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과도 정부, 갈가리 찢기나
  • 모스크바·정다원 통신원 (dwj@e-sisa.co.kr)
  • 승인 2001.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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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서 소외된 군벌들 협조 거부해 '살얼음판'
10월27일부터 10일 동안 독일 본에서 열린 4개 정파 협상에서 아프가니스탄 과도 정부는 실리를 챙기고, 서방은 외교적 승리를 거두었다. 아프가니스탄 과도 정부는 서방으로부터 막대한 재건 원조 약속을 받아 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아프가니스탄에 진입할 수 있는 외교 기반을 마련했다.




4개 정파 회담 결과, 과도 정부 수뇌부가 결정되었다. 소장파 엘리트들이 약진했다. 파힘 국방장관·압둘 외무장관·카누니 내무장관 등 연합전선(전 북부동맹) 타지크계가 요직을 독점했고, 푸슈툰계 카르자이가 과도 정부 수반이 되었다. 자히르 전 국왕은 '로야 지르가' 종족·정파 회의를 주재하는 권한을 맡았다. 결국 연합전선 실무진과 야전 사령관 출신 군벌들이 아프가니스탄 과도 정부를 이끌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과도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불협화음을 내 연합전선은 다시 쪼개질 판국이다. 과도정부 구성은 연합전선과 자히르 전 국왕 측근들이 주도했다. 그 결과 권력이 이들에게 집중되었고, 우즈벡계 라시드 도스툼 장군과 하자라계 카림 칼리니 장군은 소외되었다. 반 탈레반 연합전선에 적극 참여했던 이들의 불만이 과도 정부를 위협하고 있다. 도스툼 장군은 카누니가 외무장관 직을 주겠다고 한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하면서, 카르자이 과도 정부에 협력하기를 거부했다. 내무장관 직을 기대했던 하자라계 카림 칼리니와 그를 지원했던 이란의 불만도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12월6일 물라 오마르가 항복한 이후 권력 다툼은 격화하고 있다.


랍바니 전 대통령도 정국의 변수이다. 그는 과도 정부 수반을 고집했다가 독일 외무장관 히쉐르의 설득으로 양보했다. 푸슈툰족측은 랍바니가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점을 비난했다. 아프가니스탄 야전 사령관들도 러시아와 무자헤딘과의 공조를 의심해 왔다. 본 회담 전날 랍바니는 아랍에미리트(UAE)를 전격 방문해 '로야 지르가'가 과도 정부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협조를 구했다. 아랍에미리트 국방장관 세이흐 모하마드 빈 라시드 알 막토움은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돕고, 경제·군사적 원조를 하겠다고 신정부에 약속했다.


익명의 정보통들은 랍바니가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했을 때 파키스탄 고위급 관리와 접촉했다고 전했다. 랍바니는 과거 정부에서 근무했던 탈레반 인재들을 포함할 것을 제안하며, 파키스탄에 자신의 정부를 인정해 달라고 공식으로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독일 본 회담에 푸슈툰족 대표로 참여했다가 협상에 불만을 품고 퇴장한 하지 압둘 카디르도 골칫거리이다. 그는 수도권 인근 낭가하르 주변을 장악한 지역 군벌이다.


카르자이에 대한 연합전선의 감정은 이중적이다. 연합전선은 카르자이가 랍바니 정부에서 외무부 차관을 지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미국의 강력한 지원을 받으며 다수 종족인 푸슈툰족과 탈레반을 등에 업고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를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카르자이는 1980년대 중반 미국 시카고·샌프란시스코·보스턴·볼티모어 등지에서 아프가니스탄 음식 체인점을 경영했던 전형적인 친미파 인사이다. 특히 카르자이가 탈레반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사실은 연합전선에 커다란 짐이 되었다.


탈레반은 칸다하르를 포기하고 항복했다. 연합전선과의 협상에서 만족하지 못한 오마르는 그를 포함한 탈레반 전원을 사면한다는 조건으로 과도 정부 수반 카르자이에게 항복했다. 오마르는 양다리 협상을 진행했던 것이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칸다하르를 사수하겠다던 입장을 번복하고 급선회한 것이다. 오마르의 의도는 무엇일까.


오마르와 카르자이의 비밀 협상을 둘러싼 의문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카르자이가 워싱턴은 물론 연합전선과 아무런 상의도 하지 않고 오마르가 제시한 사면 조건을 수락했다는 점이다. 12월6일 백악관은 '오마르와 어떤 거래도 있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오마르에 대한 사면 결정은 앞으로 미국과 과도 정부에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다. 오마르에게 복수를 꿈꾸어온 연합전선은 오마르와 카르자이의 협상이 음모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오마르가 칸다하르 통제권과 무기를 카르자이가 아닌 물라 나키불라에게 양도하겠다고 한 점이다. 셋째, 카르자이가 오마르의 신병 확보를 유보했다는 점이다. 현재 그의 소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넷째, 전투 중 부상한 카르자이가 치료를 받기 위해 카불에 가는 것을 거부하는 이유도 불분명하다. 이외에 칸다하르 통제권을 인수한 물라 나키불라와 오마르의 관계도 아리송하다.


"오사마, 용병들과 밀라바 동굴 요새로 이동"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오마르의 항복 협상은 고도의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 항복하기 전 알 카에다 조직과 대부분의 탈레반 병사들은 칸다하르를 떠난 상태였다. 인근 마을 주민들은 "최근 오마르는 칸다하르에 있던 탈레반 주력 부대를 오사마 빈 라덴 수색 작전이 벌어지고 있는 잘랄라바드, 파키스탄 국경 쪽으로 이동시켰다"라고 전한다. 또한 소식통들은 오마르가 카불을 연합전선에 넘겨준 직후, 오사마와 합류해 앞으로의 작전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토라보라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반 탈레반군과 미군 특수부대는 오사마 호위병들의 시체만 건졌을 뿐 오사마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테러 용의자 1호' 오사마는 오마르가 항복 협상을 진행하는 틈을 이용해 아랍 용병 수천 명과 함께 토라보라에서 파키스탄 국경에 근접한 '밀라바' 동굴 요새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오사마가 파키스탄으로 잠입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다면 물라 오마르의 전략은 무엇일까. 소득 없는 동족간 전쟁을 휴전 상황으로 전환하고, 게릴라전을 전개할 시간적 여유를 가지려는 것이다. 이미 반 탈레반 전선은 휴전을 선언했고, 탈레반과 알 카에다는 게릴라 근거지로 잠입했다. 또한 카르자이와 미국, 카르자이와 연합전선 간의 갈등을 유발해 틈새를 노리려는 것이다. 오마르 사면 문제는 미국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다. 이는 미국의 반 테러 전쟁 전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오마르의 전략은 활로를 개척해 기회를 노림과 동시에 미국의 세계 전략에 쐐기를 박자는 것이다. 이는 워싱턴의 확전 명분을 희석하려는 단수 높은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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