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권 시어머니’ 씁쓸한 퇴장
  • 제네바·이성훈 (팍스로마나 사무국장) (almolee@yahoo.com)
  • 승인 2002.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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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로빈슨 유엔 고등판무관 연임 포기…곧은 소리 일관, 강대국에 ‘눈엣가시’
"체제 밖에 머물러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을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으로 임명하면서 했던 조언이다. 인권의 눈으로 유엔과 회원국의 행동을 감시하는 파수꾼 역할을 수행하라는 뜻이었다. 그러기를 4년 반, 이제 오는 9월이 되면 메리 로빈슨 고등판무관은 5년 임기를 마치고 유엔을 떠나 장외에 머물게 된다.





누가 로빈슨 고등판무관의 자리를 이어받을 것인가? 자연스럽게 유엔 안팎에서 자천타천 후보자 명단이 나돌기 시작하면서 차기 고등판무관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체코의 이리 딘스트비어 전 외무장관, 폴란드의 미하엘 게레마 전 외무장관, 태국의 수린 핏수완 전 외무장관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한때는 현 유엔총회 의장인 한국의 한승수 전 외무장관 이름이 언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국제 인권 비정부기구(NGO)의 반응은 시큰둥한 편이다. 제네바의 한 인권 전문가는 “일단 후보자 모두의 개인적 자질도 문제이지만 장관급 경력으로 국제 인권문제를 효율적으로 다루기에는 한계가 많다”라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정치적 압력과 로비가 난무하는 국제 정치의 와중에서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서는 전직 대통령급 정도의 정치적 무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빈슨 고등판무관은 지난해 3월 ‘연임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독자 행보를 걸어왔다. 비록 코피 아난의 간곡한 설득과 만류에 따라 임기 1년 연장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수용했지만, 마음을 비운 로빈슨은 주요 인권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더욱 적극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로빈슨 고등판무관은 지난해 9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세계인종차별철폐 회의에서는 유럽 국가들이 과거 식민 지배 및 노예 제도에 대한 잘못을 공식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으며, 영국 내 아시아인들을 둘러싼 인종 분규 사태에 대해서는 영국을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9·11 테러 사태 이후 미국의 일방적 반 테러 정책이 대규모 인권 침해를 야기하자 “인권 희생을 대가로 반 테러 전쟁을 수행해서는 안된다”라며 강경 입장으로 선회했다. 쿠바의 관타나모 미군 기지에 수용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과 알카에다 조직원들에 대한 처우 문제와 관련해서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와 함께 제네바 협약을 충실히 이행하라고 미국에 강력히 촉구했다.





“후임자는 강대국 입맛에 맞는 사람이 될 것”


사실 로빈슨은 4년 반 임기 동안 60여 나라의 인권 침해 현장을 수시로 직접 방문했고, 관련된 인권 침해 국가를 비난하거나 고발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문제가 지금처럼 악화하기 전인 지난해 초, 그녀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지구를 방문한 후 이스라엘의 과도한 무력 사용을 비난하는 보고서를 제출해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체첸 사태 때는 현장 방문을 시도했다가 러시아 군부의 반대로 좌절하기도 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녀와의 면담조차 거부했다.


로빈슨의 ‘도발적’ 행동은 많은 국가들의 반발을 불렀다. 그 때마다 그녀의 ‘적’은 늘어났다.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의 보수 정부들은 “로빈슨 고등판무관이 권한을 남용해 주권 국가의 국내 문제에 간섭했다”라고 줄곧 비난해 왔다.


유엔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는 “고등판무관 임명과 연임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동의를 거쳐 유엔 사무총장이 결정한다. 그녀가 연임을 포기한 결정은 인권 문제로 일부 강대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비타협적 행동의 논리적 귀결이다”라고 말했다.


인권고등판무관실 제도는 국제 인권운동이 1993년 빈 세계인권대회를 통해 성취한 중요한 성과였다. 호세 아얄라 라소 전 에콰도르 외무장관이 1994년 첫 고등판무관으로 임명되었지만 그는 정치인 특유의 ‘저자세’ 외교로 일관했다. 그러나 1997년 임명된 로빈슨은 모든 면에서 그와 대조를 보였다. 그녀의 활약에 힘입어 인권은 국제 정치의 중심 의제로 등장했고, 어느 국가도 인권을 무시하고서는 국제 정치 무대에서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당연히 인권 비정부기구(NGO)들은 로빈슨 고등판무관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고 인권고등판무관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한국의 한 인권 활동가는 “로빈슨씨가 한국의 국가 인권기구 설립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일 때 인권 비정부기구의 입장을 지지함으로써 큰 도움을 주었다”라고 회상했다. 로빈슨 고등판무관은 항상 정부보다는 인권 피해자와 피해자의 편에서 일하는 인권단체의 권리 증진에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그녀를 ‘인권 피해자의 대모이자 국제 인권단체의 대변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런 업적에도 불구하고 로빈슨이 사무총장으로서 주관했던 더반 유엔인종차별철폐 회의의 반쪽 성공(실패)은 그녀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다. 당시 미국과 이스라엘은 아랍권 국가들의 일방적인 반 이스라엘 결의안 상정에 항의하면서 중도에 대표단을 철수시켰다. 게다가 폐막 3일 만에 발생한 9·11 테러 사태는 가까스로 타협점을 도출한 회의 성과마저 앗아가 버렸다. 한마디로 역부족이었다. 국익을 매개로 한 국가들의 ‘진흙탕’ 외교 전쟁에서 인권의 ‘연꽃’을 피우려고 한 로빈슨의 꿈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9·11 사태와 이로 인해 조성된 전세계적 반 테러리즘 ‘공안 정국’은 현 로빈슨 고등판무관에게는 물론이고 다음 고등판무관에게도 큰 시련이자 도전이 될 것이 분명하다. 로빈슨의 ‘인권 공세’에 움츠러들었던 국가가 이제는 테러 집단의 테러리즘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권위자로 ‘복권’하면서 인권이 국익과 안보 논리의 뒷전으로 후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로빈슨에게서 ‘쓴맛’을 본 강대국은 또다시 그녀와 같은 강성 인물을 고등판무관으로 임명하는 데 동의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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