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는 지금 "왕이로소이다"
  • 워싱턴·변창섭 편집위원 (cspyon@e-sisa.co.kr)
  • 승인 2001.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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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무시하고 일방 독주... 백악관에는 '예스맨' 뿐
최근 미국 상원 법사위원회에서 민주당 소속 패트릭 레이 위원장과 존 애시크로프트 법무장관이 주고받은 날카로운 설전 한토막.



레이:미국적 정치 시스템에서 어느 누구도 권력을 독점하지 못한다. 작금의 반 테러 전쟁이 우리 모두가 동참하는 방식으로 행해질 때 국민들은 더 큰 신뢰감을 갖게 될 것이다.


애시크로프트:건국의 아버지들은 의회 상임위원회를 통해 전쟁을 치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헌법은 전시에 대통령에게 특명 전권을 부여하고 있다.

설전이 벌어졌던 법사위는 지난 9월 테러와의 전쟁에 돌입한 이후 행정부가 의회와 긴밀한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일련의 인권 침해 조처를 따지기 위한 자리였다. 청문회에 불려나와 호된 꾸지람을 들은 사람은 애시크로프트 장관이었지만, 레이 위원장의 진짜 표적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 사태 후 두번이나 ‘국가 비상 조처’를 취하면서 의회와 협의 절차를 생략했다. 특히 테러 용의자들을 특별 군사 법정을 통해 단죄한다는 ‘군사 법정’ 설치령 선포를 계기로 부시는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비난까지 듣게 되었다.


미국처럼 행정부·입법부·사법부 간에 3권 분립이 고도로 발달한 나라에서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도는 것은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다. 19세기까지도 대통령의 주업무는 의회가 만든 법률을 충실히 집행하는 일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대외적으로 세력 팽창을 꾀하던 20세기 초부터 대통령의 권한은 대폭 강화되었다. 특히 전시 상황에서 대통령은 헌법이 보장한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의회의 견제를 피해 갔다.


그 비장의 무기가 바로 국가 비상 조처 선포권이다. 이를테면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당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미국 상선을 외국인들에게 팔지 못하도록 한 국가 비상 조처를 발표했다. 그러나 윌슨의 조처는 바로 전 해에 의회가 통과시킨 ‘해운령’에 근거한 것이어서 독단적 조처는 아니었다.



대통령 연구자들은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내보인 최초의 대통령으로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꼽는다. 그는 1933∼1945년 재임하는 동안 세번에 걸쳐 국가 비상 사태를 선포했다. 그는 1929년 대공황을 국가 재난이라고 선포한 뒤 이를 사실상 ‘전쟁 상태’로 간주하겠다고 선언하고, 경제난 극복을 위해 의회가 협조하지 않을 경우 의회 권한에 맞먹는 권한을 추구하겠다고 경고했다. 의회가 굴복한 것은 물론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위세는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그렇다면 요즘 부시 대통령에게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것은 무슨 까닭일까. 현재 비판자들이 지적하는 대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 하나는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의회와 긴밀한 협의 없이 반테러 법안 또는 행정명령을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지적은 부시 시대의 백악관에서는 어떤 이견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선 부시 대통령이 의회와의 관계에서 보여준 ‘제왕적 태도’부터 살펴보자. 가장 단적인 사례는 역시 테러 용의자들을 처단하기 위한 군사 법정 설치령이다. 부시 대통령은 최근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권한이 필요하다면서 일방적으로 군사 법정 설치령을 선포했다. 또 의회와 충돌을 피하기 위해 부시는 국군 통수권자 자격으로 이를 군령 형식으로 발표했다. 군사 법정의 대상은 전세계인은 물론 미국내 비시민권자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 그만큼 광범위하고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다.


공화당 의원도 ‘제왕적 대통령’에 반발



부시 대통령은 군사 법정 설치령을 발표하기 앞서 ‘미국 애국령’이라는 법안에도 서명해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법의 골자는 테러 용의자를 색출하기 위해 외국인 불심검문권을 강화하고 변호사와 테러 피고인의 대화를 수사당국이 합법적으로 감청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의회는 인권 침해를 우려해 강력히 따질 기세였으나 그럴 경우 테러와의 전쟁에 역행한다는 인상을 줄까 봐 거의 원안 그대로 통과시켰다.


그뿐인가. 부시는 최근 애시크로프트 장관에게 메모를 보내 전임 행정부의 선거자금 남용 사건에 대한 기록을 넘겨달라는 의회의 요청을 거부하도록 명령했다. 부시는 이 메모에서 ‘이런 자료를 의회에 공개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 특권으로 자료 공개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런 부시의 처사에 대해 공화·민주 가릴 것 없이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공화당 댄 버튼 의원은 “이 나라는 군주제가 아니다. 입법부는 행정부의 부패를 감시할 권한이 있다”라며 반발했고, 민주당 헨리 왁스먼 의원은 “제왕적 대통령이든 제왕적 법무부든 이 나라 민주 원칙과는 상충된다”라며 부시의 독단적 처사를 거세게 비판했다.


부시의 제왕적 대통령 이미지는 백악관 내부를 들여다보면 더욱 또렷해진다. 요즘 백악관 분위기는 한마디로 참모진 거개가 테러와의 전쟁으로 눈코 뜰 새가 없는 부시의 눈치를 살피느라 바쁘다. 최근 <뉴욕 타임스>는 테러 사태 이후 백악관에서 활발한 정책 토의를 찾아볼 수 없으며, 모두가 대통령에 대한 일편단심으로 똘똘 뭉친 ‘충성파’로 변해 있다고 개탄했다. 충성파의 선두 주자는 칼 로브 백악관 고문·카렌 휴즈 백악관 공보실장·앤드루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 3인이다. 과거 같으면 여론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백악관 고위 참모들이 언론에 주요 정책 내용을 흘리는 일이 종종 있었으나 지금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는 지적이다. 언론에 흘린 내용이 대통령에게 누가 될 경우 곧 ‘불경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사실 백악관 참모 대다수는 과거 부시 집안과 이런저런 인연으로 맺어진 충성파이다. 자연히 그의 주변에는 이른바 ‘예스맨’이 그득하다. 또 그에게 100% 충성심을 보이지 않고는 배겨나기도 힘들다. 최근 제임스 길모어 공화당 전당대회 의장이 부시 대통령과 삐걱대는 모습을 보이다 결국 중도 하차한 것이 단적인 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직후 장관 내정자를 두고 곧잘 ‘매우 충직하다’느니 또는 ‘신뢰할 수 있다’는 표현을 즐겨 썼다. 그가 임명한 고위직 모두를 충성심을 기준으로 뽑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대통령 사가들은 부시 대통령이 과거 오만과 독선에 빠지고 충성파 인사만 등용해 결과적으로 화를 자초한 전임자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1960년대 린든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 정책을 쉬쉬하는 대신 공개 토론을 통해 입안했던들 미국은 전쟁의 수렁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며, 또 1970년대 닉슨 대통령이 반대파를 모조리 백악관에서 내치지 않았던들 결국 자신의 사퇴를 몰고온 ‘워터게이트’ 수렁에 빠지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스탠퍼드 대학 대통령학 전문가 데이비드 케네디 교수는 “지금처럼 미증유의 반 테러 전쟁을 겪는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합리적인 의견을 되도록 많이 수용하는 게 급선무이다”라고 지적한다. 부시가 과연 이런 충고를 귀담아들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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