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은 북한식 국제화 원년
  • 남문희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2.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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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별로 본 한반도 정세 일정표/
상번기는 북측에 행사 집중, 하반기 월드컵 등 변수
올해의 남북 관계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북·미 관계가 여전히 답보 상태이고, 남북 양측에 주요 행사가 겹쳐 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북한측 정치 행사가 줄줄이 잡혀 있다. 김정일 위원장 60회 생일(2·16), 김일성 주석 90회 생일(4·15), 인민군 창건 70주년(4·26), 그리고 그 사이에 아리랑 축제가 있다. 하반기에는 남쪽 행사가 많다. 5월 말부터 6월 말까지 월드컵, 그리고 지방자치 선거, 12월 대선 등이다.






남북 양쪽이 서로의 내부 행사에 골몰해야 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측 동향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이런 분석이 피상적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북한 지도부의 생각이 중요하다. 북한 지도부가 2002년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또 대남 관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2002년은 북한에 매우 중요한 해이다. 북한의 관영 매체들은 이미 ‘제2의 건국을 시작하는 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내부 용어로는 ‘김일성 민족 원년’이라고 하기도 한다. 즉 김일성 주석 90회 생일이 되는 올해는 북한식 표현으로 ‘주체 90년’이 되는 해이다. 이 주체 90년을 김일성 민족 원년으로 잡고 제2의 건국을 하자는 것이 북한 지도부의 발상법인 것이다.



북한 지도부는 김일성 민족 원년인 올해 북한의 목표를 ‘잘 먹고 잘 사는 해’로 정했다. 그것을 위해 모든 대외사업에서 ‘실리 보장’(우리 표현으로는 실사구시)을 추구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주체 100년’께가 되는 2010년이다. 이때 ‘조선 민족이 세계에 우뚝 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동안 몇몇 전문가들이 언급해온 ‘2010 시나리오’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2010년이 계획의 완성기라면 중간 분기점은2005년이다. 그리고 올해는 2005년이라는 중간 분기점을 향해 출발하는 해이다. 한마디로 ‘북한식 국제화’의 원년이다. 그만큼 올해는 남북 관계와 대외 관계에서 뭔가 ‘광폭하게’ 나아가겠다는 메시지인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 지도부는 자신들의 장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올해 남한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북측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올해 남북 관계를 월별로 짚어 보았다.



1월:올해의 대장정을 앞둔 탐색기이다. 남북 양측이 대화의 계기를 서로 모색하는 달이다. 지난해 말 6차 장관급 회담이 결렬되어 한동안 안 좋은 분위기가 이어졌으나 대세에 큰 지장은 없다. 남북 모두 올해에 무게 중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올해를 재도약의 신기원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4월의 아리랑 축제 등을 통해 경제적 성과와 정치 안정 그리고 국제적 위상 강화 등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대미·대일 관계가 답보 상태에 빠져 있어 남북 관계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남쪽 역시 마찬가지다. 대북 포용 정책의 결실을 보아야 할 뿐 아니라 주요 국제 행사를 평화적인 분위기에서 치르기 위해서도 그렇다. 남북 양측이 이런 공감대를 가지고 서로 탐색하는 것이 1월의 특징이다.



2월:당국간 회담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2월을 그냥 넘기면 다음 일정에 차질이 빚어진다. 북한에서는 김위원장의 60회 생일인 2·16 이 이 기간에 걸려 있다. 북한 내부적으로도 2·16을 전후해서는 남북 간에 뭔가 좋은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답보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2·16 행사를 갖는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북한의 고위 당국자들은 내심 2·16 행사 1주일 뒤인 2월 23·24일께를 대화를 재개할 시점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6차 장관급회담이 결렬될 때 북한은 이미 7차 회담의 시점으로 이 때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3월:당국간 회담의 결실이 나타나는 달이다. 이산 가족 상봉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밖에 태권도 시범단 교환 방문 등 지난해 합의했던 교환 행사들이 이때 이루어질 수 있다.



북·미 대화 역시 윤곽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북측은 이때까지도 북·미간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거꾸로 중국·러시아·유럽과의 관계를 한층 강화할 계획이다. 특히 경제 교류에서 커다란 진전이 있을 수 있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2·16에서 이어진 축제 분위기가 3월에도 계속된다. 이때 북한에서 ‘김일성 민족’이라는 새로운 구호가 나와 남쪽의 여론을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 아리랑 축제에서 북측이 정치색을 배제했듯이 상대를 자극하는 용어 사용 등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4월:북한에 두 가지 큰 행사가 있다. 4·15 김일성 주석 90회 생일과 4·26 인민군 창건 70주년 행사다. 북한이 4·15에 얼마만큼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는 이미 꽤 알려져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4·15와 4·26 사이인 4월22일 아리랑 축제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4월 말에 시작할 것으로 얘기되던 아리랑 축제를 이처럼 4·26 이전으로 당긴 것에는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한다. 4·26 인민군 행사를 아리랑 축제의 연장선에서 치르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외 교류에 부정적으로 비쳤던 군부조차 개방에 적극 참여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는 지난 몇 년간 북한 정치의 화두였던 강성대국이라는 슬로건을 지난해로 마무리짓고 올해부터는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겠다는 것으로 확대 해석되기도 한다. 아리랑 축제에 군 예술단이 대거 참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쪽에서는 북측의 4월 행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점이 숙제로 남는다. 민간 교류로 끝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교류 차원으로 끌어올릴지 깊이 검토할 필요가 있다.



5월:또 한 차례 당국간 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 5월 말부터 시작되는 월드컵과 6월의 6·15 2주년을 좋은 계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5월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그렇지만 북측도 5월을 매우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한다. 당국간 회담이 열리면 남북 간에 산적한 현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대외 정책 동향과 관련해서도 5월은 대단히 중요하다. 경제 개발과 관련한 특구 정책이나, 외국 자본과 기술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원래는 2·16과 4·15 사이에 발표하려 했으나 효과가 반감할까 우려해 5월로 미루었다는 얘기가 있다.



6월:상반기 남북 관계를 총결산하는 호기이다. 중요한 행사들이 이때 몰려 있다. 5월 말에 월드컵이 개막되어 6월 말까지 이어지고 그 사이에 6·15 2주년이 놓여 있다.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이때 과연 열릴 수 있는가 없는가가 초점이다. 우리 정부도 그렇지만 북측도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우선 월드컵 개막식이다. 5월까지의 상황이 제대로 진행될 경우 김위원장이 월드컵 개막식에 참석할 수도 있다. 북한 처지에서는 국제 행사가 벌어지는 이 시기야말로 김위원장이 신변 안전에 대한 우려를 씻고 남한을 방문할 수 있는 호기이다. 또한 김위원장이 국제적 이미지를 개선하고 위상을 높일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구태여 여러 나라를 돌아다닐 필요 없이 한꺼번에 해결이 가능하다.



월드컵 개막식이 어려울 경우 6·15 2주년도 중요한 계기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미 평양을 방문했기 때문에 김정일 위원장도 어떤 식으로든 매듭을 지어야 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부터 북한이 6·15 선언을 이행하는 문제를 부쩍 강조해온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상반기 남북 관계의 변수는 북·미 관계이다. 이런 점에서 2월 하순께 이루어질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7월:이달부터 시작되는 하반기 일정이 문제다. 우선 지방자치 선거가 언제 이루어질지가 변수다. 아직까지는 6월설이 유력하지만 과연 월드컵 기간에 선거를 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다. 6월까지 남북 대화의 성과가 축적될 경우 지방 선거와 상관없이 당국간 회담이 다시 열릴 수 있다. 북한 처지에서는 6월 말까지 아리랑 축제가 끝내고 7월부터는 남쪽의 정치 행사를 지켜 보는 자세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8월:우선 8·15 행사가 있다. 지난해 8·15 행사는 남북 관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북측도 지난해 사건에 대해서는 매우 당혹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올해는 정치 행사보다는 비정치적 교류를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8월의 또 한 가지 변수는 10월 부산 아시안게임에 대비한 논의가 이때쯤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남북은 아시안게임에 북한이 참여할 것인지, 또한 북한 공연단 방문이나 백두산에서 성화를 채집하는 것이 가능할지 하는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이때 북한이 참여할 경우 9·10월까지 이 분위기가 이어질 수 있다.



9월:통상 북한이 한 해의 결산을 시작하는 달이다. 특히 남한의 현정부가 마무리 국면에 들어가고 차기 대선 주자에 대한 윤곽도 드러나게 된다. 북측도 운신에 제약을 받기 시작한다.




10월:아시안게임이 변수다. 북한이 아시안게임에 참여하고 또한 남북이 여러 행사를 공유할 수 있다면 또 한 차례 좋은 분위기를 맞을 수 있다.



11·12월:남한의 대선을 앞둔 이 시기는 특히 북풍 등의 오해를 살 수 있어 모두 소강 국면이 될 수밖에 없다. 즉 올해 남북 관계는 10월에 마무리 국면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10월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문제는 결국 차기 정권 첫해인 내년의 남북 관계 기조를 좌우할 것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남문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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