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은 중국, 잔치는 끝났다?
  • 베이징·주장환 통신원 (jjhlmc@e-sisa.co.kr)
  • 승인 2002.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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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가입 역풍·권력 투쟁 가열…‘격동의 2002년’ 예고
2002년 새해를 맞은 중국 정계가 조용하다. 2008년 올림픽 유치, 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 진출,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 지난해에 너무 큰 일들을 이루어낸 후, 그 뒤처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또 앞으로 10년간 중국을 좌지우지할 정계 개편을 마무리 짓고 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긴장감이 감돈다. 특히 세계무역기구 가입과 관련해서는 가입 초기의 낙관적인 전망이 퇴색하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태의 심각성’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문제가 대두하고 있고, 현재 어떤 식으로 그 해결책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것일까?



중국 정부가 가장 신경 쓰는 부문은 농업이다. 중국 13억 인구 중 8억이 농업에 종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무역기구 가입 후 가장 많이 양보한 것으로 평가되는 부문이 농업이다. 수입 개방의 여파로 국내의 곡물 가격이 하락할 경우 중서부의 전통적인 농업 지역에 거주하는 농민들이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쌀·밀·콩을 주로 재배하는 동북부 지방의 경우 생산 원가·가격 등에서 미국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금융·무역을 중심으로 하는 서비스 업종과 달리 고용 창출 효과도 거의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남동부를 제외한 각 성들은 현재 대책을 마련하느라 초비상 상태이다.


장쩌민과 리펑 ‘최후의 결전’ 불꽃


다음으로 타격이 크리라고 예상되는 분야는 금융산업이다. 중국 금융기관들은 국가의 정책적 비호 속에 비정상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 결과 중국 금융 분야는 비효율, 30∼40%에 이르는 부실 채권, 은행 자율 경영 제약, 자금 시장 유입 체계 미정비 등 숱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외국 은행이 진입하고 5년 후 그들에게 내국인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은 중국 정부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중국 정부는 취업난이 심각해 올해 도시에서만 최소 8백만명의 고용을 새로 창출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올해 중국 정부가 발표한 연간 신규 고용 창출 목표를 지난해보다 2백만명 높여 잡았지만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수천만명으로 예상되는 국유 기업 퇴출 실직자(샤강·下崗), 약 1억5천만명으로 추산되는 농촌 실업자 문제를 해결할 길이 막막하다. 이밖에 ‘중국 경제의 돈 먹는 스펀지’라며 주룽지(朱鎔基) 총리도 손을 들어버린 국유 기업에 대한 개혁과 동부와 서부 지역의 빈부 격차도 골칫거리이다.




올해는 그야말로 ‘정치 재편기’이다. 역사적으로 중국 지도부가 제3 세대에서 제4 세대로 교체되는 시기이다. 현재 베이징 정가에는 지난해 하반기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주도한 ‘반좌풍(反左風)’이 계속 불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 좌파의 수장 격인 리펑(李鵬)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현재 개혁파와 최후의 결전을 벌이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한다. 얼마 전 터진 두 가지 사건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하나는 지난해 말 중국 증시 전문지 <정취안스창저우칸>(證券市場週刊)이 리펑의 부인 주린(朱琳)과 아들 리샤오펑(李小鵬)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화넝궈지(華能國際) 그룹이 리펑의 힘을 빌려 미국·홍콩·중국 증시에 진입했다고 보도해, 이 잡지가 정간되고 담당 기자가 체포된 사건이다. 이로 인해 리펑 위원장이 정치적 타격을 입었는데 이는 중국에서는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 한 소식통은 이 전문지의 배후에 어떤 비호 세력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리펑 위원장이 최근 덩샤오핑(鄧小平)의 군부 내 최측근이었던 류화칭(劉華淸) 전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의 사위이며 당내 급진적 개혁파에 속하는 판위에(潘岳) 국무원 체제개혁판공실 주임을 집중 비판하고 나선 사건이다. 판위에 주임은 그동안 강력한 개혁을 주장하며 리펑 위원장 세력을 노골적으로 비난해 왔다. 이처럼 중국 정치권의 권력 투쟁은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경제 부문이 받을 충격에 대해 현재 중국 정부가 복안을 확정한 것은 아니나, 대략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줄기를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당장 받을 수 있는 충격에 따른 불만은, 외자 도입 확대와 무역 진작 등으로 경제 성장률을 최대한 7∼8%대로 유지하는 외형적 성장 정책으로 상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4∼5년 안에 농촌 지역에서 경제 작물 재배를 최대한 확대하고, 경제 특구 정책을 폐지해 지역별 균형 발전을 이루며, 국유 기업 개혁 등을 통해 본격적인 개방에 대비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역시 수년 간의 과정을 통해 국제 분업 질서 속에서 비교 우위에 있는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다른 산업 부문에서는 무리한 국산화 추진을 피하는 이른바 ‘개방형 대국 경제 체제’를 건설한다는 것 등이다. 실제로 중국 사회과학원 재정무역연구소 부소장 장샤오쥐안(江小涓) 교수는 “학계와 정계에서 한국 등 동아시아의 발전 모델을 재평가하는 중이다. 따라서 자동차산업 등에서 그동안 무리하게 실시되어 왔던 국산화 정책 등은 점차 폐기될 것이며, 개방 시대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중국형 경제 발전 및 체제 전략을 논의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최근 소식통들은 지난해 후반기부터 밀어붙여온 장쩌민 주석의 ‘반좌파’ 공세가 어느 정도 효과를 본 데다, 워낙 기성 좌파 정치 지도자들이 부패에 연루된 사실이 많이 포착되어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사회적 대규모 소요 등 돌출 변수가 없는 한 장쩌민 주석 계열과 후진타오(胡錦濤) 부주석의 궁칭퇀(共靑團) 세력이 분점하는 구도가 현실화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 예로 그간 지루하게 끌어오던 쩡칭훙(曾慶紅) 당 조직부장의 국가 부주석 취임에 대한 합의가 최근 최상층에서 이루어졌으며, 대신 리펑 위원장 심복인 뤄간(羅干) 당 정법위원회 서기의 정치국 상무위원회 진출이 사실상 좌절된 사실을 들 수 있다.


세계무역기구 가입 원년인 동시에 정치권이 제4 세대로 물갈이 되는 해인 2002년, 중국은 정치·경제적으로 갖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도전을 이겨내기 위해 중국 정국은 올 한 해도 숨가쁘게 흘러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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