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피로 천지개벽"…북한에 몰아친 '인사태풍'
  • 남문희 기자 (bulgot@e-sisa.co.kr)
  • 승인 2001.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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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쇄신 단행, 30 · 40대 전진 배치…'후계 구도' 조용히 준비
김봉익. 1932년 평양 출생. 69세. 1990년대 중반 대북 사업을 한 사람 중 그를 모르면 '간첩'이다. 그가 총사장으로 있던 삼천리총회사는 대북 사업자들이 거쳐야 할 관문이었다. 1994년 12월부터 이 회사 총사장으로 근무한 그는 삼천리총회사가 광명성총회사로 명패를 바꾸자 또 총사장을 맡았다. 삼천리와 광명성은 현재 대북 창구인 민경련의 전신이다.




그 뒤로도 그는 매우 잘 나갔다. 1998년 4월 대외경제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쳐 무역성 부상에까지 올랐다. 그러던 그가 '사건'을 일으켰다. 지난 8월 난데없이 베이징 북한대사관에 엉뚱한 명함을 들고 등장한 것이다. 공식 직함은 무역참사. 참사는 우리의 영사에 해당한다. 무역성 2인자가 일개 공관의 영사로 오다니. 더군다나 같은 대사관 최진수 대사는 60세로 한참 후배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김봉익의 사례는 그 두 달 후 평양에서 벌어진 일들의 예고편이었다. 지난 10월 한 달 평양은 남쪽으로 통하는 문을 모두 걸어 잠갔다. 10월12일 조평통 성명을 신호탄으로 하여 이산가족 상봉을 연기했고, 6차 장관급회담을 포함한 남측과의 모든 회담을 평양 바깥, 즉 금강산에서 열자고 주장했다. 남측의 정보 통신 사업자나 대북 사업자의 방문도 모두 연기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정일 위원장이 한 달 반 동안 두문불출하다시피 하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평양에 있었다는 재미 사업가가 '쿠데타 징후를 느꼈다'고 한 말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같은 시점 베이징에서 감지된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평양에 이상 징후가 발생했다면 제일 먼저 봉쇄되는 것이 평양-베이징 노선이다. 봉쇄는커녕 오히려 사람들이 과거보다 더 많이 평양에서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바로 인사다. 이미 일부 관측통이 지적했듯이, 평양에 '인사 태풍'이 불어닥쳤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회담을 평양에서 하기도, 기업인들이 평양을 방문하기도 어려웠다는 얘기다. 사실 북한의 변화를 얘기할 때 인사 개편은 단골 메뉴이다. 경제 정책과 대외 정책을 바꾸려면 당연히 사람을 바꾸어야 한다.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는 얘기인데, 지난 10월의 인사는 그 종합판에 해당한다고 하니 귀를 기울여 볼 만하다.


김정일 위원장이 자기 색깔에 맞게 대외 일꾼을 바꾼 사례로 흔히 거론되는 것이 바로 앞의 최진수 대사다. 지난해 12월 초 '장기 집권'해 온 주창준 대사 후임으로 그가 전격 등장하자 북한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중국 정책이 변화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최대사를 발탁하기 전인 지난해 5월 김정일 위원장이 베이징을 방문했다. 그리고 중국 정보 통신의 메카인 중관촌을 찾았다. 김위원장 귀국 후 평양에 정보 통신(IT) 붐이 일기 시작했다. 또한 신의주·남포·함흥·평양을 중심으로 한 지역 특화 개발 전략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면 모델이 필요했다. 그래서 올해 1월 김위원장이 다시 상하이를 방문했고 '천지개벽'을 선언했다. 사실 이때부터 인사 혁신 얘기가 나왔었다. 과학 기술로 무장한 신진 엘리트가 전면에 등장하는 사건이 예고되었던 것이다.


경제·대외 분야, 새 인물 포진




북한 소식통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10월 인사가 바로 이 흐름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연령으로는 30·40대가 전진 배치되었다. 특히 경제 분야와 대외 사업 분야에서 새로운 인물이 많이 등장했다. 당 쪽에도 신진 세력이 많이 들어갔다. 경제 분야에서는 특히 지난 2년 간의 흐름을 반영해 정보 통신 및 과학 기술 전문가, 그리고 외국어 우수자가 중용되었다. 다른 분야에도 그동안 집중 육성했던 인재들을 전진 배치했다.


부서별 서류 심사가 지난 9월 말에 끝났고, 10월부터는 해당 부서에 대한 배치 심사와 조직 배치까지 거의 마친 상태라고 한다. 현재는 분야 별로 2∼6 개월 간 교육에 들어갔다.


김위원장이 두문불출한 시점이 바로 이 기간이다. 대외적으로는 그렇지만 그는 이 기간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번 인사를 진두 지휘하고, 발탁된 인물들을 일일이 접견하며 사명감을 불어넣었다고 한다. 그러니 평양 바깥을 출입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번 인사에 그만큼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다는 얘기다.


이쯤 해서 앞의 '김봉익 사례'로 돌아가 보자. 30·40대가 대거 발탁된 이번 인사에서 70에 가까운 그가 밀린 것일까. 겉으로는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노장층에게도 그에 걸맞는 역할을 부여한 것이 이번 인사의 특징이라고 한다.


북한은 인재를 중시하는 사회다. 그러나 새로운 변화에 걸맞는 인재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신진 인사 등용과 함께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 여기에 바로 노장파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지위나 역할에 연연하지 말고 국가에 봉사하라는 엄명이 떨어졌다고 한다. 김봉익이 대표적인 예인데, 그는 주로 대사관 안에서 새로이 등장한 무역 일꾼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담당한다고 한다.


북한 소식통은 이런 얘기를 전하면서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되지만 바로 이 점에 북한 체제의 저력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금수산기념궁전 외사국장을 지낸 70대 전희정이 지난 10월 이집트 대사로 전격 발령받은 것이나, 소장파인 리철광이 11월 초 우즈베키스탄 대사로 발령된 것도 노·장을 병용한 인사 사례로 들었다.


10월의 인사 태풍이 앞으로 남북 관계와 북한의 대내외 일정에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우선 남북 관계는 아태평화위 시대가 가고 새로운 인물과 조직이 맡는 시대가 올 것 같다. 김용순 비서로 상징되는 아태평화위는 업적을 많이 쌓았다. 그러나 아태위를 상대로 한 남북 대화는 실리보다는 '패션쇼'에 치우친 느낌이 있다. 금강산 육로 관광·개성공단·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등 당국간 현안 하나하나가 북측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인데도 분위기 유지 차원에서 대충대충 끌고 왔다는 얘기다.


북한도 아태위를 중심으로 한 대화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인물에 의한 새로운 창구를 모색 중이다. 신진 엘리트들의 성향으로 볼 때 그들은 실사구시적인 접근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정부가 '중후장대형' 프로젝트를 당장 포기하기는 어렵겠지만 한편으로 보면 또 다른 기회이기도 하다.


김정일 환갑에 후계자 전면 등장?


10월 인사는 바로 내년 초의 '60·90 행사'와 직결되어 있다. 김정일 위원장 60세 환갑과 김일성 주석 90세 생일을 의미하는 60·90 행사를 기점으로 북한은 환골탈태를 준비해 왔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기 위해 지금 대대적인 인사 쇄신을 단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이 있다. 이면에서 김위원장의 후계 문제가 조용히 준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인사에서 후계자를 중심으로 한 혁명 3세대가 대거 전진 배치되었다는 것이 그 중요한 징후다. 내년 60세 환갑을 기점으로 베일에 가려 있는 후계자가 전면 등장할 수도 있다. 김정일 위원장과 후계자의 동반 시대. 이는 현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차기 정권 역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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