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삶의 질, 오히려 후퇴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2.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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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확산으로 10년 전보다 나빠져…영양 실조·매매춘·노동 착취 ‘여전’
1990년 국제 사회는 전세계 어린이들을 위해 커다란 선물을 준비했다. 어린이를 위한 세계 정상 회의를 열어, 어린이 권리 증진을 위한 10년 계획을 짜고, 어린이권리협약의 미비점을 보완하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오늘날, 어린이들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우선 반가운 소식. 홍역·파상풍 등 질병에 대한 예방 접종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지고, 취학률도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국제 사회는 어린이들이 무력 분쟁에 휘말려 애꿎게 희생되는 사태를 막기 위한 국제법적 노력도 기울여 갖가지 부속 의정서를 채택하는 등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게다가 개발도상국에서 0~3세 영아에 대한 모유 수유율도 1989년 39%이던 것이 1999년 46%로 높아졌다.





어린이 4백30만명 에이즈로 사망


하지만 아이들의 삶의 질은 뜻밖의 복병을 만나 오히려 10년 전보다 후퇴했다. 바로 에이즈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어린이가 최대 희생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열다섯 살 이하 어린이 4백30만명이 에이즈로 사망했다. 또 다른 어린이 1백40만명이 에이즈 바이러스(HIV)에 감염된 채 살고 있다. 그리고 매분 15∼24세 젊은이 5명이 새롭게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있다. 매일 7천명에 이르는 새 환자가 젊은이들 사이에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에이즈는 어린이들의 생명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가정도 파괴했다. 현재 전세계에서 어린이 1천3백만명이 부모가 에이즈로 사망하는 바람에 고아 신세가 되었다.


특히 아프리카 지역의 상황은 심각하다. 에이즈가 가장 심하게 창궐하고 있는 동·남 아프리카의 경우, 1990년 7만8천명에 이르던 에이즈 고아(열다섯 살 이하 기준)가 2000년에는 6백40만명으로 폭증했다.
물론 에이즈만 어린이를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전세계 다섯 살 이하 어린이의 30%는 영양 실조에 걸려 있다. 심지어 가장 잘산다는 나라에서조차 아이들 10명 중 1명은 최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학대·착취·폭력은 어린이들에게 또 다른 적이다. 이 중 특히 지난 10년 사이 사태가 악화함에 따라, 또는 피해가 늘어남에 따라 새롭게 두통거리로 떠오른 것이 어린이 매매춘과 성적 착취이다. 빈부 격차가 확대되면서 어린이에 대한 노동 착취를 줄이는 것도 국제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여전히 남아 있다.


국제 사회는 올해, 특히 유엔을 중심으로 1990년 세계정상회담 이후 설정했던 목표치들을 재평가하고 새롭게 ‘10년 계획’을 논의하는 시간을 갖는다. 5월8∼10일 뉴욕에서 열리는 ‘어린이 권리에 관한 유엔 특별 총회’가 바로 그것이다. 이 행사에는 세계 각국의 국가 원수급 지도자와, 코피 아난 사무총장을 비롯한 유엔 관계자, 비정부기구 대표들, 그리고 빌 게이츠 등 세계 굴지의 기업인들이 참석한다.


하지만 최근 10년 사이 최대 규모의 어린이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리 밝지 못하다. 지난 10년간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의 삶의 질이 오히려 후퇴했기 때문이다. 유엔 직원들은 이들 두고 ‘깨어진 약속’이라며 반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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