 마틴 의원은 지난 8월27일 만일 한 여성이 자신의 자궁을 대가를 받고 빌려주기를 원한다면, 정부는 그녀의 결정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대리 임신의 대가도 계약에 의해 얼마든지 높게 부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질 스미스라는 여성은 자신이 대리모 후보로 나서게 된 주요 동기가 동정심에서이지 돈 때문은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아주 인정이 많은 사람이에요. 나는 텔레비전에 방영되는 입양 프로그램을 보면서 울곤 해요. 나 스스로가 애를 가질 수 없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나 캘거리 대학 생명윤리학 교수인 법학박사 줄리엣 기천이, 캐나다 전국지인 〈글로브 앤 메일〉에 기고한 '영아 매매 행위를 중단하라'는 제목의 글에서 보듯, 문제는 단순히 대리 임신이 개인적인 일이냐 아니냐, 혹은 상업적이냐 아니냐라는 수준을 넘어서는 듯하다.


대리모와 의뢰자인 불임 부부만이 아니라, 그를 통해 태어난 아기, 대리모의 가족 모두가 돈을 받고 아이를 만들어 거래하면 신체적·정신적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대리모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엄마가 갓 태어난 아기를 보내는 것을 보면서 공포와 충격을 느끼기도 한다. 다른 남자의 정자를 받아 임신한 뒤 남편과 성적 관계를 영영 회복하지 못한 대리모의 사례도 있다. 또한 대부분의 대리모 후보들은 임신촉진제를 복용한다. 그 약이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무어니 무어니 해도 대리 임신을 계약화하는 일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로 인해 사람들이 아기를 하나의 상품으로 간주하게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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