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제6차 남북 장관급회담 결렬 내막
  • 남문희 기자 (bulgot@e-sisa.co.kr)
  • 승인 2001.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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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속셈 잘못 짚었다/
남측은 처음부터 '비관적'…북측은 '대화 의지 시험'
참 이상한 회담이었다. 핵심 현안도 아닌 지엽적인 문제로 장장 1주일이나 서로 밀고 당기다가 끝내고 말았다. 지난 11월9일부터 14일까지 금강산에서 진행된 제6차 남북 장관급회담.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남측의 비상경계조처 등 정세는 물론 좋지 않았다.


그러나 남북 양측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번 회담은 마지막 한 가지 문제만 남겨둔 상태였다. 즉 가장 중요한 현안이던 이산가족 상봉을 12월에 금강산에서 하기로 했고, 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2차 당국자회담, 그리고 경제협력추진위원회 2차 회담의 시기와 장소 문제에까지도 접근이 이루어졌다.




마지막 남은 문제가 바로 7차 장관급회담의 시기 문제. 처음에는 장소 문제도 논란이 되었으나 서울에서 하는 것으로 북측이 양보했으니 시기 문제만 남은 셈이었다. 남측은 시기를 최소한 월 단위라도 못박자고 했고 북측은 '편리한 시기'로 하자고 했다. 이것만 절충하면 되었는데 거기서 깨져버렸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이회담이 깨지면 후유증이 심각할 것이라는 점을 남북 모두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지난 10월12일 북한 조평통이 이산가족 상봉을 갑자기 연기한 이래 근 한 달이나 밀고당기기를 겪고서야 어렵사리 마련한 회담자리였다. 더구나 회담이 결렬된 모양새가 무척이나 좋지 못하다. 북측 주장에 따르면, 실무적인 조율이 거의 끝난 상태에서 남측 수석대표인 홍순영 통일부장관이 '이상한 트집'을 잡아 깼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와는 앞으로 상종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다시 시작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7차 장관급회담 시기를 못박는 문제에 왜 그렇게 양측이 집착했을까.


회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통일부 고위 당국자에 따르면,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바로 남측의 비상경계태세에 대한 논란이 계속 화근으로 작용했다.


미국 뉴욕 테러 사건 직후 정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비상경계태세를 취했고, 주한미군 역시 공군기를 증강 배치했다. 당시 정부가 북한이 테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이런 조처를 취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북측 처지에서는 불쾌했을 것이다. 이번 회담 벽두에 북측은 이 문제를 물고늘어졌다. 처음에는 비상경계조처 해제와 사죄를 요구했고, 그 다음에는 사과로 요구 수준을 낮추었다. 결국 '우리(남측)의 경계 조처에 의해 북이 우려하고, 그로 인해 긴장 상태가 생겨 유감'이라는 표현으로 서로 절충했다.




이 선에서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북측이 이 문제에서 양보했으니 남측도 회담 장소 문제에서 양보하라고 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처음에는 경협추위와 7차 장관급회담 모두를 금강산에서 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남측은 이를 수용할 경우 '서울은 비상경계조처로 인해 불안한 곳'이라는 북한 군부의 논리를 인정하는 꼴이 된다고 우려했다.


양측은 절충을 통해 경협추위는 금강산에서 열되, 7차 장관급회담은 서울에서 하는 것으로 의견을 좁혔으나 남측 대표단은 여전히 꺼림칙했다. 남측은 북측이 장관급회담 시기를 못박지 않는 것은 결국 안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의심했다. 그렇게 되면 다른 모든 회담은 북측 안대로 금강산에서 하고 남측은 빈손이 될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협상 대표들은 북측의 진의를 믿는다 해도 '거대 야당'이 트집 잡고 나올 것이 뻔해 보였다.


결국 협상 대표들이 지나칠 정도로 운신할 폭이 좁았다는 것이 근본 원인이었다. 남측은 거대 야당과 보수 세력, 그리고 북측 역시 내부의 강경 여론에 의해 포위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 발짝 더 들어가 보면 양측이 스스로 손발을 묶어 버린 측면 또한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우리측 협상대표단은 이번 회담에 앞서 지나칠 정도로 비관적 전망을 가졌던 것 같다. 여기에는 최근 일부 방북자들의 무분별한 발언이 영향을 미쳤다. 즉 금강산 관광 대금 문제로 북한 군부가 화가 나 남북 대화 전망이 어둡다고 떠들어댄 것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번 회담에 거의 기대하지 않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 군부의 분노로 대화파의 입지가 축소되어서 대화가 어렵다는 얘기는 피상적 인식에 지나지 않는다. 군부의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나 뉘앙스의 차이가 매우 크다. 비상경계조처를 예로 들자면, 북측이 말로는 해제와 사죄를 요구했으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달랐다는 것이다. 뉴욕 테러 사건으로 남쪽이 지나치게 미국 쪽에 기우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고 한다. 취재 기자들 역시 남측 수석대표인 홍장관이 지나치게 원론적으로 대응했다고 지적한다. '초짜'인 홍장관이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같아 북측 대표들이 답답해 하더라는 것이다.

 


북측의 의도는 금강산 관광 활성화

 


북측이 협상 장소로 금강산을 고집한 것도 나름으로 이유가 있다. 북측의 의도는 금강산 관광 활성화에 있었다는 얘기다. 북한 내에서 금강산 문제가 불거지자 김정일 위원장이 "그 문제는 (해로를 통한) 금강산 관광을 활성화해서 풀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국간 회담부터 금강산에서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남측 주장대로 육로 관광을 북측이 수용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남측이 관광 대금을 당장 내놓기가 어려우니 해로 관광이라도 활성화하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메시지인 것이다.


북한이 금강산 문제 해결을 물고늘어진 데는 또 다른 맥락이 있다. 관광 대금 미수금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정권 말기인 남측이 북쪽과 대화를 계속할 의지와 역량이 있는지 시험해 보자는 것이 주목적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7차 장관급회담 시기 문제. 북한은 이미 김정일 위원장 환갑이 되는 내년 2월16일에서 김일성 주석 90회 생일인 4월15일 사이(이른바 60·90 행사)를 남북 관계의 정점기로 설정해 둔 상태다. 따라서 7차 장관급회담 시기를 2·16과 4·15 사이인 내년 3월께로 내심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속사정 때문에 시기를 확정하자는 우리측 주장을 받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시지탄이지만 방법은 있다. 홍순영 장관이 결자해지 자세로 풀면 된다. 홍장관은 뚝심 있고 자존심이 강한 인물로 알려졌다. 이번에 회담장을 박차고 나온 기백으로 야당을 설득해, 금강산 관광 미지급금(2천4백만 달러)을 북측에 주면 된다. 어차피 주어야 할 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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